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어느 아침, 전북 완주군 용진읍 행정복지센터 앞에 조용히 놓인 쌀자루 60포가 겨울을 조금 덜 춥게 만들었다.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않은 ‘천사’의 발걸음은 올해로 벌써 18년째다. 해마다 같은 시기,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는 나눔은 어느새 용진읍의 연말 풍경이 됐다.
30일 용진읍에 따르면 직원들은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백미 10kg 60포와 함께 손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누군가 다녀갔다는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발자국은 없었다. 쌀자루는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봉투 속 편지는 짧았지만 한동안 발걸음을 붙잡았다.
편지에는 “가장 외지고 어두운 곳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는 이웃들에게 사랑의 온기를 전하고 싶다”며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용진읍민들의 삶이 희망과 용기로 풍성해지길 바란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름 없는 기부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액수나 규모를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일상을 건네는 선택이었다.
설선호 용진읍장은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이웃을 먼저 떠올려 주신 마음이 무엇보다 큰 선물”이라며 “이 작은 온기가 용진읍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탁자의 뜻을 소중히 담아 꼭 필요한 이웃들에게 정성껏 전달하겠다”고 덧붙였다.
기부된 백미는 용진읍 관내 저소득층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화려한 연말 행사보다, 이름 없는 손길 하나가 남긴 온기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한편 용진읍은 이 익명의 나눔에 화답하는 뜻으로, 2016년부터 이장협의회 주관으로 ‘사랑의 쌀 나눔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가 남긴 온기는 어느새 마을 전체로 번져, 나눔이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되는 풍경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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