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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김어준의 공통점은?

[시민정치시평]스마트 바보의 시대 - 잡스와 김어준의 미학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 혁명을 연 장본인이지만 삶 자체는 별로 스마트해 보이지 않는다. 사시사철 검정색 터틀넥 상의에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세상물정 모르는 '멍청이(nerd)'의 모습 그대로이다. 아이팟과 아이튠즈로 음악 산업을 압축파일 천국으로 만들어 놓고 정작 자신은 집에 가서 수 십 년 된 아날로그 LP판으로 음악을 들었다고 하니 괴짜였다는 말을 빼놓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볼 때 잡스는 세계 최첨단 기업을 이끄는 냉혈한 기업인이면서도 일상적인 삶에서는 순수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이제는 유언이 되어버린 스탠포드 대학 강연에서 그는 "항상 도전하고, 항상 바보처럼 살자(stay hungry, stay foolish)"고 말했는데, 실제 삶 속에서 스마트함과 바보스러움을 융합시키면서 그 동력으로 세상을 앞서 나간 것이다.

물론 잡스에게서 풍기는 인간적인 면모는 그가 철저히 계산해낸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잡스의 의도는 그의 공식 자서전에 실린 사진 속에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그림-1]. 초상사진만 놓고 보면 이것은 대기업 총수 같은 성공한 기업인의 사진이 아니라 창작하는 예술가의 모습 그대로다. 500년 전에 만들어진 천재 예술가의 이상화된 이미지가 그의 초상 사진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림-2].

ⓒ프레시안

독일 르네상스 미술가 뒤러가 28세에 그린 자화상은 일종의 예술가의 독립선언문 같은 그림이다. 각성된 자아를 통해 세상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화가의 자신감을 당당히 표현하고 있다. 잡스는 뒤러의 초상화에서 구도와 제스처 모두를 가져오면서, 조명이나 표정, 손동작을 부드럽게 만들어 아이디어맨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도전정신 보다는 생각이 많은 창작가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술가+기업가"의 조합이 흥미롭다. 예술인과 기업인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직업적 양극단이 한 인간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데, 융합형 인간이라는 새로운 21세기형 아이콘을 만들려고 했다고 평가할만하다.

잡스에 비견되는 또 한 명의 강렬한 융합형 페르소나를 뽑아보라면 나의 경우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씨가 그 반열에 오를 것 같다. 두 사람의 책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출판되면서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서 1, 2위를 나란히 이어나갔기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비교는 거의 반사적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 모두 역사상 전례 없는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교가 더 흥미로워 보인다.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의 표지에 실린 그의 사진은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낯설어 보인다[그림-3]. 사뭇 진지하게 보이는데 인터넷 논객으로 단도직입적인 논평과 욕설까지 서슴지 않는 그의 저돌적인 모습과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사진 속에서 드러낸 이미지 코드는 19세기 낭만주의이다. 스스로를 하나의 인간으로 봐달라는 메시지를 보낼 때 쓰는 코드이기도 한데, 난폭한 세상에 맞서야 하는 두려움을 심리적 저변에 깔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쿠르베가 그린 자화상(1844년)과 비교하면 좋을 듯하다[그림-4]. 앞서 본 뒤러의 초상이 당당하지만 약간 무모해 보이는 반면, 상처입고 신음하는 쿠르베의 모습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성숙한 자아를 상징한다.

ⓒ프레시안

김어준 총수는 사진 속에서 현실에서의 공격적인 모습과는 다른 처연한 모습으로 비장감을 자아내려하는데 그의 진지함이 신선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그는 그간 모든 면에서 종잡을 수 없는 예측불허의 괴짜형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 엔터테이너이자 투사형 운동가이며, 무엇보다도 인터넷 미디어를 십 수 년 간 이끌고 있는 전문 언론인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스티브 잡스가 기업인인 것처럼 김어준 총수도 언론인이다. 주류 언론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김어준 총수는 15년 동안 인터넷 신문을 발행했고 그가 주도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회당 6백만 이상의 다운로드와 함께 신뢰도가 40%를 상회한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김어준을 언론인으로서 그 실체를 냉정히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크게 보면 그가 확보해낸 새로운 영역은 기존 언론계에 득이 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은 신문사나 방송사에 부속처럼 되어있는 인터넷 사업부가 멀지 않아 회사를 먹여 살릴 날이 올 것이고 그러한 가능성을 김어준 씨가 선구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취재원-독자'가 하나가 되어 쓰는 '하이퍼텍스트 언론' 또는 만인이 함께 쓰는 '네트워크 언론'의 신기원을 그의 개성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뢰도 40%를 얻는 언론인답게 김어준 총수에게도 보다 책임 있고 균형 있는 비판이 기대된다. '싫다' 한 마디로 거절할지 모르겠으나, 이제 세상은 점점 더 그를 주변이 아니라 주류의 관점에서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판과 질투만큼 유혹의 강도도 더욱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밖에서는 천연덕스럽게 웃어대지만 김어준 총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닥치고 정치> 표지 사진에 숨어있는 쿠르베의 자화상 코드처럼 상처받고 깊은 번민에 빠져 있을 것 같다.

스마트 혁명을 이끈 잡스, 스마트 공간을 이용하는 김어준. 현실에서는 괴짜 같은 행동을 일삼는 두 사람은 모두 과거의 시점에서 보면 분열적인 다면적 인간형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의 관심과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을 보면 분명 인간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는 것 같다. 스마트와 바보, 폭로와 폭소, 명랑함과 진지함을 오갈 수 있는 다채로운 인간상이 대중들의 호기심과 공감을 불어 일으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세상이 스마트하게 변화할수록 우리 자신과 교집합을 지을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찾는 우리의 갈증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다양한 인간의 감성을 아우를 수 있는 인간형의 등장. 그것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인간에 대한 열정을 깨워 세계와의 열린 소통을 자극하는 긍정의 힘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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