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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량이 아니라 유ㆍ무죄를 놓고 싸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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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는 형량이 아니라 유ㆍ무죄를 놓고 싸울 뿐"

[고성국의 정치in]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2011년 8월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 참패로 귀결된 후, 사건이 하나 터졌다. 서울시 무상급식 도입을 주도하며 오 전 시장과 각을 세우던 곽 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서초동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게 된 것이다. 주민투표가 끝난 이틀 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곽 교육감과 후보 단일화를 이뤘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를 압수수색했다.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를 조건으로 박 교수에게 돈을 줬다는 것이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곽 교육감은 이례적으로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 매수 대가가 아니라, 선의로 2억 원을 지원했다"고 돈을 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인격을 걸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범죄가 아님을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해 9월 7일 곽 교육감을 공직선거법상 후보 매수 혐의로 사전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3일 후 곽 교육감은 구치소에 들어갔다. 보석 신청도 기각됐다.

"진보 교육감의 도덕성이 훼손됐고, 직을 수행할 수 없을만큼 타격을 입은 곽 교육감이 직을 사퇴하고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곽 교육감 수사에는 정치적으로 불온한 목적이 있는 만큼, 곽 교육감은 끝까지 직을 수행하며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마침 오세훈 전 시장의 사퇴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둔 상황이었다. 6.2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야권은 후보 단일화를 논의하고 있었다. 보수 언론 지면 위에서는 '야권 연대'와 '후보 매수'라는 단어가 혼재해 쓰이기 시작했다. 진보 진영 역시 곽 교육감의 거취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곽노현 사건'은 이제 대법원 판결만 앞두고 있다. 검찰은 곽 교육감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했지만 1심 판결은 벌금 3000만 원으로 나왔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사전 후보 매수'에 대한 증거를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법원은 곽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를 사전에 매수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선의' 부분도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검찰의 '굴욕'이었다. 곽 교육감은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형량을 늘려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예측할 수 없는 재판 결과들이다.

곽 교육감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 그의 심경을 들어봤다. "죄가 없다"고 주장한 근거, 교육감직 사퇴 요구에 대한 입장, 후보 '사후 매수죄'에 대한 법리 논쟁 등에 대한 대화 내용을 가감없이 싣는다. 편집자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프레시안(최형락)

고성국 : 2심 재판이 끝났는데, 소회를 말씀하신다면? 억울한가요?

곽노현 : 저는 무엇보다 서울의 학생, 선생님, 시민들께서 제 일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착잡할까 싶어 늘 송구스럽다. 그 분들이 진짜 위로를 받으셔야 한다. 그리고 제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인 받는 것 외에는 서울 교육 가족과 시민들의 상처가 치유 받을 길이 달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서울 교육 혁신을 계속해 나가고 또 한편으로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1심과 특히 2심 재판결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씀드려 억울한 점이 있다.

고성국 : 서울시 교육청 직원들 사이에서 동요는 없나?

곽노현 : 곽노현 표 교육 정책에 대해 세상에는 몇 가지 안 알려져 있지만, 상당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서 경로나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방향과 목표가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현재까지 직원들이 흔들림 없이 일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 교육 가족들이 착잡하고 위로가 필요한 시점일수록 제가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온통 서울교육만을 생각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 직원분들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더 책임있게 맡은 바 책임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 교육감으로서 직원들에게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

고성국 : 교육감 사퇴 주장이 많이 제기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곽노현 : 저는, 그것도 정의감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주장이고 충분히 이해도 된다. 다만 그것은 멀리서 바라본 사람들의 정의감의 발로라는 생각이다. 정말 가까이서 이 사안의 진상을 파악한다면, 저와 같은 입장에 놓였다면,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역지사지를 해도 이런 정도의 상황에 왔으면,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공직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가 만약 그런 생각에 부응해서 떠나면 그야말로 서울 시민들은 위로받을 기회조차 없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든다. 저도 한편으로 몹시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늘 자문한다. '내 안의 양심에 거리낄 일을 안 했는데, 정말 어쩌라는 말이냐. 어쩌라는 말이냐.'

고성국 : 대법원 판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나?

