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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수급'…정부가 후손 찾기 적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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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수급'…정부가 후손 찾기 적극 나서야"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갔다 90년 뒤 귀환…전주 녹두관 안장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주 방문을 계기로 전북 전주시 완산시립도서관 옆에 위치한 '녹두관'의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수급'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수급(首級)'이란 동학농민혁명 당시 활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누구인지 모르는 이의 해골이다.

이 해골은 지난 1995년 7월 일본의 홋카이도대학의 한 연구실에서 다른 5구의 유골과 함께 발견돼 한일 양국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던 바 있다.

발견 당시 이 해골의 뒤통수에는 붓글씨로 '韓國東學黨首魁ノ首級ナリト伝フ 佐藤政次郞氏ヨリ(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이라고 전함. 사토 마사지로 씨로부터)'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해골의 내부에는 구겨진 종이 문서가 함께 발견됐는데 거기에는 '메이지 39년(1906년) 9월 20일 진도에서(취득). 메이지 27년, 한국 동학당 궐기가 있었다. 전라남도 진도는 그들이 가장 극심하게 창궐한 곳이었다. 그들을 평정하고 돌아올 때, 그 수괴자 수백 명을 죽여서 시체가 길을 가로막고 있을 정도였다. 수괴의 머리는 효수되었는데 이 촉루(髑髏·해골)는 그 중의 하나로 해도(海島)를 시찰할 때 채집한 것이다. 사토 마사지로' 라고 쓰여 있었다.

이 해골은 한일 양국의 지대한 관심 속에 1996년 5월 30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귀환했다. 사토 마사지로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 간 뒤 실로 90년만의 귀환이었다.

한국으로 귀환된 이후에도 이 수급은 한동안 안식처를 찾지 못했다. 이 수급을 어디로 모셔야 할지에 대해 서로간의 이견이 컸던 탓이다. 논란의 와중에 수급은 국립전주박물관 수장고에 임시로 모셔졌다가 2019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녹두관으로 안치될 수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발견돼 전주로 옮겨진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유골. 빨간 테두리 안에 '한국동학당 수괴'라고 쓰여 있다. ⓒ이성윤의원
▲5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동 녹두관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가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성윤의원

지난 5일 전주완판본문화관에서 열린 ‘제8회 전주독서대전’에 참가하기 위해 전주를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김정숙 여사와 함께 주동학농민혁명녹두관을 찾아 ‘무명동학농민군 지도자의 묘’ 앞에 섰다.

참배를 마친 문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신원확인과 선양사업을 추진하려면 힘든 일이 많을 것"이라며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던 이성윤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전주시을)도 "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신원을 DNA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면서 "헌법 전문에도 동학농민혁명정신을 수록해야 한다. 그것이 전북도민의 요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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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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