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프레시안> 보도는 정당하다고 경찰이 26일 판단했다.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한편, "새빨간 거짓말",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자극적인 언사로 프레시안 명예를 훼손한 정 전 의원의 혐의는 인정됐다.
지난 3월 7일 프레시안이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단독 보도한 지 4개월 여 만에 나온 수사당국의 첫 판단이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프레시안은 '허위 보도' 누명을 벗었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정 전 의원은 그동안 성추행 가해자들의 전형적 행태를 답습했다. 최초 대응은 잡아떼기였다. 피해자 A씨(안젤라)가 프레시안 인터뷰에 이어 옛 남자친구에게 보낸 이메일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2011년 12월 23일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정 전 의원은 "렉싱턴 호텔에 간 적조차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다음 수순은 사건을 진실 공방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7년 전 벌어진 사건의 정확한 시간대를 특정하라고 주장하는 등 성추행 입증 책임을 피해자의 몫으로 떠넘겼다. 피해자와 프레시안을 비난하는 총 4차례의 보도자료를 통해 미투 폭로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언론 플레이도 했다. 그 와중에 '미투 공작설'을 유포하던 김어준 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방송을 통해 정 전 의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사진만을 선별해 공개했다.
정 전 의원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발화자를 빼고, 이를 보도한 프레시안 기자들만을 상대로 곁가지 소송을 건 점도 의혹의 실체를 회피한 채 언론을 압박하기 위한 소송 전략이었다. 결국 피해자가 시간대를 특정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자 정 전 의원은 뒤늦게 카드 내역을 자진 공개하며 자신이 제기한 소송을 취하했다.
진실 회피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조장, 여론 호도를 위한 거짓말을 20여 일 간 눈덩이처럼 불린 정 전 의원은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가해 사실 인정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정 전 의원과 일부 지지자들의 '가짜 미투' 음해 속에 정 전 의원을 상대로 한 프레시안의 소송은 불가피했다. 2011년 발생한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가 1년 안에 직접 고소할 때에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 규정이 폐지(2013년 6월 19일)되기 전에 발생한 까닭에 소추 요건을 갖추기 어려웠다.
이처럼 피해자 A씨가 직접 정 전 의원을 상대로 성추행 여부에 대한 법적 판단을 구하기 불가능한 여건에서, 프레시안은 진실 규명을 위한 대리전을 회피할 수 없었다. 프레시안의 명예회복을 넘어, 피해자가 당한 성추행의 실체를 규명하고 미투 운동의 대의를 복원하는 것이 본질적인 취지였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4개월여 동안 사건을 조사한 경찰의 수사 결과는 '절반의 진전'에 머문다. 경찰 발표의 핵심은 "2011년 12월 23. 렉싱턴호텔 1층 카페에서 두 사람이 만난 사실이 인정된다"는 데에 있다.
프레시안 보도가 허위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 전 의원이 피해자를 만난 자리에서 성추행을 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미뤄둔 것이다. 경찰은 관련자 진술, 정 전 의원이 렉싱턴 호텔 카페에서 사용한 카드결제 내역, 피해자가 제시한 이메일 및 SNS 사진 등 증거를 종합한 결론이라고 밝혔으나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 대목이다.
우선 경찰은 피해자와 주변 인물들의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증언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피해자는 3월 7일 보도된 프레시안 인터뷰부터 3월 27일 직접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 이르기까지, '2011년 12월 23일 렉싱턴 호텔 카페에서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 당했다'는 진술을 단 한 번도 번복하지 않았다. 정 전 의원과 대질까지 진행한 경찰 조사에서도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주장을 뒷받침해 온 주변인들도 경찰 조사에서 일관된 진술을 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2주 뒤에 당시 교제하던 남자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정 전 의원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정황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해 검증한 결과 이 이메일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성추행 여부에 대한 판단을 외면함으로써 주변인 진술과 이메일에 담긴 증거능력을 과소평가한 듯한 뒷맛을 남겼다.
명백한 증거나 목격자가 나오기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 상, 합리적 정황이 인정될 경우 위험부담을 감수한 피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해석해야 한다는 게 미투 운동이 일깨운 사회적 합의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지난 3월 경찰대를 방문해 "'미투'를 외친 여성들의 용기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바로 세워달라는 간절한 호소"라며 "그 호소를 가슴으로 들어달라"고 수사당국에 당부한 바 있다.
검찰 손으로 넘어간 이번 사건 수사가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명명백백한 규명으로 이어져야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 밝혀진다. 소송의 성격 상 법적 판단의 준거는 프레시안에 대한 정 전 의원의 명예훼손 여부이지만, 미투 운동의 본령에서 검찰이 수사 의지를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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