곽노현 : 선거법 사안은 3개월 안에 끝내라는 규정이 있다. 훈시규정이라 꼭 지키는 것은 아니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2년여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법원이 서두를지도 모르겠다.

고성국 : 석달 후에 최종 판결이 나겠다.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교육감직을 상실할 것이고.

곽노현 : 교육감직 상실만이 아니다. 선거 비용 35억 원도 반환해야 한다.

고성국 : 기소 전에 교육감 직을 사퇴했다면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돈 아닌가?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며 교육감 직을 수행하고 있다. 저 자신도 놀라고 있다."ⓒ프레시안(최형락)
곽노현 :
기소 전에 사퇴하면 보전 받은 선거비용을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었지만, 주위에서 그 이야기를 하면 제가 '무슨 소리냐'고 역정을 냈다. 기소 전에 사퇴했다면 흔한 말로 쪽박을 찰 일은 없는 것인데 나는 무죄를 확신하기 때문에 사퇴할 수 없었다. 저는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저의 인격과 삶, 이 모든 것을 걸고 무죄를 다투겠다는 결심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반면에 검찰은 기소 전에 대놓고 언론에 곽노현의 교육감 사퇴를 주장하기도 했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고성국 : 유죄가 확정되면 명예 잃고 징역도 살아야 하는데, 심경이 어떤가. 힘드나?

곽노현 : 제가 체질적으로 낙관적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무엇보다도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같은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에 대한 신뢰가 있다. 최상급심에서 법의 분별력이 빛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믿음 안에서 교육감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어떤 흔들림도 없이 꿋꿋하게 열심히 하고 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며 교육감 직을 수행하고 있다. 저 자신도 놀라고 있다.

고성국 : 맷집이 커진 겁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웃음)

곽노현 : 가슴에 묵직한 비애가 자리 잡으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져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 다행히 저는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제 안에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고성국 : 곽노현은 유죄다, 무죄다 논란이 있을 텐데?

곽노현 : 적어도 제가 신뢰하는 것은, 정의의 여신이 그렇듯, 대법원이 눈가리개를 하고 오직 헌법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서 판단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 여론의 눈치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그런 방식의 고려 없이 오직 법과 양심만으로 판결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고성국 : 이명박 정부 들어서 대법원의 보수화가 진행돼 왔다는 지적들이 있다. 그러면 당연히 진보 교육감에 대한 판결은 불리하게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세간에는 있다. 이것도 믿지 않나?

곽노현 : 계속 말씀드렸다시피, 진실의 정화력, 법의 분별력, 법관의 판단력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것을 갖고 있지 못하면 법학 교수도 못한다(곽 교육감은 교육감 당선 직전까지 방송통신대 법대교수였다). 뿐만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지탱이 되겠는가. 어떤 분쟁이 잠정적으로라도 평화를 찾겠는가. 모든 판결은 모든 시민의 평가 대상이 되고, 역사의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이다. 법의 원칙이나 진실에 어긋나는 오판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국민 공동체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무거운 책임이다.

고성국 : 역사가 앞서가면 법이 뒤따라가면서 정리해 주는 정도였던 것 같다.

곽노현 : 저는 이번 사건이 쉽게 되풀이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본다. 그래서 정치적인 판단이나 일반적인 선입견으로 도매금으로 넘기듯 처리할 사안이 전혀 아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후매수죄를 두고 다투는 유례없는 이 사례는 아주 엄격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통해 구체적 타당성이 요구된다.

곽노현은 왜 수사를 받았고, 재판을 받게 됐나

고성국 : 대법원 판결, 어느 정도 확신하나?

곽노현 : 저의 죄목이 '사후매수죄'이다.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매수와 다른 것이다.

고성국 : 설명을 해 달라.

