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산하 기관인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에서 진행되는 전시의 도록에 실릴 예정이었던 글이 12.3 비상계엄을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수록 취소됐다. 예술·비평가들은 공공 미술관의 이같은 검열 행위는 적절치 않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4일 <프레시안> 취재에 따르면, 미술평론가 남웅 씨는 지난해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전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도록에 실릴 기고를 청탁받아 글을 보냈으나 아카이브 측으로부터 '중립적이지 않다'며 수록을 거절당했다.
해당 글은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예술의 실천적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남겨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계엄이 화투패처럼 쓰이는 상황은 국민의 주권까지도 쉽게 박탈하고 없앨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를", "우리는 예술에서 사회적 실천을 발굴하고 접면을 넓히는 시도뿐 아니라 의도치 않은 예술 작업에 급진적인 해석과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실천 또한 의식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이 글의 주요 골자다. (☞ 관련 글 바로가기)
'정치적 중립' 문제를 이유로 한 기고글 수록 취소 결정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13일부터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서울시립미술관과 아카이브의 이같은 방침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이번 전시 기획 의도가 "기관 의제인 '행동'과 연계하여, 기록의 사회적 가치와 실천적 기제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카이브 측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번 전시 기획 의도에 대해 "최근의 국내외 갈등과 분쟁, 참사 등은 '현재를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라는 복합적인 과제를 던진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 속에서 재현과 보존을 넘어 사회적 기억을 복원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내는 동시대 미술과 기억 기관인 아카이브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해보고자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주4.3평화재단,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등과 협업한다는 점을 소개하며 "과거와 현재의 기록이 계속해서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기억, 정서, 인식을 새로이 환기하고 미래를 향한 우리의 행동을 촉구하는 기록의 행동주의를 다각도로 인식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디지털 크리에이터 오혜진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행동'을 주제로 기획된 전시를 비평하는 글에 '중립'을 요구하다니 계엄과 내란 정국하 공공 미술관의 이 검열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예술가 A 씨도 "애매한 '중립', 그러나 그것이 배제와 포섭의 이유라면 그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은 매우 치우친 정치적 판단"이라며 "무엇을, 어떻게, 누가 왜 아카이브하는지 재맥락화한 전시는 각각의 동시대에서 재구성하는 실천일 텐데 이를 검열한다? 오히려 서울시립 미술아카데미가 아카이브해야 할 현재"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13일 <프레시안>에 "어떤 사건을 다룬 글을 공공미술관의 전시 도록으로 출판하는 것은 기관의 중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 어려울 것 같다는 내부적인 논의가 있었다"며 "전시 기획 의도라는 것도 있겠지만, 미술관 차원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느냐에 대해 논의했고, 그런 차원에서 수록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사자인 남 씨는 "서울시립미술관이 '행동주의'를 취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기만적이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비평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일들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응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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