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 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 폭력과 불법을 보고서도 이를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 불법 행위를 집중 점검·단속하고, 불법 행위가 드러나는 경우에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야 합니다."(윤석열 전 대통령, 2023년 2월 21일 국무회의)
정부는 즉시 건설 현장에 특별사법경찰을 투입했다. 여당은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계관리법, 사법경찰 직무법, 채용절차법, 노동조합법 개정에 나섰다. '건폭 몰이' 광풍이 석달도 지나지 않은 그해 노동절에, 구속영장 심사를 앞둔 한 건설노동자가 분신해 숨졌다.
"풍선에다 고압가스로, 헬륨가스인가, 그게 고압가스관리법 위반이잖아요. 불법이잖아요. (…) 처벌조항이 징역 1년은 넘겠죠? (…) 어겨서 계속하면 강력하게 처벌해야죠. (…) 정부 단위에선 앞으로 걸리면 아주 엄벌할 테니까 잘 잡으세요."(이재명 대통령, 6월 13일 접경지역 주민간담회)
정부는 즉시 유관부처 회의를 열어 주요 접경 지역에 경찰기동대를 배치했다. 지자체 특사경 순찰도 강화하고 상시 동원 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각 기관은 항공안전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고압가스안전관리법, 공유수면법 등을 활용해 대북 전단 살포를 사전에 막고 사후 처벌을 실효화하기로 했다.
지향이 다른 두 대통령이 같은 언어를 구사했다. 반대 진영의 약한 고리를 공공의 적으로 표적 설정한 엄벌주의다. 노조를 폭력배 취급하더니 '반국가세력' 망상에 갇혀 계엄을 선포하고 파면된 내란 우두머리 전직 대통령의 일관성은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취임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을 다짐한 이 대통령이 열흘 만에 꺼내든 '강력한 처벌', '엄벌' 위협은 혼란스럽고 상서롭지도 않다.

'대북전단 → 대남 오물 풍선 → 대북 확성기 방송 → 대남 소음 방송' 악순환에 접경지역 주민들이 큰 피해를 봤다. 이 대통령의 선제적인 확성기 방송 중지 지시는 북한이 소음방송 중단으로 호응해 곧바로 효력을 냈다. 일거에 남북관계 전환의 단초를 놓고 접경지역 피해 주민들을 보살핀 실용주의 대통령의 정치력을 실감케 했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까지 해결하면 더 평화롭고 더 안전해질 것이다. 사전 예방과 계도, 제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로 포장되는 처벌 위주의 접근은 대개 더 격렬한 반발을 부른다. 이 대통령이 강력한 처벌을 경고한 다음 날 납북자가족모임은 파주 임진각에 헬륨가스통을 들고 나타났다. 인천 강화도에선 경찰이 전단 풍선을 날린 40대 남성을 검거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조만간 성과 전시용 처벌이 뒤따를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2023년 9월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대북전단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만큼, 이 대통령과 당국은 항공안전법 위반 등 우회적 방법을 적용하려 든다. '형벌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외면한 편의주의다. 법적 근거와 정당성 논란이 불붙었다.
당시 헌법재판관 9명은 쟁점인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를 놓고 7(위헌) 대 2(합헌)로 갈렸다. 위험 발생의 책임을 전단 살포자들에게 묻는 것이 온당한가를 놓고 위헌 재판관들의 의견이 또 갈라졌지만, 재판관 7명(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유남석, 이미선, 정정미)은 표현의 자유 침해와 더불어 형벌권 행사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특히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중대한 법익에 대한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최후 수단으로 선택되어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면서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이를 범죄로 규정하면서 징역형 등을 두고 있으며, 그 미수범도 처벌하도록 하고 있어 과도하다"고 했다. 또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이라는)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형벌을 택한 것은 형벌의 보충성 및 최후 수단성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표현의 내용에 대한 제한이 아니라 "표현 방법에 대한 제한으로 보아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국가형벌권 행사에 대해서도 이들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라는 매우 중요한 법익의 침해 또는 그 위험을 동등한 정도로 방지하면서도 덜 침해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공익을 위한 정당한 처벌로 인정했다.
다만 처벌의 정당성을 인정한 두 재판관 역시 "남북합의서의 효력이 정지된 때에는 전단 등 살포를 통해 법익 침해 또는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처벌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단서를 달았다. 남과 북이 합의를 준수해 적대 행위를 하지 않아야 공익 목적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에 "처벌은 남북합의서의 유효한 존속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이 앞다퉈 합의를 무효화해버린 현 시점에 대입하면, 전단 살포 행위에 대한 처벌의 법적 기반은 더욱 좁아진다. 북한은 2023년 11월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6월 국무회의를 거쳐 9.19 합의 모든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고 확성기 방송을 비롯한 전방의 모든 군사 활동을 재개했다.
어렵사리 구축됐던 남북의 안전핀을 뽑은 책임은 남북이 공유하고, 접경 지역 주민들의 위험을 조장한 책임도 전단 살포를 방조해온 정부가 먼저 져야 할 몫이다. 이전 정부가 남긴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방법 역시 정권이 바뀌어도 역행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일이다. 법으로 윽박지르던 검사 출신 전 대통령의 엄벌주의와 다른, 진영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주의 대통령다운 해법이기도 하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이 대통령이 고교생 때 납북된 사람들의 어머니들을 불러 위로한다면 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북한에 생사 확인만이라도 의뢰해 달라"는 이들의 요청에는 과거 남북 대치 상황 속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고통이 담겨있다.
이재명 정부 대북정책의 연원인 '햇볕' 정책은 이솝우화에서 착안한 명칭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힘 자랑보다 온기 있는 설득에서 나온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북한 뿐만 아니라 주권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반대 진영 국민에게도 강력한 처벌보단 마음의 응어리를 다독이는 관심과 위로의 메시지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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