▲ "저에게 적용된 사후매수죄라는 것은 이런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사전에 돈 약속이 없어도 사후에 후보를 매수하는 것이 가능하고, 선거일 후에도 선거 민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명백한 모순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곽노현 :
일반적으로 후보 매수라고 하면 돈을 약속해서 후보를 사퇴시키는 것을 얘기한다. 돈은 사퇴 전에 건너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설령 사퇴 후에 건너가더라도 돈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행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이게 후보매수이다. 반면에 지금 제가 1심, 2심에서 적용받은 죄목은 '사후'매수죄라는 것이다. 검찰과 1심, 2심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사후매수죄라는 것은 후보가 이미 사퇴하고, 선거도 끝나고 난 후에, 사전 약속도 없었는데 돈을 준 것, 그것이 사퇴의 대가라고 하는 것이다. 저에게 적용된 사후매수죄라는 것은 이런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사전에 돈 약속이 없어도 사후에 후보를 매수하는 것이 가능하고, 선거일 후에도 선거 민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명백한 모순이다.

고성국 : 돈을 받았다고 하는 박명기 씨의 법정 주장은 사전에 매수를 당했다는 것 아닌가? 판결은 사후매수죄다. 그렇다면 재판부가 박명기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아닌가?

곽노현 : 오해가 있다. 질문하신 부분은 검찰의 주장이다. 구속 상태에서 박명기 교수가 하지도 않은 말을 일부 보수언론이 오보를 한 것이다. 박명기 교수는 후보매수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중에 1심 법원에서도 밝혀졌다. 후보사퇴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검찰조사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검찰은 곽노현이 선거일 전에 사전약속을 하고 선거 후에 돈을 주었다고 기소를 했다. 그런데 이런 검찰의 주장이 다 틀렸다고 1심, 2심 재판부가 확인했다. 다만 법원은 금전제공에 의한 후보단일화를 명시적으로 거부해온 저의 일관된 뜻에 반해서 저 몰래 친구들이 그야말로 얼떨결에 박 교수 측 대리인에게 불려 나가서 해프닝과 같은 합의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고성국 : 그것을 곽 교육감은 정말 몰랐나?

곽노현 : 정말 몰랐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모르고 있는 상태로 5개월이 지나갔다. 내가 알았다면 즉각 그런 이야기는 중단되었을 거다. 그 친구들의 합의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우발적인 것이고 단순 해프닝에 가깝다. 이미 공식 협상은 그 전날 밤(2010년 5월 18일)에 끝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박명기 교수 측의 공식 협상 대리인인 양 선생이 나섰고, 이 분의 동서이기도 한 저의 친구가 불려나갔고, 막역한 제 친구 교수도 불려 나간 것이다. (박 교수 측 양oo 씨가 곽 교육감 측 이oo 씨를 불러냈다. 양 씨와 이 씨는 서로 동서지간이다. 여기에 곽 교육감 측 최oo 교수도 불려 갔다.) 이들은 협상 당사자도 아니고 협상 대리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양 선생이 갑자기 불러내서 얼떨결에 나간 것이고, 얼떨결에 합의를 하게 되는데, 그 합의 내용도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공직선거법상의 후보매수죄에서 말하는 통상적인 의미의 돈 약속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고성국 : 뭐라고 합의했나?

곽노현 : 양 선생이 '박명기 교수에게 (진보) 진영에서 내년에 5억 원을 만들어주자'고 했다고 한다. 얼떨결에 그 일에 불려나간 양 선생의 동서인 제 친구(이oo 씨)가 나중에 저에게 한 얘기가 있다. 제가 1심 끝나고 4개월 반 구금에서 풀려난 뒤 한 달 있다가 그 친구를 만났다. '노현아 미안하고, 고생 많았다. 원망 많았지'라고 말을 하더니 대뜸, '너까지도 나를 사고나 치는 놈으로 취급해서 내가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 나는 얼떨결에 불려 나갔고 거기에서 양 선생이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데, 네(곽노현) 뜻에도 안 맞고 해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잠깐 더 들어보라고 해서 앉았고, 질문을 몇 개 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당시) 양 선생이 '박명기 교수가 몹시 힘들 테니 내년에 진영에서 5억 원을 마련해 주자'고 한 것이 전부라는 거다. 제 친구 이 선생이 저한테 '합의 내용을 생각해봐라, 여기에 네(곽노현)가 연루되길 하느냐, 너를 끌어들인 게 하나라도 있느냐, 아니면 나에게 권리나 의무가 하나라도 발생하느냐, 그래서 그냥 합의를 해 줬다. 그 정도였다'고 했다.

