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2일 오전 11시 25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은 안동, 청송, 영덕, 영양 등 경북 북부 지역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번 산불은 무려 149시간 만에야 모든 주불이 진화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초대형 산불로 기록한다.


이 재난은 31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부상자까지 합치면 사상자는 75명에 이른다. 주택 3,618동이 전소되었고, 약 4만 명의 주민이 긴급히 대피했다. 농작물 2,062ha, 시설하우스 1,397동, 축사 485동이 불탔으며, 농기계 1만 4,544대가 피해를 입었다. 한우 465마리, 돼지 1만 9,750마리, 닭 12만 7,309마리 등 수많은 가축들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어선 29척, 양식장 5곳, 양식어류 47만 마리도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 피해도 심각했다. 사찰 5곳, 불상 4기, 정자 2개, 고택 15채가 속수무책으로 불탔다.

특히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27m에 달하는 강풍은 산불 확산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재난에도 불구하고, 초기 언론 보도는 놀랄 만큼 차분하고 조용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일어난 홍수 재난,씽크홀 사고 비해 언론의 대응은 느렸고, 집중도도 낮았다. 이 차이는 단순한 지역 차이가 아니라, 언론이 재난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심각한 불균형을 보여준 예 이기도 하다. 긴급 속보도 특보 체제도 지체되었으며, 초기 몇 시간 동안 주요 방송사들은 정치, 연예, 스포츠 뉴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헬기 조종사의 순직이나 문화재 소실 같은 심각한 사안이 발생한 후에야 산불 보도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부실한 재난방송은 시민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법적으로 긴급 재난 상황에서 공영방송은 재난방송을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5일 의성에서 산불이 확산되던 시점에조차 짧은 특보만 간헐적으로 편성하고 정규 방송을 유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9년 강원 산불, 2020년 부산·경남 폭우 때에도 반복되었던 문제다.
이번 산불은 단순한 환경적 재난을 넘어, 우리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산불 재난에 대응하면서 총체적 난국이 벌어진 근본 원인과 산불 예방, 조기 진화를 위한 제도, 예산, 장비, 컨트롤 타워 작동, 진화 전문 인력, 부처 간 협력, 민관군 협력, 주민 등과의 소통 등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앞으로 많은 고민과 반성이 따라야 한다..기술과 매체가 아무리 발전해도, 정보를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가야트리 스피박이 말했듯,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썼는가"보다 "누가 썼는가" 그리고 "누가 듣는가"이다. 이 기록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한 시선의 증거다. 우리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모여, 언젠가 이 시대를 설명할 진짜 역사가 될 수 있다.
역사는 단지 과거와 현재의 대화만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대화"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더 정의롭고 더 올바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건을 면밀히 살피는 눈, 그리고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는 용기다.
경북 산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잿더미가 남긴 흔적 위에, 우리는 무엇을 새겨야 할 것인가. 우리의 기록은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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