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3일 아침, 출근해 텔레그램을 열었다. 세종호텔 해고자 고진수 동지가 고공에 올랐단다. 홀로 올라간 고 동지의 사진을 보니 울컥했다. 분노와 안타까움의 감정보다도 뭔가 벅찬 뜨거움이 올라왔다. 그래! 우리 동지들이 포기하지 않았구나. 후회하지 않을 투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일정 사이에 잠깐 다녀올 생각으로 세종호텔로 달려갔다. 위나 아래나 아직은 정신없이 분주했다. 새벽에 오른다고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경찰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내가 여태 봤던 세종호텔 동지들의 눈빛이 가장 살아있었던 순간이었다. 고공에 올라간 고진수는 마냥 즐거워(?) 보였다. 도대체 저 북은 왜 들고 갔을까 생각하다가도 너무 신나게 치는 북소리에 밑에 있는 우리도 들뜬다. 젊은 연대 동지들의 발랄함과 진심으로 연대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힘이 났다. 나도 이런데 세종호텔동지들은 오죽하겠나 싶었다.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모여 있어 좋았고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동지들도 분명 있었지만 결국 저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되리라는 의심을 1도 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이긴 것이다.

2019년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직접고용 투쟁을 말하려 한다. 우리 투쟁의 시작은 바로 고공농성이었다. 그 이전에도 우리 투쟁을 알리려 바쁘게 움직였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1500명이 해고된다는데도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성명서 한 장도 받아내지를 못했다. 무기력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고, 국민들의 촛불로 만들졌다는 정부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해고한다면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로 '투쟁'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2개 조직을 포함해 41명의 여성이 해고되기 전날 밤 죽전휴게소에 모두 모였다.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약간의 들뜸과 어울리지 않게 캐리어를 끌고 온 몇 명을 보면서 엄청 웃었다. 마지막으로 우동을 한 그릇씩 먹고 새벽 4시에 서울 톨게이트를 향했다. 긴장과 설렘이 확 몰려왔다.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간 서울톨게이트 캐노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매연 속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선전물들을 만들었다.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은 물론이고 손과 얼굴이 까맣게 매연을 덮어섰다. 긴장감과 설렘이 캐노피에 올라온 순간 부담감으로 바뀌었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고민은 더 많아졌다. 날이 밝아오면서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근무를 모두 거부하면서 서울톨게이트로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자회사를 거부하고 막상 해고된다면 과연 남아 있을 조합원들이 얼마나 될까 걱정했다. 박순향 부지부장(현 지부장)과 그런 고민을 가장 많이 얘기했다. 결국은 우리 둘만 남더라도 이 투쟁 끝까지 가자고 다짐을 하며 이 투쟁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날 아침 캐노피에 모인 천여명의 조합원들을 보면서 나는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조합원들이 감탄이 나올 만큼 잘하는 것이다. 나도 놀랐고 본인들도 놀랐다. 고공농성을 하는 우리들을 보며 밑에 조합원들은 더 열심히 싸웠다고 한다. 위에 있는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다. 3개 조직의 41명이 각자 움직였지만,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게 하려고 했다.
청와대에서 노숙농성을 하던 조합원들이 금요일 저녁에는 서울톨게이트로 모두 모였다. 서로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애틋하게 인사하는 시간을 별도로 가졌다. 눈물바다가 됐지만 일주일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그날을 위해 고공에 있는 우리는 조합원들을 위해서 선전물을 만들기도 하고 율동이나 노래를 준비하기도 하였다. 5일을 치열하게 싸우다 온 조합원들에게 쉼을 주고 싶었다. 오늘 하루쯤은 감성적인 우리로 돌아가서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맘껏 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고공농성을 하는 당사자는 굉장한 마음의 짐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11명이 그 마음의 짐을 나눴지만 혼자 올라가 있는 고진수 동지는 마음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공간의 제한으로 함께하지 못하는 게 힘들 것이고 미안하기까지 할 것이다. 반면 매일 힘들게 돌아다니고 연대를 만들고 투쟁을 이어가는 조합원들은 육체의 힘듦보다도 스스로 하늘감옥에 갇힌 고진수 동지 걱정이 더 클 것이다. 이렇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지들이 최고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고공에 오르고 탄핵집회 대오가 명동으로 행진했었다. 세종호텔 동지들의 투쟁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힘들어하는 것을 봤고, 연대 동지들이 있어도 고립되고 외로워 보였던 적이 있었다. 뭔가 답답한 벽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벽을 깨부수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끝나버릴 것 같아 조바심도 있었고 안타까움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고진수 동지가 고공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벅찼다. 그리고 명동대로를 우리의 연대 동지들과 시민들로 모두 채웠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울 캐노피에 모인 조합원들을 보며 승리를 확신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엄청 울었다. 울면서 다짐을 했다. 더 이상 외롭게 두지는 않겠다고.
이렇게 모인 연대의 마음으로 고공농성 100일을 맞이한다. 100일 동안의 힘듦과 벅참을 감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세종호텔 동지들의 단단함은 느껴진다. 그 단단함을 잃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주자! 승리의 확신을 잃지 않도록 우리가 연대하자!
고공을 올라간 고진수 동지를 비롯해 사방팔방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허지희, 김란희, 이치호, 민병준, 이주형, 김상진 동지들이 복직하는 그 날까지 연대를 다짐하자!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를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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