그만큼 우발적이고 해프닝적인 합의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어처구니도 없고 그랬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박명기 교수 측 협상대리인 양 선생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집담보로 1억 5천만 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식의 모임과 약속을 후보매수죄가 말하는 약속행위라고 볼 수 있나? 금전지급 주체도 곽노현이 아니다. 양 선생이 개인적으로 후보단일화가 절실하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박명기 교수에게도 후보단일화의 우리 쪽 협상창구였던 김oo 선생을 만나 합의했다고 거짓 보고를 했고. 재판 중에 그 사실을 알았다. 박명기 교수도 그래서 더 오해를 했던 것 같다.

▲ "검찰의 주장이 다 틀렸다고 1심, 2심 재판부가 확인했다. 다만 법원은 금전제공에 의한 후보단일화를 명시적으로 거부해온 저의 일관된 뜻에 반해서 저 몰래 친구들이 그야말로 얼떨결에 박 교수 측 대리인에게 불려 나가서 해프닝과 같은 합의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고성국 : 그 합의를 선거 끝나고 5개월 후에 알게 된 것인가? 그런데 그 다음 2억 원을 만들어서 박명기 교수에게 줬다. 왜 줬나?

곽노현 : 그것은 이런 과정을 거쳤다. 얘기하려면 길겠지만, 일단 그 합의, 후보매수죄에서 말하는 약속행위라고 볼 수도 없는 합의 같지 않은 해프닝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신대로 선거 후 4개월도 더 지난 시점에 알았다. 해프닝이지만 진보교육감으로서 그것마저도 조심스러웠다. 전라북도 김승환 교육감이 취임초기에 '조그만 것 하나라도 조심해야 한다. 진보교육감들 감시가 심할 거다'고 했다. 저도 공감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지금도 다를 바 없다.

그런 마당에 이것이 드러나면 세상은 저를 오해하게 될 것이다. 곽노현이 제 3자를 시켜서 저런 합의를 한 게 아니겠느냐 하는 식의 오해의 수렁에 빠지겠다 싶었다. 검찰과 일부 언론은 큰 정치적 스캔들로 만들어가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드러내거나 공개할 수 없었다. 이 해프닝을 알게 된 후에 나는 '그 동안 박 교수가 얼마나 오해가 많고 원망이 있었을까. 박 교수는 제가 승인을 했거나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았었겠나. 그러니 제가 5개월 동안 뭉개고 있는 사람으로 (박 교수에게) 비쳐졌을 것 아닌가.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는가'라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 측은지심이 들었고, 일단 오해를 푸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믿는 두 사람, 저의 정말 '절친'(강경선 교수)과 후배(김oo 교수. 곽 교육감 취임준비위 비서실장) 두 사람에게 '오해를 좀 풀어다오' 라고 부탁했다. 강 교수와 김 교수가 박 교수를 몇 차례 만나고 나서 저에게 '이제 오해가 풀린 듯 하니 박 교수를 직접 함께 만나 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제가 싫다고 했다. 혹시라도 만나서 오해 중에 또 언성 높이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나 '그럴 일 없다. 진짜 오해가 다 풀렸다'고 해서 11월 28일 만났고, 만났을 때, 굉장히 기분 좋게 만났다. 강 교수가 이미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오해를 다 풀어주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박 교수의 오해가 완전히 풀렸다는 것을 제가 직접 확인을 했고, 박명기 교수가 가진 장점들을 처음으로 굉장히 많이 보게 되었다.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굉장히 긴 시가 있는데, 그 장시를 박 교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암송을 했다. '야,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구나, (박 교수는) 만능스포츠맨인데, 이런 문학청년 기질까지 갖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신경림 시인, 고은 시인 얘기도 하고, 시와 인생에 대해 얘기까지 하는 분위기까지 갔었다.

고성국 : 어디에서 만났길래?

