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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커피이야기] ⑧ 같은 생산국, 다른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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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커피이야기] ⑧ 같은 생산국, 다른 커피

국명·등급을 넘어 품종·가공·이력으로 읽는 커피의 진짜 가치

▲ 커피는 생산지·품종·가공법·고도 등에 따라 향미가 달라진다. 사진은 베트남 플레이쿠 커피 농장의 로부스타 품종 커피. ⓒ프레시안(문상윤)

“에티오피아는 무조건 고급, 케냐 AA가 최고, 브라질은 저가, 로부스타는 저품질.” 커피 수업 시간과 SNS에서 여전히 반복되는 정리법이다.

간편하지만 위험하다. 국명·등급 같은 라벨은 출발점일 뿐, 한 잔의 품질과 가격은 품종·고도·수확·가공·보관·유통, 그리고 평가·거래의 맥락까지 겹겹이 얽혀 결정된다.

최근 국제기관의 통계와 학술 연구를 보면 '같은 생산국' 안에서도 향미와 가격은 충분히, 그리고 극적으로 달라진다.

먼저 케냐 AA를 최고의 맛으로 오해하는 경우부터 짚는다. 케냐의 AA는 기본적으로 스크린 사이즈(원두 크기) 등 물리적 기준에 따라 매겨지는 등급으로 ‘맛의 우열’을 곧바로 뜻하지 않는다.

케냐 농업·식품청 산하 커피국과 나이로비 커피거래소의 분류표를 보면 AA는 17·18 스크린에 해당하는 대립 등급일 뿐이다. 실제 품질 평가는 별도의 관능 분류에서 이뤄진다. 즉 “크다=항상 더 맛있다”는 명제는 틀릴 수 있다. 업계 자료가 이 점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에티오피아 역시 “국가명=향미”로 환원할 수 없다. 같은 주(州)·동일 고도에서도 가공법 하나에 따라 컵이 달라진다.

2024년 짐마 지역 시료를 대상으로 한 에피오피아 농업연구소의 연구는 워시드·세미워시드·내추럴 처리에 따라 생화학 성분과 관능 점수가 유의하게 갈린다고 보고했다.

워시드는 깨끗하고 산미 중심, 내추럴은 과실향과 바디, 세미워시드는 그 중간 성격이 강화됐다. 같은 해 에티오피아 주요 산지의 품종·산지별 클로로겐산 등 지표 성분 차이가 컵 퀄리티와 상관을 보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결국 ‘예가체프=꽃향, 하라르=와인향’ 같은 상투적 설명은 출발선이 될 수 있어도 결론이 될 수는 없다.

“브라질=저가”라는 고정관념도 현실과 멀다. 경쟁력이 높은 대량 재배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같은 브라질 안에서도 품종·미시기후·가공 실험을 통해 고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대표적으로 컵 오브 엑설런스(COE)와 BSCA(브라질 스페셜티커피협회) 경매를 보면 상위 로트가 파운드당 수십 달러에 거래되고 브라질 전역에 ‘스페셜티’ 평가·교육 체계가 확산되고 있다.

2023년 브라질 COE 상위 로트는 파운드당 43달러에 낙찰됐고 2024년에도 87점대 이상 상위 30개가 국제 심사와 온라인 경매를 거쳤다.

2025년 5월에는 SCA(스페셜티커피협회)가 브라질 전역의 평가 프로토콜을 ‘CVA(Coffee Value Assessment)’로 공식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컵 점수뿐 아니라 정보·물리적 속성까지 가치 요소를 분리 평가하려는 최근 흐름을 상징한다. “브라질=싸다”는 낙인은 이런 시장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

가격만 봐도 편견은 쉽게 무너진다. 2024~2025년 로부스타 선물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여러 차례 경신하며 아라비카와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국제커피기구(ICO) 월간 보고서와 로이터 집계에 따르면 2025년 2월 로부스타는 톤당 5800달러 안팎의 최고가를 찍었고, 2024년 동안 내내 역대급 최고 수준의 가격을 이어갔다.

