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단순 무더위가 아니다. 폭염도 아니다. 그야말로 살인 더위다. 세계 곳곳에서 폭염 때문에 숨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섭씨 30대 후반을 오르내리는 기온은 더위 올림픽 대회에 나가더라도 예선 통과는 어렵다. 적어도 40도는 넘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올 들어 이미 1만 명 이상의 온열환자가 생겼고 이 가운데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리적으로 더울 수밖에 없는 적도 인근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 국가에서는 폭염 때문에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11억 명이라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수치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 등 에어컨이 널리 보급되고 전력 사정이 좋은 선진국에서도 더위 비상이 걸렸다.
폭염 사망, 불볕더위 비상은 남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도 폭염은 당장 특단의 대책을 세워 대처해야 할 준재난 상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기세가 날이 갈수록 등등하다. 폭염과 불볕더위는 자연재해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로 인한 사망, 특히 집단 사망은 결코 자연재해가 아니다. 사회적 재난이다. 아니 사회적 재난이라고 보고 국가가 대처해야 한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 며칠 사이 안타까운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유치원에 통학버스를 타고 가던 어린이가 유치원 교사, 통학버스 운전기사 등 어른들의 잘못으로 버스 안에 장시간 방치돼 있다 숨진 사고는 뉴스를 듣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만든다. 부모들은 찢어질 듯한 아픔에 정신이 나가 어찌 할 바를 모른다.
판단력과 위험에 대한 인지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노인들이 밭 등 야외에서 무리하게 일하다 잇달아 숨지는 사고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불볕더위 속에 도로에서 보도블록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어린이, 노인, 노동자 가리지 않고 폭염의 제물이 되고 있다. 이런 사망 사고는 모두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에 더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잊히는가 싶으면 생기는 통합버스·자동차 방치 어린이 질식·온열질환 사망 사고의 경우도 차 안에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원인이지만 버스에 특수경보장치를 달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제는 장치 장착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린이가 애꿎게 숨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폭염 희생자는 안전약자 내지는 빈곤층
폭염의 희생자는 대개가 안전약자 내지는 경제적 빈곤층이다. 이는 선진국, 개발도상국, 후진국 할 것 없이 만국 공통이다. 따라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막기 위해서는 교육과 홍보, 경보 발령뿐만 아니라 국가 또는 지자체 차원에서 통상적이 아니라 특단의 대책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 물론 노동자를 부리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지난 16일 오후 섭씨 36도를 오르내리던 무더위에 세종시 도로 한복판에서 보도블록 작업을 하던 노동자는 젊은 축에 들어가는 30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작업 중 열사병 증세로 쓰러졌다. 병원에 옮겨졌을 당시 그의 체온은 무려 43도나 됐다고 한다. 체온조절을 하는 뇌 중추는 이미 마비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는 결국 다음 날 오후 만 하루 만에 숨졌다.
만약 그 작업 현장에서 감독하던 책임자가 수시로 노동자의 상태를 체크했더라면, 아니면 적어도 살인 더위 속에서는 작업을 하지 않고 햇볕이 내리쬐지 않는 시각에 작업을 했더라면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낮 기온이 36도를 오르내렸다면 땡볕에 노출되고 도로가 마구 달아오른 오후 4시경에 노동자가 실제 체감하는 온도는 45~50도가 될 수도 있다.
세종시 노동자 사망은 앞으로 한반도에서 계속될 폭염 속에 야외, 특히 도로와 같이 실제 체감온도가 매우 높을 수 있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대해 작업 여부 또는 작업 시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다. 즉 '안전을 최우선해야 한다'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제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교훈으로 얻었다.
폭염 속 제물 1호는 농어촌 지역 노인들
농어촌 지역의 노인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폭염의 제물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다. 이들은 폭염에 대응할 수 있는 신체적 여건이 나쁘다. 학력도 낮아 폭염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을 하더라도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 이들은 아울러 판단력도 나이 등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흐리다. 텔레비전 등을 통해 폭염 위험을 알려도 그들의 행동까지 바꾸기가 쉽지 않다.
공동체의 여론주도층, 즉 새마을지도자, 전·현직 이장 등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웃 주민들이 폭염 속 작업을 하지 않도록 수시로 살피고 소통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또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하도록 만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요즘과 같은 살인 폭염 더위 때는 도시지역에서 에어컨도 없이 쪽방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의 건강과 안전도 걱정이다. 이는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가 총력을 기울여 대응해야 가장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 기저질환을 지닌 노인의 경우 더욱 위험하다. 만약 이들이 폭염 여름나기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한낮에는 냉방장치가 가동되는 학교나 공공시설 등에서 이들이 지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든 소통수단 총동원해 폭염 위험성 알려야
폭염은 단지 매서운 더위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매우 경계해야 할 위험이다. 아니 재난이라는 사실을 모든 소통 수단을 동원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알려야 한다.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라디오, 종편, 그리고 마을방송, 휴대폰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되 특히 폭염 취약 계층이나 집단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을 골라 전략적 접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폭염은 막을 수 없지만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나 질환은 막을 수 있다. 학부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염의 위험성과 폭염으로 인한 집단 인명피해 발생 사실을 알려야 한다. 또 위험 제로는 달성하기 어려우나 앞서 열거한 여러 사례, 즉 통학버스 어린이 질식 혹은 온열질환 사망이나 도로작업 노동자 사망, 농촌 노인 밭일 작업 중 사망 등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었다. 지금은 폭염이 보름, 한 달 이상 갈 수 있다고 보고 중앙정부, 지자체, 기업, 언론 등이 힘을 보태 폭염 희생자를 줄이는데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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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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