곽노현 : 서대문 근처에 있는 아주 허름한 참치집이었다. 그래서 저는 '이 분이 이런 면이 있어서 교육감 출마를 하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 전까지는 여러 차례 만났었는데, 나는 영문도 모르고 있고, 그 분은 '합의 했다는데 왜 안 지키나' 하는 기본자세가 있으니까 만나도 뭔가 '핀트'가 안 맞은 상태였었다. 박명기 교수가 굉장히 이력이 좋은 분이다. 만약 제가 교육감 선거에 나오지 않았으면 그 분이 (당선) 됐겠죠. 그런데 제가 나오면서 사실 어찌 보면 그 분에게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것이다. 그 분 입장에서 보면 저와는 굉장히 긴장의 관계였던 것이다. 그런 관계였는데, 11월 28일 만나서 그런 긴장과 갈등이 처음으로 해소된 것이다. 엄청나게 쌓인 오해, 원망도 해소가 된 것이다.

▲ "오해는 진실이 밝혀지면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오해는 오해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프레시안(최형락)

고성국 : 만남은 잘 끝났었나?

곽노현 : 그렇다. 이후 12월이 됐고, 강경선 교수와 제가 '도와주자'고 결정한 시점이 12월 중하순 쯤이다. 강 교수가 '박명기 교수와 사회적 관계는 풀렸는데 이 사람은 지금 엄청나게 힘들다. 경제적으로 파산 지경이고 헤어나오기 어렵다. 교수 신분에 카드 돌려막기 하고, 죽고 싶다는 말도 하고 그러더라. 이런 상황인데 사회적 관계만 좋아졌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역시 이런 경우에는 물질적으로 나눠야 한다. 그리고 도와주려면 기왕이면 감동적으로 해라. 생각한 것의 최대한의 최대한으로 도와줘라. 그래야 감동이 있다'고 했다. 강 교수가 박 교수한테 지금 사정이 어느 정도냐고 했더니 그 때 박 교수 입장에서는 급한 불을 끄려면 3억 원은 필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와 제가 선거 빚이라는 것도 감안하고, 감동적으로 지원해서 좀 확실하게 원군을 삼고, 또 무엇보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나눴다. 그래서 결국은 돈을 드린 것이다.

고성국 : 그래서 2억 원을 만들어줬나?

곽노현 : 그렇다. 원칙적으로는 박 교수는 저와 관련된 일로 곤궁에 빠진 사람이다. 이 분이 엄청난 어려움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줘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것이 오해의 빌미가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사실 그런 오해는 진실이 밝혀지면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오해는 오해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에.


곽노현에게 징역 1년 안겨준 '사후 매수죄'는 무엇이길래?

고성국 : 그렇게 따지면 선거에 나갔다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치자. 그간 우리 정치판에서 보면 후보가 되지 못한 사람은 후보가 된 사람에게 선거 비용 보전을 얘기한다. 통상적인 관례다. 주지 않은 경우도 있고, 줬는데 사법 당국에 포착이 안 돼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그게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곽노현 : 그런 것은 100% 사전매수이다. 직접적으로 사퇴를 조건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경우이며 후보 상호간에 확실한 합의와 약속을 한 경우이다. 제 경우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보아야 한다. '사후에 후보를 매수한다'는 말은 문장 자체로 형용 모순이 아닌가?

고성국 : 겉으로 볼 때는 유사한 사례이지 않나? 어찌됐든 사전에 곽 교육감은 그 사실을 몰랐다. 5개월 후에 알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재판부도 인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모른 척 했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재판부는 곽 교육감이 왜 모른 척하지 않았는지, 그 동기를 어떻게 파악을 하던가?

곽노현 : 1심 재판부는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박명기 교수는 단일화를 위해 사퇴를 했고, 그것 때문에 빚더미에 빠졌다. 반면 곽노현은 교육감에 당선됐다. 이에 따른 윤리적 부담감이다. 두 번째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박 교수를 도와줘야 한다는 이타적인 동기, 세 번째는, 박 교수를 정치적 원군으로 삼아야 한다는 정치적 이해관계, 네 번째는 오랜 친구들이 해프닝같은 일에 개입했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 이 네 가지를 제가 돈을 건넨 동기로 봤다. 윤리적, 정치적 동기의 복합적 작용으로 돈을 건넸다고 본 것이다.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선거법이나 형법에서 유죄의 근거로 삼을 범의가 전혀 없다. 동기의 복합성과 넓은 의미에서 선의를 인정한 것이다.

고성국 : 이타적 동기를 처벌하게 된 것인가?