베트남 가뭄으로 인한 수출 감소가 겹쳤고, 생산·재고의 긴장이 가격을 끌어올렸다. 같은 해 초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산 고급 로부스타는 현지·선물 기준으로 일부 아라비카 못지않은 단가를 형성했다. 단순히 “로부스타=싸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국면이었다.

품질의 언어도 바뀌고 있다. SCA의 CVA는 향미 점수만으로 가치를 말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물리적·감성적·기술적·정보적 평가를 분리해 기록한다.

쿠퍼·바이어·로스터가 같은 표준 문서로 ‘무엇이 이 커피의 가치를 만드는가’를 합의하는 방식이다. 스크린 사이즈나 등급 기호 같은 단일 신호에 기대기보다 “이력이 보이는 커피”를 고르려는 시도다.

논쟁의 핵심인 로부스타도 마찬가지다. ‘100% 아라비카’라는 표어는 마케팅 신호로는 쉬우나, 품질의 전부를 말하진 않는다.

CQI(Coffee Quality Institute)의 Q 로부스타 프로그램과 파인 로부스타(Fine Robusta) 프로토콜은 결점·가공·컵 프로필 기준을 명확히 하며 우간다·인도·베트남 등지에서 워시드·허니·내추럴 등 개선된 가공으로 클린컵·초콜릿·스파이스 중심의 균형 잡힌 에스프레소용 원두가 늘고 있다.

시장에는 인도 카피 로열(Kaapi Royale) 같은 스페셜티 등급 로부스타가 꾸준히 거래된다. 목표한 향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로부스타를 블렌딩에 쓰는 로스터가 있는 이유다.

생산국 통계도 ‘국가명=품질’의 단순화를 거부한다. USDA FAS(미국 농무부 해외농업국)는 2024/25년에 세계 커피 생산이 전년 대비 4% 증가해 1억7485만 백(60kg)으로 늘고, 동기간 로부스타 생산이 7.5% 증가해 7701만 백에 이를 것으로 본다.

베트남은 같은 연도 2900만 백(그중 로부스타 2800만 백)으로 회복세를 전망했다. 수확·재고·무역의 미세한 변수만으로도 가격·품질 구성이 크게 달라지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결국 소비자와 업계 모두가 피해야 할 것은 과잉 일반화다. 에티오피아라서 좋고 브라질이라서 저렴한 것도, 케냐 AA라서 맛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국가, 같은 지역 안에서도 품종(예: SL28·74110·카투아이), 수확 후 처리(워시드·내추럴·허니·발효), 건조·보관, 로스팅 전후 물리·화학적 관리가 향미와 가격을 바꿔 놓는다.

국제 평가·교육 체계는 한 잔의 가치를 '라벨 하나'가 아니라 '이력 전체'로 보자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페셜티 경매의 기록가, 로부스타의 재발견, 표준의 진화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의 커피 교실과 매장에서도 이 관점을 공유할 때다. 수업 자료를 위해 특정 레퍼런스 커피를 “좋다”고 말하는 것까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판단이 보편 진리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케냐 AA가 항상 최고”라고 말하는 순간, 수강생은 '등급=맛'으로 오해한다.

“브라질은 늘 저가”라고 못 박는 순간, 한 농가가 실험한 무산소 발효 내추럴의 복합미와 그에 걸맞은 가격을 이해할 길이 막힌다.

“로부스타=저품질”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오늘도 에스프레소의 크레마·바디·쵸콜릿 노트를 책임지는 파인 로부스타의 역할은 보이지 않게 된다.

올바른 선택은 결국 라벨 뒤 이력서를 읽는 일에서 시작된다. 판매 페이지에서 품종·가공법·고도·수확 연도·보관·평가 방식을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로스터가 기록한 CVA(커피가치평가)·컵 노트·결점 수까지 살핀다.

같은 생산국이라도 완전히 다른 커피가 나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국명과 등급의 간판을 넘어 가치의 좌표를 보게 된다.

그 좌표에 맞춰 고르면 한 잔의 만족은 더 높아지고, 생산자에게 돌아갈 보상은 더 정밀해진다.

커피는 지리 수업이 아니라 이력서 읽기다. 그리고 그 이력서의 문장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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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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