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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부자들이여 안심하라!

[기고] 종부세 트라우마 + 장하성의 철학 = '찔끔' 보유세?

'부동산 부자들이여, 안심하라!' 메시지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특별위원회는 오늘 보유세 개편안을 확정하여 정부에 제출했다. 확정된 방안은 종합부동산세에 한정되어 있고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과 세율 상향은 확정하여 제시한 반면, 다주택자의 세부담 강화 방안은 정부에게 검토를 요청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정시장가액비율의 경우에는 현재 80%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연 5%p씩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세율 상향에서 주택분의 경우는 과표 6억원 초과 구간을 0.05~0.5%p 인상하고, 종합합산토지분의 경우는 과표구간별로 0.25~1%p 인상하며, 별도합산토지분의 경우에는 모든 과표구간을 일률적으로 0.2%p 인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개편하면 2019년 기준 1.1조 원의 세수효과가 예상된다고 한다.

복잡하긴 하지만 확정안은 결국 고가·과다 부동산 소유자들만을 대상으로 증세하여 0.16%인 보유세 실효세율을 0.18%로 높이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부동산 개혁의 핵심인 보유세의 점진적이면서 대폭적 강화 방안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기득권자들이 가장 겁내는 건 보유세다. 보유세가 부동산 불로소득의 크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금융규제나 거래규제, 양도세 중과도 영향을 주지만, 보유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보유세 개편안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인데 결국 뚜껑을 열어보니 부동산 기득권자들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부동산에 관한 정부의 생각은 대충 이런 것 같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국내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 등과 같은 대외적 경제금융환경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비우호적이지만, 즉, 부동산 가격 폭등의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보유세 강화에 대한 정책적 수요가 높으니 고가·과다의 부동산을 소유한 1~2% 최상위계층을 대상으로만 약간 증세하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인 까닭...종부세 트라우마

그렇다면 지지율 70% 이상의 정부가 부동산 개혁의 핵심이 보유세 강화라는 일반인들의 생각을 정책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참여정부에서 겪었던 '종부세 트라우마'다. 2005~2007년 내내 참여정부는 주류 언론이 만든 '세금폭탄론'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책 추진 환경이 우호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참여정부의 무려 2.5배나 된다. 또 보유세 강화에 대한 지지율도 참여정부 당시에 비해서 훨씬 높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집권한 지 3년이 지나서야 보유세 강화를 가까스로 추진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제 집권한 지 1년이 지났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것은 보유세 강화와 같은 중요한 정책은 집권 초기에 단행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인데,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교훈을 전혀 얻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세금폭탄론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정부기관을 활용해서 개인과 법인의 부동산소유불평등에 관한 다양한 통계를 생산해서 공개하고, 해마다 발생한 부동산 불로소득의 규모와 관련된 데이터를 발표하면 보유세 강화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1년이 지났지만 부동산 불평등과 관련한 어떤 의미 있는 통계도 생산해서 발표한 바 없다. 한마디로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재산 불평등은 부차적? 장하성의 '진단'에 반박한다

두 번째 이유는 잘못된 진단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잘못된 진단의 진원지는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이다. 그가 청와대에 합류하기 전에 발간했던 두 권의 책 <한국 자본주의>(헤이북스 펴냄)와 <왜 분노해야 하는가>(헤이북스 펴냄)에서 그는 한국의 소득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은 임금불평등이고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불평등은 부차적이라고 주장했다. 재산소유편중이 극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소득에서 재산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해야 0.3~3%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하성 실장의 진단은 명백한 오류다. 오류의 원인은 부동산 소득의 일부만 포함시키는, 심지어 매매차익 조차 포함시키지 않는 통계자료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취득세를 통해서 추산한 부동산소득의 규모는 엄청났다. 부동산소득은 2007~2016년 10년 동안 매년 GDP의 30%가 넘게 발생했다. 그리고 부동산소득 중 불로소득을 따로 추산해보니 2007~2016년 10년 동안 매년 GDP의 21%, 2016년에만 22.9%가 발생했다. 물론 이 막대한 부동산소득 혹은 불로소득은 소수의 부동산 과다보유 개인과 법인이 차지했을 것이다. 그렇다. 일반인들이 매일매일 체감하듯이 부동산은 소득불평등의 주범이다.

그런데 장하성 실장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에만 집착하고 부동산 개혁과 과감한 증세에 나서고 있지 않은 까닭도 바로 장 실장의 잘못된 진단에서 연유했다고 하면 지나친 추측일까.

부동산 개혁, 그리고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을 구호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부동산 개혁을 하지 않으면, 즉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지 않으면 혁신성장은 쉽지 않다. 혁신을 통한 이윤 창출보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것이 개별 경제주체 입장에서 보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경제에 혁신의 분위기를 불어넣으려면 지대추구행위의 대명사인 부동산 투기를 근절시켜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인 보유세 강화에는 지나치게 미온적이다.

공정경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경제구조를 공정(fair)하다고 할 사람은 없다. 생산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누리는 것은 공정경제의 정신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드는 반칙이자 특권이다. 부동산 소유 여부가 아니라 기술력과 경영능력이 경쟁의 관건일 때 공정경제의 문화는 정착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소유를 통한 이익 추구 관행을 방치하는 수준의 보유세 개편안을 제시했다.

염려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지난 3월 청와대는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토지가 ‘사회적 불평등 심화의 근인(根因)’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발표가 나자마자 대한민국의 토지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촛불 시민과 연구자와 단체들이 일제히 환영하고 옹호하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개편안은 토지공개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토지로 인한 불평등 심화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인 보유세를 강화하지 않고서 어떻게 토지공개념을 구현할 수 있단 말인가. 불평등의 원인이 토지라고 생각하는 정부가,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철학을 헌법에 명문화하자고 담대하게 제안하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문재인 정부는 구호나 이념으로 포장하는 것에는 유능하나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는 무능해서 이런 걸까? 이해 불가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염원하는 촛불 시민들은 지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매우 염려하고 있다. 포용적 성장이든, 혁신성장이든, 소득주도성장이든 간에 대한민국은 부동산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문재인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 부동산을 방치한 상태에서 추진하는 각종 정책의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다시 오기 힘든 개혁의 기회를 놓칠까 봐 심히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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