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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푸른 눈의 목격자 임대운, 광주 명예시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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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푸른 눈의 목격자 임대운, 광주 명예시민 됐다

1980년 광주시민과 함께 한 데이비드 돌린저 "광주는 폭동이 아니라 연대의 도시였다"

"그날 도청 앞에 앉아 있었다면,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과 함께했던 미국 평화봉사단원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한국명 임대운)가 14일 광주 전일빌딩 245에서 열린 강연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광주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

1978년 입국해 전남 영암보건소에서 결핵 방역 활동을 하던 그는 1980년 5월 21일, 광주의 소식을 듣고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나주에서 멈췄고, 그는 걸어서 광주로 향했다.

▲14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가 5·18특강을 하고 있다.2025.05.14ⓒ프레시안(김보현)

광주 인근에서 시위행렬을 촬영하던 그는 KCIA에게 필름을 요구받고 경찰봉으로 위협당했지만 끝까지 이를 지켜냈다.

광주 시내에 들어선 그는 헬기 안에서 총을 든 군인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헬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민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고, 함께 걷던 친구는 "헬기에서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고 말했다.

돌린저씨는 시민들을 돕기 위해 미 대사관에 연락했지만 대사관은 위험하다며 철수를 지시했다.

그는 "광주는 대사관이 경고했던 폭동이 아니라 연대의 도시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 등 외신기자들의 통역을 맡고 부상자 이송을 도왔다. 또 혹시 있을 영어 지시를 대비해 군 무전을 감청하기도 했다. 그는 도청에서 윤상원 열사에게 "당신도 광주시민"이라는 말을 들었고, 그 한마디가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미생물학과 면역학을 공부한 그는 결핵·HIV·B형 간염 등 감염병 진단기술을 연구하며 아프리카, 인도, 남미 등지에서 헌신해왔다. 2022년에는 5·18의 기억을 담은 '내 이름은 임대운'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14일 전일빌딩245에서 열린 행사에서 고광완 광주시 행정부시장(왼쪽)과 데이비드 돌린저 박사(오른쪽)이 명예시민증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2025.05.14ⓒ프레시안(김보현)

5·18을 겪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역사를 잊지 않고 공부해서 광주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며 "오월 광주와 같은 일이 지금 미얀마 같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고 있고 그들은 지지와 (시민저항의 성공 경험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돌린저씨는 "미국인이라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며 "오늘 광주시민이 된 것은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주는 단지 한 도시의 기억이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의 언어가 됐다"며 "5·18을 잊지 말고, 그날 희생된 이들을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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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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