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기업을 세종시가 빨아들인다는 이른바 '세종시 블랙홀' 논란이 한나라당 내부에서 폭발했다. 구체적인 기업 이름까지 언론에 오르내리자 지방에 지역구를 둔 당내 의원들의 불만도 커진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기업 유치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운찬 총리의 잦은 세종시 개념 변경도 혼란을 주고 있다. 당초 기업중심 도시에서 경제도시를 거쳐, 지난 주말에는 과학중심도시를 천명했다.
특히 과학중심도시의 핵심인 서울대 이전설과 관련해 <조선일보>는 23일 "정부가 세종시 이전과 서울대 법인화를 두고, 서울대와 빅딜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 쪽을 막으면 다른 한 쪽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형국이다.
이날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주호영 특임장관은 내부 반발 진화에 진력했다. 그는 "정부가 기업 유치 원칙과 관련한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것이 정해지면 세종시 자족 기능 확보 목적 때문에 다른 지방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주 장관은 또 이 자리에서 "양해각서(MOU)가 체결된다고 해도 기업이 무조건 가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내달 10일 경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겠다는 정부가 '기업 유치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부산 여론, 충북 여론, 대구 여론도 모두 악화"
주 장관의 이같은 진화에도 불구하고 허태열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제 지역구에 있는 삼성전기가 연초에 1400억원을 들여 부산공장을 증설할 사업계획을 확정, 추진해왔는데, 최근에 행복청과 토지공사가 약 500억의 기반지원시설을 해주겠다고 해서 부산에 지으려던 공장을 세종시 연기군 동면에 짓기로 해서 부산의 여론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고 직접적인 불만을 표했다.
허 최고위원은 "세종시 건설하는 목적이 뭐냐. 수도권 과밀억제와 지방 균형발전에 있는 것"이라며 "수도권 공장을 가져가는 것은 (세종시 목적에) 부합된다. 그러나 지방 공장을 빼다가 세종시에 넣는 게 합당한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소속 정우택 충북 지사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우리가 현재 유치 교섭을 하고 있는 많은 회사들이 세종시로 간다고 하는 보도가 나오면서 반발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지사는 특히 "(롯데의) 맥주공장 같은 경우 저희 지역(충북)에 와서 두 군데에서 수맥과 수질검사를 다 끝낸 상태"라며 "이것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세종시에 밀어 넣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뜨끔 뜨끔하다"고 말했다.
정 지사는 오송 생명과학단지와 관련해서도 "당초 오송 쪽에서 분양을 유치할 당시 '앞으로 식약청 등 6대 국책 기관이 올 뿐 아니라 앞으로 오송 생명단지에 바로 10km 이내에 위치하고 있는 세종시에 경제관련부처가 이전함으로써 여러 가지 각종 인허가라든지 지원이 용이하다'는 것을 집중 홍보해 왔다"며 "이런 것을 믿고 온 회사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것이고 저희 지자체도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강한 불만을 표했다.
대구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구 쪽으로 오겠다고 하는 기업체들 중에서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하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군다나 대구가 추진하려고 하던 게 글로벌과학비즈니스 벨트인데 이것도 세종시로 정했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지역 분위기가 좋지 않다. 농담 삼아 정운찬 총리를 대구의 기업유치위원장으로 모셔야 되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행복도시건설청이 지난 2월에 외국계 투자회사인 CCI와 의료과학시티 건설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보도와 관련해서도 "아직도 사실인지 믿기지 않는다. 일반 건설회사도 아니고 국가기관들이 이런 행동을 했다고 그러면 정말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기업들도 아마 죽을 맛일 것이다. 대표적인 관치경제의 한 모양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가자 정의화 세종시특위 위원장은 이날 "정부는 확정되지 않은 방침을 언론에 흘려서 여론을 탐색하는 듯한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모든 지방 언론이 (세종시) 블랙홀 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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