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한남동 관저에서 퇴거해 서초동 사저로 거처를 옮겼다. 관저에 입주한 지 886일,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결정한 지 1주일 만이다.
관저에서 퇴거하면서도 헌재 결정 승복이나 국정 파행에 대한 사과 메시지는 내지 않았다. 되레 지지자들을 향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면서 향후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예고했다.
출발 전 윤 전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씨는 도열한 대통령실 참모진과 20여분 간 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은 "임기를 끝내지 못해 아쉽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많이 미안하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이에 정진석 비서실장은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은 또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고생했다, 힘내라, 고맙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취임 이후 국가 발전을 위해 또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 사회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면서 "비상조치 이후 미래 세대가 엄중한 상황을 깨닫고 자유와 주권 가치 소중함 인식하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정을 수습하고 그만 울고 자유와 번영을 위해 더욱 힘써달라"고 말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관저에서 출발한 윤 전 대통령은 정문에서도 하차해 지지자들과 일일이 인사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여러차례 손을 흔들며 지지자들 앞으로 걸어와 악수하고 포옹했다.
윤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젊은층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연호했다. 윤 전 대통령 퇴거에 앞서 한 유튜버가 "대통령경호처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청년 200명이 모여달라"고 독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윤 전 대통령은 '감사 인사' 메시지를 언론 공지 형식으로 내고 "이제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꿈꾸었던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메시지 대상은 끝까지 지지자들에 국한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겨울에는 많은 국민들, 그리고 청년들께서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켜주셨다"고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회고하며 "추운 날씨까지 녹였던 그 뜨거운 열의를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사저 생활 중에도 자신의 존재감을 대선 국면에 부각시키기 위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는 파면 뒤 관저에 머무는 동안 나경원, 윤상현 의원, 이철우 경북도지사 등 여권 정치인들을 비롯해 한국사 강사이자 극렬 지지자인 전한길 씨와도 만나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지 않았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의 후광이 중도층 확장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국민의힘으로선 향후 관계설정이 난감해졌다.
관저를 떠나 명실상부한 자연인 신분이 된 윤 전 대통령은 12.3 계엄 선포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로 내주부터 형사재판을 받는다. 오는 14일로 예정된 정식 공판은 피고인 출석 의무가 있다.
형사상 불소추특권을 받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만큼,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특수공무집행방해나 공천개입 의혹 등과 혐의로 기소되면 재구속될 수도 있다.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씨에 대한 검찰 조사도 빨라질 전망이다.
서초동 사저로 거처를 옮긴 윤 전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팀은 40~50명 규모로 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파면된 대통령도 최장 10년 간 경호·경비 관련 예우는 유지된다.
2022년 5월 취임 뒤에도 6개월가량 머물렀던 경험이 있어 사저 경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저가 주상복합 아파트여서 주민 불편이 우려되고 반려동물이 11마리인 점 등을 고려해 추후 다른 곳을 물색해 거처를 옮기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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