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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심장 주치의였던 파키스탄 출신 의사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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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심장 주치의였던 파키스탄 출신 의사는 결국...."

[프레시안 books] 아야드 악타르 장편 소설 <홈랜드 엘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건강 이상설'이 화제다. 만 79세로 미국 역사상 가장 늙은 대통령인 그는 푸르스름하게 멍든 손등(혹은 멍을 가리려고 두껍게 파운데이션을 바른 손등), 다리를 질질 끄는 걸음걸이 등이 카메라에 자주 잡히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백악관은 트럼프가 종합 검진을 받은 결과 '만성 정맥부전'을 진단받았다고 밝혔다. 만성 정맥부전은 다리 정맥의 혈관 내벽·판막 기능 이상으로 다리에서 심장까지 피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아 피가 고이는 질환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위험하지 않으며 70세가 넘는 이들에게 흔한 증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15일 찍힌 트럼프의 손. 손등의 멍을 가리기 위해 화장품을 두껍게 바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건강이상설', 그것도 혈관계 이상 증상 이야기를 들으니 책 한권이 떠올랐다. <홈랜드 엘레지>(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열린책들 펴냄). 미국에 만연한 이슬람 혐오를 그린 희곡 <수치>(Disgraced)로 퓰리처상을 받은 파키스탄계 2세 작가 아야드 악타르의 장편 소설이다.

자전적인 이야기인 이 소설은 극작가인 아들과 의사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이슬람계 이민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 시칸데르 악타르는 1960년대 후반 파키스탄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당시 전문직 이민자를 우대하는 미국 이민 정책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미국에서 희귀성 심장 질환인 브루가다 증후군 관련 최고 전문의사로 인정 받았고, 덕분에 1993년 트럼프를 처음 만나 그를 진료하게 됐다. 이후 아버지는 4년 동안 트럼프와 개인적 친분을 맺고 열렬한 트럼프 추종자가 됐다.

"아버지가 트럼프의 헛소리를 이해하기 위해 정신적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 걸 보고 있으면 혹시 노망이 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 선거 일주일 전까지도, 아버지는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가 흠은 있어도 역시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저 메시지를 전하려는 거야."

"그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기고 싶지도 않은 선거에 출마했다는 건가요?"

"바로 그거다."

"그 메시지가 뭔데요?"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거지." (47쪽)

"아버지가 트럼프에게 품은 애착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늘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게 아버지만의 독창적인 말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누구를 위한 기회? 아버지는 위한 기회? 아버지가 소망하는 것이 될 기회?"(53쪽)

이처럼 미국을 열렬히 찬양하며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던 아버지와 달리 마찬가지로 의사인 어머니는 이슬람인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미국의 삶을 힘들어 했다. 어머니는 40대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암 진단을 받았고, 질병과 싸우면서 늘 고향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어머니는 2010년 암이 재발해 트럼프 당선을 앞두고 사망하면서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는 트럼프 당선 이후 행복해졌을까? 전혀 아니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술에 의존하게 된 아버지는 도박에도 손을 대면서 의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7년 의료 소송까지 당하면서 아버지의 '아메리칸 드림'은 끝장 났다. 고국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살 돈도 없어서 아들이 사줬다.

자전적인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가공된 이야기인지 구분이 어렵다. 주인공과 등장 인물의 이름과 직업은 모두 사실 그대로다. 다만 작가의 아버지가 진짜 트럼프 주치의였는지에 대해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답하기 어렵다. 사실과 허구를 섞은 형식을 통해 그 경계를 탐색하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첫번째 임기 때부터 주치의가 인정했던 사실이다. (언론 문법상 이런 경우엔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명백히 '소설'이다.)

소설에서 그의 아버지는 고국인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친지들과 여생을 보낸다. 하지만 이는 허구다. 작가는 소설 출간 직전 미국에서 눈을 감은 아버지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이런 결말을 택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2020년 출간됐던 이 책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두번째 당선된 직후인 2025년 2월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혐오와 배타에 기반하고 있어 극단적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트럼프를 미국 국민들은 4년 만에 다시 선택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4년 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이민자'로 보이는 이들을 탄압하고 나섰다.

이 책의 마지막에 아야드는 한 대학의 특강에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미국의 모든 유색인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직면하고 있는 일이다.

"여기(미국)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왜 떠나지 않는 건지 모르겠네요..."

(중략)

"선생님, 그럼 제가 여기 말고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요. 난 그저, 여기서 사는 게 힘들다면 왜 여기서 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중략)

"내가 여기 있는 건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좋든 싫든, 나는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미국은 내 고향입니다." (507쪽)

뱀발. 만 78세 3개월에 취임해 트럼프에 의해 '최고령 대통령' 타이틀을 빼앗긴 전임 조 바이든도 임기 내내 치매설 등 건강이상설이 제기됐었다. 바이든은 퇴임 4개월 만에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재임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건강이 악화됐는데 이를 참모진들이 은폐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제이크 태퍼 CNN 앵커와 알렉스 톰슨 악시오스 기자가 공동 집필한 <오리지널 신 : 바이든 대통령의 퇴행, 은폐, 그리고 재선이라는 재앙적 선택>이라는 책에서는 바이든이 2023년부터 정신적 쇠퇴 등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트럼프의 건강에 대한 백악관의 설명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려운 이유다.

▲<홈랜드 엘러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열린책들 펴냄.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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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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