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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오늘의 '회칼테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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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오늘의 '회칼테러'를 기억하며

[기고] 군사문화는 청산되었는가?

군과 군사문화는 역시 병영 안에 있어야 했다. 그게 거기서 바른 자세로 굳건하게 서서, 나라를 지켜내고 국민을 보호할 때는 이기(利器)이자 길기(吉器)이지만, 한눈팔며 울타리를 넘어 '탈영'을 감행하면 흉기(兇器)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추구하는 가치를 놓고 비교해 보아도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흔히 군사문화의 특성으로 사람들은 승리와 능률 추구에 일사불란을 꼽는다. 대단한 장점이다. 허나 그 가치가 병영 밖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승패나 능률과 상관없이, 다양함을 추구하는 사회의 여러 가치들과 충돌하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병영 안에서는 졸(卒)들이 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졸권(卒權: 졸병의 기본권) 하나하나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기본인권이 무시될 수 없다. 군과 군사문화는 역시 병영 안에 있어야하는 게 정답이다.

군과 군사문화는 사실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대부분 정치권력의 정점에서 힘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통치했다. 물론 무조건 나빴다고도 할 수 없고 더러 잘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국민들이 눈을 떠가고 기본 인권과 공정과 타당함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군사문화는 '주목' 받고 퇴조하기 시작한다.

이 나라에서는 뒤늦게 해방을 맞아 비로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헌법을 세웠으나, 1961년 당시 박정희 소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병영 안에 있던 군사문화를 이끌고 나와,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한 사회에 질펀하게 깔아놓았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마당에서 군사문화는 기를 펼 수가 없었다.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부딪쳤다.
과한 욕심을 부렸다. 남북대결구도를 악용해 위기의식을 조작해가며 '한국적 민주주의'만이 살 길이라고 악을 써댔다. 유신과 긴급조치 같은 것으로 날밤을 지샜다. 민주주의 멱살을 틀어쥐고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으로 대물림 되며 죄 없는 생사람들 숱하게 죽였다. 군사문화는 청산해야한다는 글을 썼다가 나도 현역 군인들로부터 칼부림을 당했다. 운 좋게도(!) 목숨을 건졌다.

1988년 8월이었다. 30년 전이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세월이요, 한 세대가 바뀌는 기간이다. 과연 군사문화는 청산되었는가. 슬프게도,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군사문화가 아직껏 청산되지 못한 데는 한국적 정치상황이라는 '특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시절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특수성이다.

해방을 맞이했을 때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기반 세력이 없었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 운동가를 잡으러 다니던 고등계 형사나 헐벗은 백성들을 수탈하던 친일파 부호들이 생존을 위해 그의 곁에 모여들었다. 친일파 척결을 목표로 국회의결을 거쳐 세워진 반민특위 사무실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경찰관들의 습격을 받던 시절이었다. 청산대상이던 친일세력들은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원이 되었다.

그 자유당원들 대부분은 5·16이 터지자 군인들이 만든 민주공화당으로 몰려가 이 나라 정치판 군사문화 기득권 세력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후 공화당은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계속 바꿔가며 '정신'을 계승해 갔다. 해바라기처럼 힘 센 쪽 향해 북 치고 장구 치고 박수치며 함성을 질러댔다. 기껏 한 두 줌 기득권을 보호 받는 게 고작이었으나, 그저 옳다고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숱한 꾼들이 모여들었다. 바람잡이들의 전성시대였다. 거대한 마피아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시스템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편 가르기 대결구도가 필요했다. 밥그릇 지키기 위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정없이 종북좌빨 딱지를 붙여댔다. 블랙리스트도 만들었다. 국가 공무원 조직인 국가정보원을 앞세우고 국군기무사나 사이버 사령부까지 동원하고 심지어 4대강 사업 찬성을 강요하는 등 나쁜 짓이란 나쁜 짓에는 손을 안 댄 곳이 거의 없다.

대법원에까지 군사사문화가 스며들었다. 졸(卒)인 무지렁이 백성들이 억울한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아줘야 했으나 '인권 최후의 보루'라는 소명 의식도 팽개쳤다. 뜻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변협 회장 뒷조사도 했다.

군사문화에서 남북대결 위기의식은 절대로 필요하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좌익들만 찬성하는 위장 평화 쇼'라면서 이 땅에 혹시라도 '잘못되어' 평화가 찾아올까봐 밤잠 못자고 고민하며 겁을 내던 사람들을 우리는 보았다. 그거 다 군사문화다.

바람잡이들과 함께, 이 땅에 군사문화가 칡넝쿨처럼 얽히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이른바 언론'들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언론'이라 하지 않고 '이른바 언론'이라 했다. 그 이른바 언론들의 비호 아래 군사문화는 그들과 상부상조하면서 이 땅에 맑은 윗물 대신 구정물을 끊임없이 흘러내려 보냈다고 본다.

30년 전 칼을 맞고 병실에 누워있으면서 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언론은 바로 설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꿔야했다. 그 테러사건과 관련해 유형무형으로 짓쳐오는 여러 '압력'들과 맞닥뜨리면서 나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현실을 절감해야했다.

언론은 자본 권력으로 부터도 자유로워야 바로 설 수 있다. 또 있다. "내가 조작하면 조작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숙달된 여론 조작꾼들로 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게 언론이 바로서야 군사문화는 '청산'의 첫걸음을 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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