곽노현 : 그렇다, 이 네 가지 동기는 다 인정하면서 왜 무죄가 아니고 유죄인지, 다들 의아해했다.

고성국 : 판결에 따르면 친구의 곤혹스러운 사정을 감안한 이타적 동기가 처벌 대상이 됐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계산을 처벌한 셈이 됐으며, 불쌍하다는, 측은지심을 처벌한 것이 된다. 재판부가 인정한 행위의 동기에 따르더라도, 본인이 무죄라고 확신하고 2심까지 간 것인가?

곽노현 : 그렇다.

▲ "박명기 교수가 선거 전후로 해서 직접적으로 저에게 금전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실제로 박 교수는 오해가 풀리고 나서 한 번도 합의이행을 촉구하거나, 대가 요구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강경선 교수를 만나서도 돈 요구를 먼저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고성국 : 그런데 2심으로 갔는데, 똑같은 사후매수죄로 실형의 유죄가 나왔다. 2심 재판부의 논리는 무엇인가?

곽노현 : 1심 재판은 사후매수죄라는 것의 전형적 행태가 무엇인가, 이것을 고민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사전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사퇴한 후보를 선거 끝나고 다시 매수한다는 것에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본 것 같다.

고성국 : 법률에 사후매수죄라는 단어가 있나?

곽노현 : 없다. 법조문 표제 자체는 '후보매수죄'다. 후보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금전, 또는 직을 제공하는 경우, 이런 식으로 돼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소위 '사후매수죄'라는 것은 검찰에서, 또 언론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1심 재판부는 네 가지 동기에 의해 돈을 건넸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박명기 교수는 당시 '5.19 동서간 합의'에 따른 대가라고 생각을 해서 받았다고 봤다. 박명기 교수가 그렇게 받았다는 것이다. 강경선 교수는 박 교수의 그런 대가에 대한 기대, '5.19 동서간 합의'에서 흘러나온 대가에 대한 기대를 (박 교수가) 내려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는 박 교수의 대가기대를 알면서 돈을 주어 박 교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는 이유로 벌금 3000만 원, 강 교수는 박 교수의 대가기대를 알면서 저에게 돈 제공 설득을 했다는 이유로 벌금 2000만 원이 나왔다. 그런데 1심 법원은, '사후매수죄'의 전형적인 경우로, 후보매수의 주체가 사퇴 후보였던 자(박명기 교수)라고 본 것이다. '사후매수죄'는 '후보매도죄'라는 것이다.

사전매수죄는 '내가 돈 줄 테니 후보를 그만 두라'는 것이니까 매수자의 범죄고, 사후매수죄는 '내가 그만 둘테니 돈을 달라'는 것으로 매도자의 범죄라고 본 것이다. 사전에 약속이 있든 없든 '당신, 내가 사퇴해서 당신 잘 된 것 알지? 그러니 돈 줘'라고 사후에라도 다그치면 돈을 주게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러면 그것을 사후매수죄로 처벌하자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박명기 교수에게 3년의 중형이 선고 된 것이다.

고성국 : 2심 재판은?

곽노현 : 2심 재판부는, 후보직 매도죄가 아니라, 후보직 매수죄라고 본 것이다. 즉 곽노현이 법이 금하는 후보직 사후 매수를 했다고 판단한 것인데, 이미 사퇴한 후보를 사퇴 후 혹은 선거 후에 매수한 행위는 중대범죄라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금전제공의 두 가지 동기를 인정한다. 첫째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 동기, 두 번째는 개인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한 이기적 동기, 즉 돈을 안 주면 교육감 직의 안위에 정치적 위험이 초래될 것을 막고자 해서 돈을 줬다는 것이다. 이타적 동기와 '입막음용'이라는 동기가 병존한다고 본 것이다.

ⓒ프레시안
고성국 :
박명기 후보는 그렇다면 협박범이 되지 않나?

