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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왜 월가를 두려워하나?"

[시민정치시평] 월가점령운동과 금융개혁의 향방

2011년 9월 17일 뉴욕의 주코티(Zucotti)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점령운동이 새 봄에 첨단 IT 기자재로 재무장해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할 태세다. 전 세계의 이목이 여전히 월가점령운동세력에서 집중되고 있는 것은 이 운동이 21세기 미국자본주의의 정곡을 조준하여 이에 정면 도전할 뜻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내건 슬로건은 극소수의 1%가 국민 대다수 99%를 정치경제적으로 압도・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금권정치)의 아성을 허무는 것이다.

이 운동이 전하는 메시지가 워낙 명료한데다 작금의 뒤틀린 경제현실에 대한 비판이 큰 공감과 반향을 일으키자, 월가점령운동은 미국 내 주요 도시 뿐만 아니라 런던, 파리, 로마, 동경 등 전 세계의 다른 국가와 도시로 파급되었다. 이 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지, 그리고 어떤 사회경제적 효과를 불러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이들이 내걸었던 핵심 메시지 만큼은 쉽게 잊기 어려울 것이다.

▲ 오바마 미 대통령 ⓒAP=연합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07-2009년 서브프라임 대출 위기에서 시작하여 리먼브라더스사의 파산으로 미국 및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와 혹독한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미국 및 전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수 조 달러의 유동성을 투입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재정자금을 쏟아 부었다. 경기회복을 위해 거의 3년째 제로금리정책을 무리하게 유지하고 있지만 별다른 경제회생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당연히 위기의 주범인 월가의 거대금융기관에 대해 금융위기의 책임을 제대로 물었어야 했는데 막대한 세금만 투입했을 뿐, 그에 상응하는 책임추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부어 월가의 거대금융기관을 살려 놓은 지 1-2년이 채 안되었는데도 이들이 천문학적 숫자의 임원 및 경영자 보수와 퇴직금 챙기기=돈잔치에 혈안이 되었다고 하니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대마불사의 폐해라고나 할까,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고 할까?

마침내 미국 의회는 월가의 거대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및 대마불사의 폐해를 철저하게 불식시킴과 동시에 시스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 마련에 나섰다. 이 법안은 2009-2010년에 걸쳐 상하 양원에서 발의・ 심의되었으며 최종적으로 2010년 7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이 법안에 공식 서명했다. 본 금융규제개혁법의 최종 정식 명칭은 '닷-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보호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이다.

이 법은 총 16장(Title) 1601조(Section)로 구성된 실로 방대한 내용이다. 법의 내용을 공식적으로 압축 발표한 최종분량만 848 쪽에 달한다. 2002년 '사베인스-옥슬리 법'(Sarbanes-Oxley Act:SOA)이 66쪽,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이 37쪽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방대한 내용인지 짐작하고도 남을 듯하다. 아무튼 이 법은 1929-1933년 대공황을 직접적 계기로 루즈벨트 대통령 하에서 이루어진 뉴딜 금융개혁법 이후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금융개혁 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법이 전례없이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금융규제의 틀을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닷-프랭크 금융규제개혁법이 월가의 거대금융기관을 규율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법이 되려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침과 룰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 법안 제정 당시에는 이런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규칙들이 부재했거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 이미 월가의 금융자본=금융엘리트들이 막대한 로비자금을 살포하여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부적인 규칙을 삽입하도록 로비활동을 벌일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예측이 기정사실이 되어 닷-프랭크 금융규제개혁법이 무력화되거나 아니면 더 극단적인 경우 폐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1년 가을 이후 월가점령운동세력이 이구동성으로 월가 거대금융기관의 탐욕과 횡포, 그리고 그에 따른 갖가지 폐해를 성토하고 있는 와중에, 월가의 금융자본=금융엘리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특히 미국의 정치일번지인 워싱턴 DC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들이 월가점령운동세력의 주장과 비판에 일말의 관심을 갖거나 자기반성이라도 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이에 대한 답은 완전히 부정적이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들은 월가점령운동세력을 더 도발하고 자극하는 일들을 획책하고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월가의 금융자본=금융엘리트들은 월가의 금융규제개혁법을 무력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철폐하기 위한 치밀한 공작과 사전 물밑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닷-프랭크법이 통과된 이후, 월가의 거대금융기관(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모두)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여왔다. 거대금융기관 소속 로비스트들이 관련 변호사들을 확보하면 이들 변호사들이 상하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의회직원들을 모아 각종 법안 해설 내지 안내문을 만들어 돌린다. 이들은 이를 기반으로 의원들로 하여금 개정 법안을 작성하게 유도한다. 그 중 일부를 의원이 채택해 소위원회에서 발의하면 다수결 절차를 거쳐 법안 내지 개정 법안이 성립된다.

이들 거대금융기관이 로비자금으로 뿌리는 금액의 규모는 실로 가공할만한 수준이다. 미국의 정치자금을 모니터링하는 연구소인 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거대상업은행과 투자은행들이 로비활동으로 쓴 비용이 2010년에는 1억5760억 달러, 2011년에는 1억5950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이 막대한 자금으로 거대금융기관들은 금융 전문가들이나 금융법률 관련 정예 전문가를 의회에 투입하여 로비활동을 활발하게 벌여 왔다. 최근 이 로비활동의 결과로 월가의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면제 내지 약화시키는 방향을 가진 수정 법안이 벌써 20여 개 넘게 마련되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월가의 금융자본 ・금융엘리트들은 각종 월가금융규제법안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월가점령운동세력이 목도한 것이 바로 이런 현실이었다. 금융위기의 발생과 관련하여 월가 금융자본들은 반성은커녕 틈만 나면 거액의 로비자금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불리할 것으로 판단되는 금융규제개혁을 좌절・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주코티 공원에서 출발한 월가점령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철저한 금융개혁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지지가 폭발적으로 고조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제도정치권은 이런 시민사회운동의 분위기와는 정 딴판이다. 특히 월가 금융자본=금융엘리트들에 대한 철저한 금융규제감독을 하기 어려운 불리한 정치적 지형이 형성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우선 월가금융규제개혁법을 주도한 두 핵심인사인 크리스토퍼 닷 상원의원(상원은행위원회위원장)과 바니 프랭크 하원의원(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특히 금융법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바니 프랭크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설상가상으로 올 가을 의회선거에서 상하양원 모두 닷-프랭크 법 폐지를 당론으로 내세운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공화당 대통령후보들로 나온 인물 모두 닷-프랭크법에 대해 부정적이다.

상당 정도로 희석화되고 형해화된 금융규제개혁법을 그나마 끝까지 지키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인데, 지난 4년의 행적으로 보건데 그가 월가금융개혁을 제대로 수행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월가의 금융권력과 금융자본=금융엘리트들을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금융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금융이 없는, 혹은 금융을 목적의식적으로 배제한 일상생활을 상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민들이나 노동세력이 금융의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금융개입운동(financial engagement)내지 금융참여운동(financial participation)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딜레마는 현대금융문제가 너무 복잡한데다가 그 해법을 찾기에는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시민운동과 노동세력은 이런 어려움과 난관을 핑계로 하여 금융과 관련된 주요 의제들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회피하려고 했던 과거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융관련 의제가 이제는 더 이상 소수의 금융전문가, 금융관료, 금융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시민세력과 노동운동세력의 최대 과제는 까다로운 수많은 금융의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해법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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