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군 대마산업단지에서 발생한 45억 원 규모의 보조금 편취 사건은 지자체 보조금 관리 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법원은 범행 당사자에게 중형을 선고했지만, 이미 집행된 보조금 대부분은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로 사법적 단죄와 별개로,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행정 시스템 차원의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장밋빛 MOU'에 매몰된 실적 위주 행정
사건의 출발점은 화려한 투자 계획이었다. 범인 A씨는 해외 6개국 수출, 총 493억 원 투자, 대규모 고용 창출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지자체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대부분 허구에 가까웠다.
문제는 지자체의 검증 과정이었다.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 위기에 직면한 지방자치단체들이 투자 유치 '실적'에 과도하게 매달리면서, 기업의 실체에 대한 기본적인 실사조차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해당 업체는 실제로는 인력·설비·자본 기반이 거의 없는 이른바 '유령 회사'에 불과했지만, 영광군은 제출 서류의 진위보다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라는 홍보 효과에 무게를 뒀다.
그 결과, 연간 보조금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45억 원이 단일 업체에 집중 지원되는 초유의 결정이 내려졌다.
◇'지자체 간 경쟁'이 만든 조급한 판단
A씨는 "다른 지자체와도 협의 중"이라는 발언으로 영광군을 지속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유치 경쟁이 과열된 상황에서, 우량 기업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행정 판단을 서두르게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무 상태 검증, 사업 지속 가능성 평가, 담보물의 실질 가치 검토 등 필수적인 절차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담보로 제시된 부동산은 이미 복잡한 권리 관계로 얽혀 있어 실제 환가 가치가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선점하지 않으면 놓친다'는 심리가 냉정한 판단을 가로막았다는 분석이다.
◇선지급·사후관리의 한계…'사후약방문식 통제'
현행 지방재정법과 지자체 보조금 관리 조례는 부정 수급 시 환수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보조금을 일시에 선지급하는 구조에서는, 돈이 집행된 이후의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45억 원이 한꺼번에 지급된 이후, 범죄자는 자금을 은닉하거나 개인 채무 변제 등에 사용했고, 지자체가 확보한 실질적인 채권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마저 "보조금 회수가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지자체의 관리 부실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이는 현재의 보조금 관리 시스템이 '부정 수급 적발'에는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애초에 부정을 차단할 수 있는 사전 통제 장치와 실효적 담보 확보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복 막으려면 '제도적 잠금장치'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개인 일탈이나 담당 공무원의 부주의로만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구조적·제도적 보완 없이는 유사 사례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안으로는 ▲지자체 자체 심사를 넘어 회계법인·신용평가사 등 외부 전문기관을 활용한 교차 검증 의무화 ▲공장 착공·설비 도입·고용 창출 등 실제 투자 진척도에 따라 보조금을 나눠 지급하는 단계별 집행 시스템 ▲담보물에 대한 전문 감정과 실질 환가 가치 검증 강화 등이 제시된다.
이번 45억 원 보조금 편취 사건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상식을 행정이 망각했을 때, 그 대가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이제 필요한 것은 처벌을 넘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행정 시스템의 근본적 재설계다.
앞서, 광주고법은 지난 2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지방재정법 위반, 상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 받은 A씨(64)와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은 B업체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4월 영광 대마산단에 493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속여 영광군으로부터 '기업 유치 보조금' 45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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