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일주일 앞둔 현재 판세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도무지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혼전양상이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목전에 두고 여론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조사결과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특히 4월 2일, 3일 발표된 방송3사 공동조사에서는 수도권의 수십개 지역이 초접전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지역 조사와 달리 전체 흐름은 주말을 고비로 새누리당이 다소 몰리는 형국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들에서 이같은 징후가 나타난다. 야권연대효과가 일정부분 나타나고 있는데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인화성 큰 이슈가 가세하면서 그동안 차분히 포인트를 쌓아온 새누리당이 흔들리고 있다.
이같은 전국적 흐름이 지역단위에서는 별로 반영되지 않고 있거나 오히려 야권이 꾸준히 우세를 보였던 지역조차 초접전 또는 박빙열세로 바뀌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사실 역대 어느 총선도 투표함을 열기 전까지는 늘 혼돈 양상이었고 방송사 출구조사나 예측조사도 빗나가기 일쑤였다.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인 대선이나 16개 광역시 중심으로 치러지는 지방선거와 달리 총선은 선거구가 약 240-250개에 이르기 때문에 예측이 매우 어렵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민심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기보다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는 다소 격차가 벌어졌던 지역조차 경합지역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특히 혼전 양상이 극심하고 예측도 어렵다.
지역 선거는 이슈보다 인물경쟁력, 지역기반 등이 더 영향을 줄 수 있어
▲ 총선을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예측이 어려운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연합 |
둘째, 지역 내에서도 수도권과 지방간 이슈민감성이 상이할 수 있다. 가령 민간인 사찰 이슈의 경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반면, 지방으로 가면 그 감도가 현저히 약화될 수 있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인 수도권과 PK지역을 비교하면, 민간인 사찰 이슈가 수도권에서는 야권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나 오히려 이같은 움직임이 PK지역을 자극하면서 관망층이나 유보층의 두려움을 야기하여 여권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른바 '제2의 초원복집' 사건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2012년 총선의 특수성, 회고투표와 전망투표 성격이 혼재되어 있어
셋쌔, 이번 총선이 지니는 특수성이다. 4.12총선은 대선과 같은 해에 치러지면서 그 전초전으로 치러진다는 특성이 있다. 흔히들 총선은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중심이 되는 회고투표적 성격이 강하고 대선은 미래 비전을 보고 투표하는 전망투표적 성격이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그 어느 때보다 회고투표, 즉 야권이 주장하는 'MB정부 심판론'이 강세를 띠어야 한다. 그런데 'MB정부 심판'은 2010년 지방선거부터 몇 차례의 재보궐 선거를 거쳐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절정에 이른 바 있다. 속된 말로 '약발'이 떨어진 것이다. 오히려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이슈가 쟁점이 되자 여권은 말바꾸기를 한 야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중들도 적잖이 공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총선을 과거와 미래의 구도로 규정지으면서 '심판'이라는 과거적 행태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누가 이끌어갈 것인가를 놓고 투표해야 한다는 박근혜 위원장의 '전망투표'론이 건설적으로 비춰지고 있기도 하다.
여론조사로 인한 혼란, 여론조사방법의 문제인가?
