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판세는 여전히 혼미하다. 이러한 가운데 주말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민주당이 1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높다. 한겨레신문과 서울신문의 전문가 조사를 합치면 전문가 3명에 2명 꼴로 민주통합당 우세를 예측했다. 1당이 135석 ± 알파가 될 것이며 1당과 2당과의 의석 차이가 10석 미만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하지만 방송3사 조사를 포함해 지난주 보도된 선거전 마지막 여론조사를 보면 오히려 새누리당 우세 흐름으로 변하고 있는 듯하다. 야권이 다소 우세했던 접전 지역에서도 격차가 줄어들거나 뒤집혔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자체 분석도 새누리당 120~130석, 민주통합당 110~120석 등으로 새누리당이 다소 앞선다. 그리고 70여곳을 예측불허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야권 우세 예측을 내놓고 있는 근거는 바로 '숨은 표'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치러진 대부분의 선거에서 야권의 숨은표가 상당수 존재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절정에 이른 바 있다. 여권 관계자들도 공공연히 숨어있는 야당표가 5% 이상 될 것이라고 한다.
▲ 이번 4.11 총선의 승패를 결국 투표율에 달렸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과거에는 숨은 표에 보수당 지지층 다수였으나...
숨은 표의 향배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왜 특정 지지층이 자신의 의사를 은폐하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숨은 표란 투표 참여 의향도 높고 누구를 지지할지 어느 정도는 결정해둔 상태이나 여론조사로 포착되지 않는 층이다. 역대 선거에서 숨은 표는 대체로 보수표 비중이 높았다. 민주 진보 계열 정당 지지층은 젊은 층이 다수이기 때문에 자신의 지지를 적극 표출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고연령층은 자신의 의사를 숨기는 경향이 있었다. 이 층은 평소에는 젊은 층의 목소리에 눌려 조용히 있다가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그 결과 보수정당 득표율은 선거 전 여론조사 보다 높은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2008년 8월 교육감 선거부터 숨은 표의 방향이 이전과 달라졌다. 야권지지층들이 평소에는 자신의 의사를 숨기고 있다가 투표장에서 강렬하게 표출했다. 이러한 경향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여권 후보가 일방적 우세를 보였으나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야권 후보 우세로 나타나거나 격차가 미미했다.
누가, 왜 무당파층으로 숨는가
숨은 표는 정치적 이유에서든, 사회적 분위기 탓이든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위축된다고 느낄 때 나타난다. 그리고 마땅한 대안이 부재할 때도 숨은 표가 많아진다.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론이라는 단일 이슈의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는 여권에 비판적인 층들이 곧바로 야권을 지지하기 쉽다. 하지만 정부 여당도 심판해야 하지만 야당도 못 미덥고 말바꾸기 등 문제가 많다고 생각할 때 유권자들은 특정 정당(후보)을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숨은 표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기다.
실제 최근 무당파층으로 숨어있는 표들을 점검해보면 20-40세대들이 유난히 많다. 이같은 경향은 전국 조사와 지역구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포착된다. 과거에는 고연령층이 무당파층으로 많이 숨어있던 것과 대비된다. 그리고 숨은 표의 정치적 성향은 야권쪽이 다소 강하다.
3월 31일 한겨레-KSOI 조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당 비례 투표에서 모름/무응답의 전체 규모는 16.7%인데 반해 20대, 30대, 40대는 각각 22.1%, 30대는 23.6%, 40대는 13.2%로 나타났다. 반면 50대는 11.5%, 60대 이상은 13.4%로 나타나 2030세대에서 무당파층 비중이 높았다. 민간인 사찰 문제가 총선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무당파층의 경우 55%가 여당에 불리할 것으로 예측했고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27.4%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여당도 야당도 못마땅하기 때문에 충분한 정보와 신중한 선택을 위해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지 않던 층들에게 민간인 사찰 이슈의 파급 효과가 클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못미더워도 다시 한번 야권을 지지할 명분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숨은 표에 2040세대 비중 높아
앞서도 언급했듯이 역대 선거와 달리 2040세대에서 자신의 의사를 숨기는 숨은 표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2040세대의 탈여권 움직임은 2010년 지방선거 이후 한국 정치 변화를 설명하는 핵심적 현상이었다. 1대 99로 대표되는 양극화 흐름, 불공정한 사회질서에 분노하면서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대변해줄 대안을 찾아 나섰다.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4월 재보선에서는 여권 심판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2011년 하반기 안철수 현상,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러번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살리지 못한 무능력한 야권에 2040세대들도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선거구도가 흔들렸다. 특히 2월과 3월 쇄신 국면에서 새누리당에 밀리고 야권단일화 여론조사 조작 파문으로 후폭풍에 직면했다. 반면 새누리당을 지지할 명분이 분명해진 5060세대 등 여권지지층의 결집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여권에 대한 분노, 야권에 대한 불신 속에 2040세대가 오히려 정치적 선택을 유보하면서 무당파층으로 숨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미 충분히 지지할 준비가 된 2040세대에게 지지할 명분을 제공하지 못한 야권의 무능력이 이번 총선을 혼전으로 몰고 갔다.
문제는 투표율이다!
숨은 표가 투표일까지 계속 숨어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의미없는 표가 된다. 숨은 표를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2040세대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여 '커밍아웃'할 명분을 주어야 한다. 즉 투표율이 관건이다.
사실 선거에서 누구를 선택하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투표했는가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지지율은 정치적 생명력이 부여되지 않은 피상적 지지율일 뿐이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가는가가 선거를 좌우한다. 투표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새로운 층이 투표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 지방선거의 높은 투표율,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 그리고 2008년 이후 재보궐선거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높은 투표율은 2040세대가 대거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보수 우위의 정치지형에 균열이 발생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유권자의 성향이 진보화되는 등 크게 바뀌어서라기 보다는 과거에 투표하지 않았던 새로운 층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새로운 층이 유입되면서 2007년, 2008년 선거를 지배하던 성장담론, 뉴타운욕망이 부차적으로 물러나고 분배, 복지, 경제정가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이 하락한다면, 그것은 새로 유입된 층이 다시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는 기존의 구도, 즉 성장과 욕망이 지배하는 구조로 회귀함을 의미한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균열은 부자와 가난한 자들 사이의 균열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체제에 의해 좀 더 강한 동기를 부여받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균열이다. 즉, 현재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일수록 투표 동기도 강력하다. 반면 현 체제에서 소외되어 있는 층은 투표 동기도 약하기 때문에 현재의 균열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제되어 있는 층에게 투표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경우 기존 체제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층이 투표장으로 유입되어 기존의 균열축이 새로운 균열축으로 대체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대표될 수 있다.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기존의 균열축에 변화를 가져온 중대선거일수록 투표율이 높았다. 투표율을 높인 것은 당연히 젊은층의 투표참여였다. 이들에게 투표할 동기를 부여하고 바뀔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불러일으키면서 투표율도 높아지고 정치적 변화폭도 커졌다. 따라서 문제는 투표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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