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식품이야기] ④봄바다의 붉은 유혹, 멍게가 차린 미식의 세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식품이야기] ④봄바다의 붉은 유혹, 멍게가 차린 미식의 세계

단백질부터 타우린·미네랄까지, 멍게 한입에 꽉 찬 봄바다의 영양

▲4월이 제철인 멍게는 단맛과 감칠감이 증가하고 살이 오른다. ⓒ프레시안(문상윤)

4월은 멍게 (학명 Halocynthia roretzi)의 맛이 한껏 차오르는 시기다. 수온이 10℃ 안팎으로 떨어졌다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멍게 살은 단맛과 감칠맛을 머금고 살이 오른다.

경남 통영·거제에서 한창 출하되는 멍게를 두고 현지 어민들은 “봄 멍게가 제철 생선회보다 달다”고 말한다. 특유의 바다 내음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알싸한 향 아래에 숨은 영양학 가치와 특별한 맛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멍게는 조개·어패류가 아니라 피낭류로 구분되는 해양 무척추동물이다. 동의보감에는 해포(海包)라 기록돼 있고 조선 후기 어보(魚譜)에도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본격적인 양식은 1960년대 통영·거제 연안에서 시작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수산양식 50년사에 따르면 1975년 멍게 양식 생산량은 처음 100 톤을 넘었고 2023년에는 29만 톤까지 증가했다.

일본에서는 호야(ホヤ)라 부르며 회·초무침·젓갈로 즐기고 포항 구룡포에서는 멍게·해삼·피낭류를 한데 묶은 삼합이 봄 술상의 단골 안주로 자리 잡았다.

멍게의 기본 조성은 수분 78%, 단백질 11.3%, 글리코겐 6.6%, 지질 1.1%이며 필수아미노산 비율은 41%로 대구살(38 %)보다 높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22년 발간한 국내 양식 피낭류 기능성 성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멍게 100g에는 타우린 415㎎, 신티올 29㎎이 들어 있다. 이 두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과 함께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멍게는 또 다른 기능성으로 주목받는다. 한국해양대학교 식품공학과의 2013년 연구를 보면 멍게 식해와 조미 멍게에서 총 폴리페놀·플라보노이드 함량이 발효 기간에 따라 최대 38% 증가하며 DPPH 라디컬 소거능 역시 유의하게 향상된다고 보고했다. 이는 전통 발효식품인 멍게 식해가 항산화 식품으로 개발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멍게 껍질에는 셀룰로오스가 아닌 튜니신(tunicin)이 풍부해 생체 재료로 연구되고 있다. 실제로 부산대 치의학대학원에서 멍게 껍데기에서 추출한 칼슘·인 화합물을 저자극 치아 코팅제 소재로 2015년에 특허 등록을 하기도 했다.

붉은 껍질에 뾰족한 돌기가 돋은 생김새 덕분에 멍게는 바다의 파인애플로 통한다. 호불호를 가르는 독특한 향 역시 멍게의 상징인데 이 향을 결정하는 주된 물질은 아연·구리와 결합한 피롤리딘계 화합물이다. 그 덕분에 멍게 애호가들은 특유의 향이 풍길 때마다 침샘이 먼저 반응한다.

봄바다의 별미 중 하나인 멍게는 껍질을 벗기면 투명한 살 속에서 달큼하고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퍼진다. 살아 있는 멍게를 손질해 살짝 헹군 뒤 바로 먹는 회가 기본이지만 몇 가지 손쉬운 응용을 곁들이면 풍미가 한층 깊어진다.

살짝 간을 한 멍게살을 밥 위에 올리고 참기름·매실청·깨를 살포시 섞으면 달큰한 멍게비빔밥이 완성된다.

향에 익숙지 않은 초보 입맛이라면 끓는 물에 5 초 정도 데쳐 향을 눌러 준 뒤 새콤한 초고추장이나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으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멍게 살을 잘게 썰어 잘 익은 아보카도, 방울토마토와 함께 올리브유·레몬즙으로 버무리면 멍게 세비체가 되고 한입 크기로 자른 멍게를 버터에 살짝 볶아 알단테로 삶은 파스타와 합치면 감칠맛 가득한 멍게 버터 파스타가 된다.

멍게 껍질에서 우러난 육수를 더해 된장을 푼 뒤 두부·미역을 넣어 끓이면 입안에 바다 향이 퍼지는 멍게 된장국이 밥상의 마무리를 책임진다. 이렇게 조리법을 조금만 변주해도 멍게 특유의 달큰·짭짤·알싸한 매력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멍게는 회로 즐겨도 훌륭하지만 발효 과정을 거치면 또 다른 깊이를 얻는다. 대표적인 예가 멍게 식해다.

멍게 식해는 손질한 멍게 살을 잘게 썰어 찹쌀풀, 고춧가루, 마늘, 생강을 버무린 뒤 7~10 일간 서늘한 곳에서 숙성시키면 완성된다.

숙성되는 동안 멍게 단백질이 천천히 가수분해되면서 글루탐산·아스파르트산 같은 감칠맛 아미노산이 크게 늘어나 한 숟갈 뜨면 달콤·짭조름·새콤한 맛이 겹겹이 퍼진다.

살아 있는 멍게가 날것의 신선함이라면 식해는 발효가 빚어낸 부드러운 풍미라고 할 수 있다.

멍게는 살뿐 아니라 껍질까지 버릴 부분이 없다.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과 해양수산부가 2023 년 펴낸 수산 가공신소재 연구 총괄 보고서에 따르면 멍게 껍질 100g을 120℃ 열수로 추출한 뒤 분무 건조해 만든 분말에서 총 식이섬유가 무려 73% 검출됐다.

덕분에 이 분말은 제과·제빵에 혼합해 식이섬유를 보강하는 파이버 파우더 시제품으로 상용화 가능성이 확인됐다. 바다 내음의 별미가 웰니스 트렌드에 어울리는 기능성 소재로까지 변신한 셈이다.

또한 Cuisine Actuelle 2024년 2월호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셰프들은 브라운 버터에 숙성 멍게를 인퓨징한 멍게 추출물 버터를 관자·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요리에 풍미 증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멍게는 독특한 향만큼이나 다채로운 영양소와 이야기를 품은 해산물이다. 저지방·고단백 구조에 타우린과 신티올 같은 생리활성 물질이 풍부해 봄철 활력 회복 식재료로 손색이 없다.

제철을 맞아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은 지금 바다 내음 가득한 멍게 한 접시로 봄 식탁을 채워보는 건 어떨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