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재를 시작하며
2018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5주년 기념일이다.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멈추고 있는 상태가 두 세대 이상이나 흘렀다는 말이다. 다행히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은 1950-53년 한반도에서만 싸운 게 아니다. 1964-73년 베트남에서도 싸웠다. 베트남전쟁은 '제2의 한국전쟁'이었던 셈이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정전협정 65주년 기념일인 7월 27일 판문점에서 종전을 선언하길 기대하며, '제2의 한국전쟁'인 베트남전쟁에 관해서도 생각해보고자 한다.
베트남전쟁은 가장 명분 없는 미국의 침략전쟁 가운데 하나다. 남한은 1960년대 초 미국이 베트남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적극적으로 먼저 파병을 제안했고 미국은 소극적으로 응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남한이 전투 병력을 파견하고 전쟁이 확대되자, 미국은 무리하게 남한의 추가 파병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북한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베트남 침략에 맞서 북베트남에 주로 전투기 조종사들을 파병했다. 아울러 남한의 추가 베트남 파병을 막기 위해 한반도 비무장지대 안팎에서 남한과 미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격행위를 벌였다.
난 2000년 10월 일본 <평화의 배>에 올라 강연하며 일본인들과 베트남 다낭에 있는 호치민 박물관을 견학할 기회를 가졌다. 다낭은 1965년 미군들이 처음으로 상륙해 베트남에서 가장 큰 육해공군 기지를 설치했던 곳이다. 박물관의 거의 모든 전시실은 미군들과의 투쟁이나 미군들에 의한 양민 학살에 관한 자료로 메워진 것 같았다.
그 가운데 한 전시실엔 커다란 태극기를 앞세우고 다낭에 상륙하는 남한군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 옆의 전시실에는 북한 지도자들이 미국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싸우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콩)을 격려하는 편지가 크게 확대되어 걸려 있었다. 베트남에서까지 남북한이 서로 싸운 것에 서글프면서도 묘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연재는 주로 다음과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남한이 왜 그리고 어떻게 베트남에 파병했는지 살펴보되 미국의 역할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첫째, 미국 국무부가 2000년 출판한 존슨 (Lyndon Johnson) 정부 시기 한미관계를 다룬 비밀 외교문서집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4~1968, Volume XXIX, Part 1, Korea.
둘째, 미국 국무부가 2009년 출판한 닉슨 (Richard Nixon) 정부 전반기 한미관계를 보여주는 외교문서집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9~1976, Volume XIX, Part 1, Korea, 1969~1972.
셋째, 미국 국무부가 2011년 출판한 닉슨 (Richard Nixon) 정부 후반기 한미관계를 보여주는 외교문서집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9-1976, Volume E-12, Documents on East and Southeast Asia, 1973~1976.
넷째, 미국 우드로 윌슨 센터 (Woodra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가 2011년 공개한 베트남 군부의 문서 "North Korean Pilots in the Skies over Vietnam."
한편, 한국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도 2005년 베트남전쟁 종식 30주년을 맞아 베트남전쟁 관련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이를 계기로 남한의 파병에 관한 배경이나 과정 또는 결과 등을 다룬 책과 논문이 많이 발표되었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박태균 교수는 2006년 발표한 논문 <베트남 파병을 둘러싼 한미 협상 과정>과 2007년 발표한 논문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에서 미국의 외교문서를 통해 파병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간의 협상 과정을 보여주며 그에 대한 문제점 등을 밝혔다.
우승지 교수는 2004년 발표한 <베트남전쟁과 남북한 관계>라는 논문에서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도 베트남을 지원한 사실을 소개하며 베트남전쟁이 남북 관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베트남전선은 한반도의 전선에 다음가는 제2전선이었던 것이다"며 베트남전쟁에 따른 남북한 사이의 충돌을 잘 보여주었다.
이정우 교수와 정재흥 박사 역시 2014년 발표한 논문 <한국군 베트남 파병의 과정과 평가>에서 주로 미국의 외교문서를 이용해 파병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한미 간의 협상 과정을 평가했다.
최용호 박사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낸 베트남전쟁 관련 자료집을 바탕으로 한국군 파병 및 철군의 배경 및 경과, 파월 한국군의 작전 및 활동, 그리고 파병의 영향 등 종합적 연구를 수행했다. 2004년 출판된 <베트남전쟁과 한국군>에서 "한국군 파병의 보다 정확한 배경은 한국 정부의 집요한 파병 요청을 미국 정부가 수용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한홍구 교수는 2003년 발표한 논문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화>에서 파병의 배경과 과정을 드러내며 그 영향 및 결과도 제시했다. 그는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을 미국의 강요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는 일부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홍규덕 교수는 2004년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과정과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군 파병의 원인과 과정을 파헤치며 이에 따라 한미동맹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았다.
나는 최용호 박사나 한홍구 교수의 주장과 조금 달리 처음엔 박정희 정권이 먼저 적극적으로 제안했어도 나중엔 존슨 정부가 무리하게 강요하다시피 요구했던 사실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우승지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베트남전쟁이 '제2의 한국전쟁'이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남한은 남베트남을 지원하고 북한은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각각 베트남에 파병했을 뿐만 아니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비무장지대에서도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재는 남한의 베트남 파병에 관한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다 미국과 베트남의 공식 문서를 바탕으로 기존 연구들을 조금 보완하고 수정하는 내용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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