곽노현 : 글쎄... 박명기 교수 측에서 기자회견 운운했던 것은 곽노현이 약속해놓고 모른 척한다고 오해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던 것 같다. 박명기 교수가 선거 전후로 해서 직접적으로 저에게 금전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실제로 박 교수는 오해가 풀리고 나서 한 번도 합의이행을 촉구하거나, 대가 요구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강경선 교수를 만나서도 돈 요구를 먼저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고성국 : 1심에서 네 가지 동기가 2심에서 두 가지 동기로 좁혀졌는데, 이것이 중벌을 줄만한 일인가?

곽노현 : 누구든지 자신의 안위를 위한다는 것만으로 벌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아주 나쁜 수단을 통해, 범죄 행위를 통해 안위를 구한다면 몰라도. 그 부분과 관련해 저로서는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운 형벌이다.

고성국 : 그래서 2심이 나왔다. 1년 징역형이다.

곽노현 : 저도 처음에 너무 놀랐다. 저는 2심에서 무죄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징역 1년' 그러는데, 기다려 봐도 집행유예라는 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제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어차피 저는 유무죄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지 형량을 갖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1심하고 사실 관계가 다른가? 법률 이해가 다른가? 죄목이 하나라도 보태졌나?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오직 달라진 것은 재판부가 '사후매수죄'를 보는 관점인데, '어찌됐든 이미 사퇴를 해버린 사람에게 (당선자가) 후보직을 매수한다는 게 가능하고, 이것은 중대 범죄다.'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그런 시각 변경, 그리고 네 가지 동기를 두 가지 동기로 이해한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변고인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성국 : 집행유예가 아닌데도, 법정 구속을 안 시켰다. 통상적으로는 구속을 해야 하는 것인데?

곽노현 : 저도 법정 구속되는 줄 알았다. 나중에는, 차라리 법정 구속을 당했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더라. 하도 황당하니까. 재판장이 그랬다. '기소조항인 사후매수죄에 대하여 법리적 다툼을 하고 있으니 방어권 차원에서 법정구속은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2심 재판부도 '사전약속 없는 사후매수죄' 로 처벌하면서도 그것이 법적으로 올바른지 확신을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1심 재판부 김형두 부장판사도 지난 1월 19일 선고공판 때 저와 변호인에게 헌법재판소에 꼭 '사후매수죄' 조항에 대하여 '위헌법률 헌법소원'을 할 것을 권했다. 그만큼 1심, 2심 재판부도 '사후매수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성국 : 대법원 판결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나?

곽노현 : 저는 법이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은 분별하는 것이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끊임없이 나눠 보는 것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게 법이다. 법이 부조와 매수를 구별 못하고, 선행과 범죄를 구별 못 하진 않을 것이다.

저는 후보 사후매수죄 조항은 3가지 형용모순이라고 본다. 첫째, 선거가 끝난 상태에서 이미 지나간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가. 둘째, 후보가 사퇴한 후에는 후보가 없는데 어떻게 후보를 매수할 수 있는가. 셋째, 약속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가. 선거법상 가벌성을 가지려면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고 민의를 왜곡해야 한다. 그런데 사전 약속 없는 사후매수죄의 경우, 그게 가능한 것인가. '사후매수죄'는 헌법에 합치하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고성국 : 법리적 해석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돼 버린 것 같다.

▲ "결국에는 곽노현 더러 그 공소시효가 지난 구두합의에 대한 책임도 지고, 곽노현 더러 직접 실형도 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2심 재판부의 실형선고는 스스로의 사실판단과도, 법리판단과도 모순된다." ⓒ프레시안(최형락)
곽노현 :
그렇다. 그게 쟁점이 된 것이다. 사전에 돈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 사전에 매수 행위가 없었는데, 후보를 사후에 매수하고 민의를 왜곡하는 게 가능한가 라는 것이다. 사실 이번 사건에서 선거 전 구두합의라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후보매수죄의 약속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 설령 그 구두합의라는 것이 후보매수죄의 약속에 해당한다하더라도 1심과 2심 모두 그 구두합의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도 없다고 했다. 또 그 구두합의 책임을 곽노현에게 부담하게 하면 그것은 헌법상, 형법상의 책임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그런 비슷한 합의조차 일관되게 거부하고 반대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결국 제3자의 책임을 곽노현에게 지라고 하면 '자기책임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사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회계책임자가 후보매수행위를 했다고 해도 후보자가 관여하지 않았다면 교육감 직의 상실여부만이 문제될 뿐이다. 이 경우 1, 2심 재판부 결정처럼 제가 실형을 살거나 벌금형을 선고받지도 않는다. 직 상실의 문제이지 형법상 유죄를 주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시면, 1심, 2심 모두 제가, 곽노현이 사전약속을 하지 않았고, 구두합의 해프닝도 몰랐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돈을 주었으니까 범죄라는 것이다.