넷째, 여론조사로 인한 혼란이다. 수도권 격전 지역에 대한 언론사 발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같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도 크게 다른 경우들이 많다. 예를 들어 방송3사와 국민일보가 각각 같은 날(3월 31일-4월 1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으나 몇몇 지역의 경우 결과가 크게 상이했다. 서울 중구 지역의 경우 방송 3사 공동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정진석 35.6%, 민주통합당 정호준 30.5%였으나 국민일보 조사에서는 각각 42.8%, 47.0%였다. 또한 관악을 지역은 방송 3사 공동조사에서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26.1%, 무소속 김희철 32.8%였으나 국민일보 조사에서는 각각 33.1%, 30.7%로 순위가 뒤바뀌었다. 물론 두 지역의 조사 모두 지지도 격차가 오차범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순위까지 바뀔 경우 여론조사가 정확한 정보제공은 커녕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론조사 무용론, 여론조사 불신론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여론조사를 둘러싼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분명한 것은 총선의 초 경합지역의 경우 여론조사만으로는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민심의 급격한 변화를 여론조사라는 틀로 잡아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선거구 내에서도 소지역별로 민심이 결정되는 다양한 구조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역대 총선에서 방송사의 예측조사, 출구조사가 다수 빗나간 것이 이를 어느정도 설명해주고 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지금의 여론조사는 통상적인 총선 여론조사의 혼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지방선거 여론조사가 완전히 어긋난 이후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선거 전후로 보도된 방송3사 조사결과가 실제 결과에 거의 부합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 위기가 다소 무마되는 듯 했으나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다시 거세게 부상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까지만 해도 KT전화번호부를 사용한 전화면접조사가 일반적 방식으로 통용되었으나 지금은 RDD(무작위 전화번호 추출 방식), 유선전화와 휴대폰전화를 이용한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이 중 어느 것이 가장 과학적이고 여론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단언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국흐름, 그동안 새누리당 주도 흐름에서 변화 기류 나타나
총선이 혼전이고 예측이 어려울수록 큰 흐름 위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선거구의 판세도 중요하지만 전체 선거 흐름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몇 십석의 의석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은 전체 흐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전국을 대상으로 3월 31일 실시된 한겨레-KSOI 조사를 보면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새누리당 후보' 40.8%, '야권단일후보' 45.9%로 나타났다. 비례의석을 결정하는 정당투표 의향도 '새누리당' 36.8%, '민주통합당' 33.5%, '통합진보당' 7.2%로 나타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지지도를 합칠 경우 새누리당을 추월한다. 한 달전인 2월24~25일 조사에선 민주통합당(32.9%)과 통합진보당(3.1%)을 합쳐도 새누리당(38.2%)에 뒤쳐졌다. 새누리당이 1%만의 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쇄신노력을 통해 차분히 점수를 쌓아오면서 주도권을 회복했으나 선거가 임박하면서 다시 흐름이 야권우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연대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데다 민간인 사찰이슈가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조사에서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이 총선에서 여권에 불리한 방향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67.4%에 이른 것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같은 흐름이 서울과 PK지역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흐름이 개별 지역 선거로 까지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이슈에 민감한 수도권 20대와 30대에게는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꽁꽁 속내를 숨기고 있는 유보층의 선택은?
또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아직까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 또는 유보층의 선택이다. 조사마다 다르지만 유보층의 규모는 20-30%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층을 분석해보면 약 절반은 선거에 관심이 없는 층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선거에 관심이 높은 층이다. 후자의 경우 투표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속으로는 특정 후보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꽁꽁 숨기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역대 선거 조사에서도 유보층은 늘 일정부분 존재했고, 이 층을 해부하고 분석하는 것이 예측 조사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 층이 좀처럼 속내를 비추지 않고 있다. 이 층의 선택이 총선 결과를 좌우할 것임은 당연하다.
선거에 관심이 많은 유보층을 다양한 각도로 접근해서 살펴보면 이 층의 성향을 살펴볼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잡힌다. 연령 등 인구학적 특성이나 이슈측면에서 볼 때 이 층은 반여성향이 다소 강하다. 따라서 수도권 접전 지역에서는 야권의 숨은표가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람'에 의해 휩쓸리지 않는 정치의 정상화 과정?
또 한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은 왜 이 층이 과거보다 더 꽁꽁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선거 전 여론조사가 일제히 어긋났던 것과도 관련을 지닌다. 현 정부들어 정부 비판 등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위축되는 사회적 분위기등으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여론조사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숨기는 경향이 적잖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오히려 대안이 될수 있는 정치세력이 부재한 정치현실이 유보층이 끝까지 의사를 숨기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을까? 특정 세력에 대한 비판만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유권자들도 여러차례의 학습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이처럼 과거와 같이 '바람'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꼼꼼한 평가와 판단을 통해 선거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가 '정상적 정치(nomal politics)'로 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의 혼돈이 구시대의 어둠이라기 보다는 새시대의 전야로 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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