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신임 수석부의장이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리 떠나고 나머지 정상들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등 세계정세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3일 이 수석부의장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평화적 두 국가'를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남북한을) 두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은 올해 초 우리를 적대적 국가로 규정하고 일절 대화하지 않고 있다"며 "그런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헌법에 영토 조항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돼 있는 우리의 통일 정책을 포기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수석부의장은 현재 정세에 대해 "예전 같은 냉전 체제도 아니고 냉전 이후 새로운 체제가 들어선 것도 아니다"라며 "이번 에이펙에서도 미국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고 자기 일만 보고 떠나고, 나머지 분들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이었다"라고 말해 이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가 변동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제가 국무총리였을 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해 (지금까지) 잘 진행돼 왔는데 느닷없이 (미국이) FTA를 취소한다는 말도 없이 관세정책을 바꿔버렸다"라며 "이런 상황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 미칠지 생각하면서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남북 간 대화 채널이 막혀있는 현 상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제안해도 (북한이) 아무 대꾸도 없는 것 보면 아직 (대화 무대에) 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라며 "러시아, 중국과 북한 간 관계도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접촉면이 넓어졌다"고 평가해 북한이 당분간 남한이나 미국과 대화에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지면 또 다른 국면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이날 오전 민주평통 사무처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일상은 물론, 통일에 있어서도 상대와 나의 '다름'을 두고, 상대의 '틀림'이라 낮잡아 평가해, 업신여기고, 차별하는 후진적인 문화,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름'을 '다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새로운 평화통일의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라며 "포용과 통합은 '평화공존과 번영의 한반도'의 출발점이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임 정부의 민주평통이 사실상 윤석열 당시 대통령 '친위' 조직으로 기능한 데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친구로 알려진 석동현 사무처장은 취임 이후 윤석열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윤사모) 회원들을 사무실로 따로 불러 민주평통 자문위원에 윤사모 회원들을 많이 중용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당시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을 비롯해 지난 2022년 11월14일~16일(현지 시각) 워싱턴 D.C에서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 주최로 열린 '2022 KOREA PEACE CONFERENCE'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 경위조사를 실시하는 등 윤석열 정부와 다른 견해를 가진 자문위원들의 행동을 문제삼기도 했다.
방용승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그동안 주로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는,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건의 내용을 주로 올렸다면 이제는 귀가 열리는 자문 건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이전에 가졌던 모든 틀을 깨고 있는 그대로 돌아가는 정세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문위원 1인당 50명 이상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인터뷰를 진행해 이를 AI를 통해 키워드 중심으로 뽑아내고, 이걸 몇 가지 문장으로 만들어 대통령에게 건의하려고 한다"라며 "자문위원이 2만 2824명이니 50명 씩 인터뷰하면 10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방 사무처장은 "형식적인 자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효능감이 있는 자문과 건의를 할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하는 자문회의로 거듭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평통은 의장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열어갈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위촉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번에 위촉된 제22기 자문위원은 2025년 11월 1일부터 2027년 10월 31일까지 2년 동안 국내외에서 활동을 실시한다.
제22기 자문위원은 총 2만 2824명으로 제21기 보다 840명(3.8%) 증원됐다. 민주평통은 "각계각층의 폭 넓은 참여를 통해 평화통일 공감대 확산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여성·청년 위촉 비율을 각각 40%, 30% 이상으로 높이는 등 성별·세대별 균형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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