특히 2심 법원은 곽노현은 사전약속을 하지도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또 제3자의 구두합의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인정하면서도, 제3자의 책임을 곽노현에게 지게 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곽노현 더러 그 공소시효가 지난 구두합의에 대한 책임도 지고, 곽노현 더러 직접 실형도 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2심 재판부의 실형선고는 스스로의 사실판단과도, 법리판단과도 모순된다. 이것은 명백히 헌법상의 자기책임원칙에도 위반되는 판단이다.

고성국 : 헌법소원도 제기돼 있나?

곽노현 : 그렇다. 말씀드렸다시피 2심 재판부처럼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를 해석하는 것은 헌법상의 자기책임원칙에 명백히 반하는 위헌적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고성국 : 대법원의 결론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곽노현 : 아무리 규범적 사고가 발달한 사람이라도 '사전 약속이 없고 선거도 끝난 상황에서 후보매수가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법리적으로는 무죄인데 돈 주었으니 유죄다'식의 결정을 대법원에서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정치 외압? 나는 재판부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람"

고성국 : 1심, 2심 재판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이 있을 것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

곽노현 : 저는 앞서 두 분의 상반된 조언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 중에서 도와주자는 조언을 택했다. 그 조언을 한 강 교수나 저나 법학자이다. 법학자로서 법의 분별력, 법관의 판단력에 대한 신뢰가 있다. 아무리 오해가 있어도 진실이 결국 정화할 수 있다는, 진실의 정화력에 대한 믿음, 법이 분별할 수 있다는 믿음, 결국에는 법관이 이 같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실제로 저는 수사 과정과 1심과 2심에서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숨김없이 정직과 진실로 재판에 임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한결같이 유·불리를 계산해서 정제된 발언만 하는 게 소송을 이기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저는 이런 접근에 대해 철저하게 '노(No)' 했다. 그래서 검찰에서도 모든 것을 얘기했고, 심지어 '제발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 불리한 연상을 하게 된다. 판사나 검사는 불리한 연상을 해야 하는 직업이고, 실제로 많은 오해가 발생되기도 한다. 그리고 스스로 뱉은 불리한 말만 짜깁기해서 얼마든지 벌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러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수십 번을 들었다. 저를 걱정해서 해 주는 말이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저는 그만큼 법과 법관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검사의 수사 기록을 보고 정말 놀랐다. 내 온 몸에 오해의 가시가 박혀 있지만, 이를 푸는 방법은 정직과 진실 뿐이다.

▲ 곽노현 교육감과 고성국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고성국 : 외압 때문에 재판이 불리하게 나왔다는 것은 아니다?

곽노현 : 정말 아쉬운 것은 2심에서 세 번 공판하고, 사실 관계를 바꾼다든지 죄목을 추가한 것도 아닌데 실형이 선고되었다. 저는 그 양형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제 입으로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해, 법원에 대해 정치적 판결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제 변론을 맡은 박재영 변호사가 2심 재판 선고 끝나고 그랬다.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무지'한 것이고, 사실 관계를 알면서도 이렇게 판단했다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재판부가 양형 불균형 비판 여론을 이겨낼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고성국 : 곽 교육감은 좀 전에 법관의 판단을 믿는다고 했다. 법관 중에 곽 교육감과 인연이 있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보통 여러 가지 규명 노력도 하고 그럴 수 있겠다고 보는데?

곽노현 : 저는 전혀 그런 체질이 아니다. 저의 친구와 후배들 중에 제 사건을 담당한 판사와 아는 사람이 찾아보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저는 그 분들을 쫒아 다니고 하는 그런 일은 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제 체질이, 제 스타일이 그렇다. 저는 그만큼 재판부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다. 재판의 독립, 법원의 독립을 얘기하는 학자로서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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