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백경현 구리시장은 집중호우로 구리시 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는 시간에 강원도 홍천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 지역 봉사단체의 야유회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단체 회원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유출·공개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구리시는 지난 21일 오후에 이미 “시장님도 이런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구리 시민들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22일 오전에는 시장이 직접 기자실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백 시장은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새벽부터 비상근무에 들어간 상황에서 송구하게도 관외에서 열린 지역 단체 야유회에 참석하는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라며 “이번 일을 깊이 반성하며 다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고 타지역으로 움직여 지역 단체의 모임에 참석한 것은 백번 양보해도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백 시장은 이번 야유회 참석이 2주 전에 약속된 행사였음을 밝혔는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어서 불가피하게 약속된 행사에 가지 못하게 됐다’고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지켰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구리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관외행사는 양해를 구하고 가급적 참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오랜 공직 경험을 지닌 백경현 시장이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가 문제의 발단일 가능성이 높다. 지역 주민들의 선택을 다시 받아야 하는 지자체장의 입장에서 지역 봉사단체의 초대를 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투표권을 지닌 시민들에게 다가가 스킨십을 강화하는 것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에게는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거울과도 같다. 유권자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그 유권자가 선택한 정치인도 그런 유권자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일 잘하는 사람’, ‘공명정대한 사람’을 뽑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과의 친소관계를 따지고 자신의 사익을 염두에 둔 민원을 얼마나 해결해주는지에 따라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정치인의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유발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의 사과는 빠르고 분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백 시장의 태도는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도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행동과 삶의 방식이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잊고 있다. 자신은 사리사욕을 취하는 게 당연하지만 정치인은 달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며 표리부동한 행위이다.
유권자들은 딱 자신의 수준에 어울리는 정치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현명하면 현명한 정치인을, 그들이 타락했다면 타락한 정치인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향원(鄕愿)은 덕(德)을 도적질하는 자들이다(鄕愿 德之賊也).”
공자의 말이다. ‘향원’은 동네에서 그럴듯한 직함을 지니고 온갖 폼을 잡으며 힘을 과시하는 사람을 뜻한다. 겉으로는 예의바르고 올바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만 이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몰고 다니는 사람들의 표를 내세우며 정치인들에게 온갖 민원을 넣고 이익을 챙긴다. 이들에게 밉보이면 온전한 사람이 순식간에 몹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이들에게 이권을 적절히 챙겨주면 몹쓸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으로 소문나기도 한다.
좁은 도시에서 이들과 일전을 불사하다가 선거에서 패하고 물러서는 정치인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모습을 확인한 사람이라면 그들과 싸우기에 앞서 달래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향원’의 힘은 커져만 간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대부분 입을 닫고 조용히 살아간다. 향원들만 큰 소리로 떠들기에 마치 그 목소리가 대다수 시민을 대변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조용한 시민들의 책임도 크다. 그들의 침묵이 향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들도 침묵을 유지하지 말고 깨어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치에 관여하는 게 귀찮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는 향원들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정치인을 원한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근시안적인 태도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이제는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의 향원(鄕愿)은 덕(德)뿐만이 아니라 정치인도 훔쳐가는 도적질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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