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 열기가 눅눅하게 내려앉는 8월, 숯불 위 철망에서 장어가 한 번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달큰한 양념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지친 입맛이 슬그머니 돌아온다.
‘보양’이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장어를 접시에 올려 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고지방 어종 특유의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이 여름철 체력을 붙잡아 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영양성분표를 기준으로 보면 장어구이 100g에 단백질이 약 20g 수준이고 비타민 A가 높은 편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도 여름철 장어의 지방층이 두터워져 풍미와 에너지 보충에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보양의 근거는 숫자에서 시작해 한입의 체감으로 끝난다.
시장 진열대에 적힌 이름은 단순해도 ‘장어’는 얼굴이 여럿이다. 민물장어로 부르는 뱀장어는 기름이 두텁고 살이 부드러워 구이의 왕좌를 지킨다. 바다에서 나는 붕장어는 결이 단단하고 담백해 소금구이와 덮밥에서 힘을 발휘한다. 남해의 갯장어는 얇게 칼집을 넣어 뼈를 끊고 살짝 익혀 먹는 샤브가 제격이다.
같은 장어라도 지방의 두께와 근섬유의 결이 다르니 조리법도 달라져야 한다. 뱀장어는 껍질 쪽에 촘촘히 칼집을 내 기름을 빼며 굽는 편이 식감과 향의 균형이 좋고 붕장어는 소금으로 점액질을 문질러 씻은 뒤 강한 불로 표면을 빠르게 굳혀 수분을 잡아야 담백함이 살아난다. 갯장어는 순간 가열이 핵심이라 오래 끓이면 금세 질감이 흐트러진다.
양념은 유혹적이지만 부담이 되기 쉽다. 불맛과 단맛을 다 살리면서도 가볍게 먹고 싶다면 순서를 바꾸는 게 답이다. 먼저 팬이나 오븐에서 150~170℃ 저온으로 속을 익힌다. 그다음 센 불로 짧게 마무리해 껍질을 바삭하게 만든다. 양념은 중반 이후부터 얇게 여러 번, 한 번에 잔뜩 바르는 것보다 표면이 덜 타고 맛이 정돈된다.
같은 장어덮밥도 밥을 뜨거운 흰밥 대신 식초밥으로 바꾸면 기름을 받쳐줘 끝까지 무겁지 않다. 곁들임은 부추, 깻잎, 와사비가 정답에 가깝다. 부추의 알싸함은 기름기를 눌러 주고, 깻잎과 와사비의 향은 장어의 농도를 길게 끌고 간다.
여름철 식탁이니만큼 안전은 기본 규칙으로 지켜야 한다. 날것으로 다루는 과정의 생혈액은 반드시 가열 조리로 없앤다. 손질 도마와 칼은 생선·채소를 구분해 쓰고 조리 후에는 즉시 먹고 남기지 않는 편이 낫다.
직화로 오래 태울수록 탄화물질이 늘 수 있어 앞서 말한 ‘저온 익힘→고온 마무리’가 맛과 안전을 함께 잡는 방법이 된다. 조리 중 불길이 치솟으면 한 박자 불을 눌러 연기를 가라앉히고 다시 이어 가는 것이 좋다.
장어를 고르는 일은 몇 가지 감각으로 충분하다. 손질된 살결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눌렀다 돌아오는 탄력이 있으면 신선하다. 비린내가 아니라 바닷바람 같은 냄새가 나야 하고 진공 포장이라면 단면에 물이 고여 있지 않아야 한다.
집에서는 한 마리를 두 가지 맛으로 나눠 먹는 것도 방법이다. 먼저 소금구이로 결을 읽고 이어 같은 팬에서 간장·미림·설탕을 2:2:1로 섞은 소스를 얇게 발라 윤기만 입힌다. 마지막에 레몬즙 한 방울이면 기름의 끝이 깔끔해진다.
접시 밖의 이야기들도 이 계절엔 중요하다. 뱀장어는 치어(실뱀장어) 의존도가 높아 자원 압력이 큰 품목이다. 한여름에 장어를 찾는다면 ‘민물장어만 장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붕장어, 갯장어 같은 바다장어로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 현명하다.
산지와 원산지 표기를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추적 가능한 양식과 제철의 바다장어를 선택하면 오늘의 ‘힘이 되는 한 점’이 내일의 바다를 갉아먹지 않게 할 수 있다. 맛과 자원을 함께 보는 식탁이야말로 제철을 오래 즐기는 방법이다.
결국 장어를 맛있게 만드는 건 이름값이 아니라 손맛이다. 오메가-3와 비타민으로 얹은 영양적 토대 위에 종의 선택과 손질의 디테일, 불의 순서와 양념의 타이밍이 한입의 설득력을 만든다.
여름은 짧고 식욕은 더 짧다. 숯불 앞에서 한 점을 뒤집을 때마다 접시 위와 밖의 균형을 떠올리면 된다. 그게 8월에 어울리는 보양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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