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간인 불법 사찰 은폐 의혹과 관련해 연루자들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특히 불법 사찰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에게 전달된 관봉(官封) 형태의 돈 5000만 원의 출처에 대한 류충렬 전 총리실 관리관의 말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 돈은 장 전 주무관에 대한 '입막음용' 성격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즉, 이 돈의 출처를 확인하면 민간인 불법 사찰 은폐 윗선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건넨 5000만 원은 관봉 형태의 돈뭉치였다. 관봉은 한국조폐공사가 신권을 찍어 한국은행에 보낼 때 십자 띠 모양으로 특별 포장하는 것을 칭한다.
장 전 주무관은 이 돈을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류충렬 전 관리관을 통해 전달했다"는 취지로 폭로했었고, 류 전 관리관은 "몇몇 지인들과 모인 사적인 자리에서 (불법 사찰로 구속된) 이인규, 진경락 등의 변호사 비용을 모아보자고 제안했다"며 "나를 포함해 총 7명 내외의 지인들이 4000만 원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전달된 돈이 관봉 형태임이 드러나면서 류 전 관리관은 "지인에게 시켜 돈을 마련했다"고 말을 바꿨다. 돈을 마련한 사람이 7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장 전 주무관의 주장대로 장석명 비서관이 돈을 마련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돈 전달자가 장석명 비서관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과 별개로, '입막음용'으로 5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관봉 형태로 마련할 수 있는 인사가 누구냐는 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돈의 출처가 불법 사찰 은폐 의혹을 밝힐 '열쇠'인 셈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변호인인 이재화 변호사는 6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관봉은) 시중 은행 같은 경우는 원칙적으로는 띠지를 다 풀게 돼 있다. 그런데 띠지 채로 나가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으로 매뉴얼에 위반해서 VIP들에게만 지급한다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도 문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5000만 원의 출처가 정권 차원의 '비자금'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비자금을 조성한 '정권 실세'가 불법 사찰 은폐의 '몸통'이 될 수 있다. 혹은 대통령의 특수활동비라는 말도 나온다. 특수활동비는 대통령이 특별한 업무에 사용하는 예산이다. 기관이나 단체, 개인에게 주는 조의금, 금일봉, 격려금 등으로 통상 사용된다. 관봉 형태의 돈을 인출하도록 도와준 '기관'이 존재할 것이라는 의심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국세청 등 정부 부처가 전방위적으로 동원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간인 사찰 은폐'에 사용된 5000만 원의 출처가 드러나면 청와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은 사찰 자체에 대한 진상 규명과 별도로 권력 핵심부의 조직적 은폐 의혹이 거세게 제기될 수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본질이 비리에 대한 은폐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또 한차례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여권 일각에서 조차 명박 대통령의 '하야'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불법 사찰 청문회' 명분 쌓아주고 있는 검찰
검찰은 민간인 불법 사찰 재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은 전날 장진수 전 주무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증거인멸 입막음 대가로 받은 수천만원의 출처와 돈 전달 경위 등을 조사했다. 이어서 검찰은 불법 사찰 내용이 담긴 노트북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진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을 6일 소환할 예정이다.
진 전 과장은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하며 청와대 하명사건 등을 사찰팀에 배당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사건이 터지자 사찰 내용이 담긴 노트북을 외부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장 전 주무관의 증언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2010년 총리실 압수수색 당시 자료를 파기할 시간을 준 것으로 의심된다. 게다가 관봉 사진 복원에 미적대면서 "재수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치욕적인데, 수사 의지마저 없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결국 검찰은 청문회 등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에 명분을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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