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처음 발행된 웹진 <연극in>은 지난 12년 동안 한국 연극계와 공연예술계를 대표해온 상징적인 저널이었다. 그러나 서울문화재단 대표와 경영진이 바뀐 지금,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일방적 진단을 받고 폐간 절차를 밟고 있다. 웹진 <연극in> 폐간 대책위원회는 기고를 통해 공연예술의 언어와 기억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편집자
웹진 <연극in> 폐간 대책위원회는 전임 편집진, 그동안 글을 기고해온 필자들, 연극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그리고 이 매체를 아끼고 지켜봐 온 독자들, 나아가 공연예술 담론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사람들의 연대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의 잡지를 살리겠다는 차원을 넘어,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공공과 민간이 함께 협력하여 만들어온 플랫폼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 이는 웹진이 지닌 공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민주적 생태계의 가능성을 지키려는 일이다.
2012년 처음 발행된 웹진 <연극in>은 지난 12년 동안 한국 연극계와 공연예술계를 대표해온 상징적인 저널이었다. 온라인 매체의 특성상, 이를 통해 현장에서 활동하는 연극인과 관객, 독자와 공공이 그 존재와 실체를 상시적으로 확인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는 서울연극센터(서울문화재단)라는 믿음직한 발행처가 있었기 때문이며, 발행인으로서 재단 대표가 그 역할과 책무를 다했기 때문이다.
웹진이 시작된 이후 서울문화재단 대표들은 대개 언론인이거나, 잡지 발행인으로서의 경험을 지닌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공적인 언론 기능과 담론 채널의 활성화가 예술계를 풍성하게 만들며, 이러한 정보와 지식의 공유가 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발행인으로서 매체의 독립과 자율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공공기관의 책무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대표와 경영진은 매체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관심이 없을뿐더러, 이러한 매체의 필요성과 기능에 대해서도 심각한 무지를 드러냈다. 그 결과, 재단이 발행하던 춤인 웹진은 2022년에 폐간됐고, <연극in> 웹진은 2025년에 중지됐다. 재단의 또 다른 매체인 <문화+서울> 또한 언제든 앞선 매체들과 동일한 운명에 처해질 수도 있다.(지난 5월 웹진 폐간 반대위원회와 재단 측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재단의 매체는 언제든 경영진의 판단으로 휴간될 수 았음을 언급했다.)
놀라운 것은 <연극in>이 2022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담론 매체로 주목받았고, <문화+서울> 역시 2023년 10월 통권 200호를 발간하며 매체가 지닌 가능성과 잠재력을 새삼 되새겼다는 점이다. 각 매체의 특집 기사들을 보면, 내부 편집 주체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이를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협력하여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거버넌스를 이루어내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와 경영진이 바뀐 지금, 이 매체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일방적 진단을 받고 휴간 및 폐간 절차를 밟고 있다. 대안으로 제시된 포털 '스파크'는 담론이나 지식의 공유 기능이 전혀 없는, 단순한 홍보 사이트에 불과하다. 어떻게 공공이 스스로의 성과를 부정하면서까지 매체를 중단하고 취소할 수 있는가. <연극in> 웹진을 비롯한 공공 매체의 중단은 곧 발행처인 서울연극센터의 기능과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서울문화재단의 정체성과 방향을 혼동하는 행위다.
우리가 <연극in> 웹진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공적 자산을 지킨다. <연극in>은 2012년 창간 이후 10년 넘게 연극 현장의 기록을 남겨온 소중한 매체다. 비평, 희곡, 인터뷰, 현장 증언까지 쌓여온 글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만든 자산이다. 그러나 서울문화재단 대표, 즉 발행인은 이 공동 자산을 지켜야 할 위치에서 오히려 폐간을 주도했다. 우리는 이 결정을 공공 자산의 훼손 행위로 규정하며, 그 자산의 존속을 지킨다.
둘째, 우리는 표현과 기록의 공간을 지킨다. 공연예술은 그 자체로 사라지는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행위는 다시 재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예술계에서 잡지는 곧 표현의 연장선이자 역사적 기록이다. <연극in>은 희곡 코너를 통해 무대에 오르지 못한 실험적 글쓰기를 세상과 나눴고, 공연 비평을 통해 동시대 문제의식을 담론으로 남겼으며, 예술가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전환했다. 발행인이 이 공간을 일방적으로 없앴다는 사실은 곧, 연극의 언어와 기억을 단절시킨 책임을 스스로 떠안은 것이다. 우리는 그 단절을 거부하며, 표현과 기록의 공간을 지킨다.
셋째, 우리는 제도와 인맥을 넘어서는 통로를 지킨다. <연극in>은 학연·지연과 무관하게 젊은 예술가와 비제도권 창작자, 여성·퀴어·장애 등 소수자 주체들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였다. 신춘문예나 제도권 공모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급진적 시도들이 여기서는 가능했다. 미투 운동 이후에는 새로운 젠더 감각이, 코로나 시기에는 비인간 주체와 기후위기의 담론이 희곡과 비평 속에서 드러났다. 발행인이 이런 실험을 지켜내기는커녕, 그 장을 스스로 없애버렸다는 사실은 곧 다양성과 가능성의 길을 차단한 것이다. 우리는 그 길을 잇고, 그 통로를 지킨다.
넷째, 우리는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지킨다. 잡지는 서로 대체할 수 없다. 각각의 매체가 가진 관점과 담론은 고유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잡지가 사라지면 그 공백은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특히 발행인, 즉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공공 매체를 임의로 중단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결정이 아니라, 예술계 내부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와 담론의 다양성은 행정 효율성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발행인의 책무를 방기한 이번 결정은 곧, 예술 생태계의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린 행위다. 우리는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지킨다.
우리가 지키는 이유는 단순하다. <연극in>이라는 이름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발행인이 져야 할 책무와 공적 자산의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다. 우리는 공연예술의 기록과 표현, 젊은 예술가들의 목소리, 담론의 다양성을 지킨다. 발행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서울문화재단 대표의 무책임 앞에서, 우리는 공연예술계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
<연극in>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편집진의 것이었고, 글을 쓴 필자의 것이었으며, 그 글을 읽고 토론한 독자의 것이었고,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한 젊은 예술가와 비제도권 창작자의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킨다.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발행인으로서 져야 할 책무를 저버린 지금, 그 공백을 메우는 일은 현장의 몫으로 돌아왔다. 공연예술의 언어와 기억이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다양성과 민주주의가 지금, 여기 예술 속에서 살아있도록, 우리는 응당 지켜야 할 것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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