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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이 끝난 곳에서 CSI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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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이 끝난 곳에서 CSI는 시작된다

[시민정치시평] 2012년 대선과 SNS의 관계

두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남자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져 있고, 여자는 총에 맞아 머리 뒤통수가 터진 채 쓰러져 있다. 현장은 여자가 먼저 남자를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인다.

형사가 말한다. 얼마 전 남자가 여자를 버리고 재벌가 여자와 결혼한다며 떠났다고. "치정살인, 함께 세상을 떠나려한 것이구만." 담배 한 대 입에 물고, 후우 연기를 내뿜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며 수사반장은 막을 내린다. 20세기 국가대표 수사물 수사반장은 이렇게 끝을 내지만, 범죄현장감식반 CSI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어떤 것도 예단하지 말고 꼼꼼히 증거를 분석하라, 보이는 것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수사반장의 끝이 CSI의 시작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간 느끼지 못했던 부족함을 보완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해석해야 옳다. 4.11총선이 끝난 후, 트위터와 페이스북같은 SNS,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나는 꼼수다'와 같은 팟캐스트가 얼마나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누군가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고 분석하고, SNS와 팟캐스트가 있었기에 이 정도라도 거둔 것이라며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혈연, 지연, 학연, 직장연, 종교연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성세대는 수사반장의 관점에서, 육감에 그간의 경험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다. 여자가 총을 쥐고 있고 남자가 총에 맞았으니 보이는 대로 라는 거다. 바람 피운 나쁜 놈을 응징하려했지만 실패한, 안타까운 여인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게 하자는 마무리는 쉽게 공감되는 듯하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인데 가슴, 머리가 아닌 다리를 쏜 것도 수상하고, 여자들은 음독하거나 목을 매지, 자기 이마를 정면에서 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라는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CSI
여기서 잠시, 과연 언제부터 수사반장과 CSI로 세대가 갈라진 걸까? 1998년쯤까지는 다들 비슷하게 살았다. 평소에는 아내가,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는 남편이 채널을 선택해 온가족이 TV를 시청하던, 그러니까 아내가 차려준 저녁 밥상을 받으며 9시 뉴스보고, 과일 먹으면서 신문 뒤적이는 화목한 저녁 풍경은 IMF 외환위기와 함께 사라졌다.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면 훌륭한 직장의 입사가 보장되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결혼하고 집사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던 아날로그 시대의 성공 공식도 이와 함께 막을 내렸다. 물론 여전히 이 방식으로 잘 살아갈 1%도 있긴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평범한 99%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CSI 세대는 TV도 다르게 본다.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으로,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으로 DMB를 보며 즐긴다. 미국 드라마를 다운받아 자원봉사로 만든 자막까지 합쳐, 현지와 일주일 정도의 시차만 있을 뿐,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중요한 건 방향과 속도이다. 스마트폰 필요 없다며 도입을 질질 끌어오던 통신사의 체면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폰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폰 출시 88개국 중 1년 안에 50만 대를 돌파한 나라는 고작 7개뿐이며 일본도 7개월 이상이 걸렸는데 우리는 불과 넉 달 만에 50만 명을 돌파했다. 인구를 감안해 본다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3년. 올해 말 국내 전체 휴대폰 가입자의 70%인 3700만여 명이 스마트폰을 쓸 것이라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전망하고 있다.

장비 보급 속도만 빠른 게 아니라, SNS를 통한 참여 역시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늘었다. '나꼼수'에서 시작된 팟캐스트 듣는 재미는 오프라인에도 이어졌다. 대규모 거리 콘서트를 성황으로 이끄는가 하면 <닥치고 정치>를 올해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는 SNS와 팟캐스트, 스마트폰으로 변화한 대중의 힘이라고 밖에는 해석될 수 없는 부분이다. TV보며 인터넷을 검색하고, 트위터 주고받으며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누르는 게 일상이 된 이들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테니 믿고 맡겨 달라'는 희망타령을 끄덕이며 수용하지 않는다. 수사반장의 성급한 결론에 동의하지 않고 찬찬히 살펴보는 CSI처럼, 이들은 느리지만 정보를 나누고 집단지성을 이루며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피해자로만 보이던 남자에게서만 총기발사 잔여물이 발견되었다. 여자 손에는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고 자금관계를 조사해보니 여자사망 보험금이 남자 앞으로 지급되게 되어 있다. 혹은 탄도분석결과 여자가 남자에게 다섯 발을 발사했지만 오직 하나만 명중했고, 그 오발탄중 하나가 금속에 맞아 반사되어 자신의 이마를 가격하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또는, 제3자가 남녀에게 총을 쏘고 사라진 것이라는 증거가 발견될 수도 있다. 이렇듯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며 결과는 CSI조사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제 막 CSI는 가동했기에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무턱대고 수사반장의 추론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다. 이미 수백 만여 국민들은 SNS와 팟캐스트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생활 속에서 함께하고 있으며, 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정확히 봐야 한다. CSI는 만만한 수사극이 아니다. 너무 선명한 혈흔과 진짜같은 시신은 처음 보는 시청자들을 힘들게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의 적응기가 지나면 밋밋한 수사반장은 떠나보내고 CSI를 즐기게 된다,

대선에 과연 SNS와 팟캐스트가 어떤 결과를 미칠지 궁금하다면, 나부터 듣고 글을 올리며 즐겨보자. 구경도 좋지만, 진짜 재미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참여'하는데서 더 크게 느끼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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