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 '반란'이란 무엇일까. 지난 9일 대권 도전을 선언한 김동연 지사를 잘 알 수 있는 책이 16일 나온다. 자신의 삶과 정치적 비전을 담아낸 저서 <분노를 넘어, 김동연>(메디치, 2025)이 출간될 예정이다. 출간도 안 된 이 책의 반응이 뜨겁다. 예약판매 중임에도 교보문고 일간 베스트 3위(11일 기준)에 올랐다.
이 책은 김 지사의 세 번째 저서다. 자서전은 아니지만, 김 지사의 과거가 잘 드러나 있다. 김 지사의 흙수저 스토리부터 경제부총리, 기재부 예산실장,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내면서 겪은 일화, 정계입문 후의 비화, 경기도지사이자 대선주자로서의 비전 등이 담겼다.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노'와 '반란'이다. 그간 김 지사의 행보를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뒤집는 반란을 통해 그가 느낀 분노를 넘어왔다. 한마디로 부조리한 현실 내지는 부당한 명령 등에 느낀 분노를 반란, 즉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해소해 왔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그런 과정이 잘 설명돼 있다.

빚잔치 뒤 무허가 판잣집, 가난에 대한 분노를 학업으로 풀어
김 지사의 첫 번째 분노는 가난한 학창시절에 대한 분노다. 판잣집에서 강제이주민으로, 그리고 이어진 천막살이의 극빈한 상황으로 상고로 진학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집이 폭삭 망했다. 빚잔치 뒤에 우리 가족은 쫓기듯이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으로 옮겼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빈민들이 살던 곳이다. 나는 그 동네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몇 년 후 무허가 판잣집은 철거됐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광주대단지'(성남시의 모체)라는 곳으로 강제 이주됐다. 그곳에 우리 가족은 천막을 치고 살았다."
"성적이 비교적 좋았던 나는 명문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상고에 안가겠다고 버텼다. 어머니는 나를 설득했다. 인문고 나와 대학에 붙어도 등록금이 없어 진학하지 못한다고. 상고를 졸업하고 취직하면 야간대학에 다니는 길이 있다고. 결국 원하지 않은 학교에 가게 됐다. 억울했다. 상실감과 박탈감이 컸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입학한 뒤에는 학교도 학과 공부도 싫었다. 주산, 부기, 타자, 펜글씨, 심지어는 속기까지 배워야 했다. 분노는 반항으로 나타났다. 학교 수업을 빼먹었다."
불우한 환경에 대한 김 지사의 분노는 단순한 분노에만 그치지는 않았다. 가난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지금의 틀을 깨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학업이라는 '반란'을 도모했다. 김 지사는 "반항이 끝없이 계속되지 않은 것은 어머니, 그리고 장남의 무게 때문"이었다며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분노, 무엇을 상대로 하는지도 모르는 저항을 마음 깊숙이 가라앉혀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금씩 학업과 취업 준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서는 취업 전쟁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직장은 대한항공이었다. 야간대학 다니기가 좋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우리 반에 대한항공 추천서가 한 장 왔다. 차례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3학년 2학기 초 은행 시험을 봤다. 이 취직 시험에 우리 가족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한국신탁은행 합격자 발표가 났다. '1반에서는 김동연, 합격!' 뛸 듯이 기뻤다. (중략) 합격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그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는 어머니가 춤을 추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고시에 붙고, 박사가 되고, 부총리가 되고, 도지사 선거에서 이겼지만, 어머니는 다시는 춤을 추신 적이 없으셨다."
취업 이후에도 그의 '반란'은 이어졌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정말이지 죽도록 가고 싶었다. 야간대학이 몇 곳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사무실에서 퇴근 후 가기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학은 당시 서대문사거리에 있던 '국제대학'이었다. 지금의 서경대학교다. 당시에는 덩그러니 건물 하나밖에 없었지만 주경야독하는 직장인들의 꿈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렇게 법학과에 입학한 김 지사에게 캠퍼스의 낭만은 없었다. 은행 일을 마치고는 부지런히 학교로 달려가야 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1교시가 끝난 뒤, 쉬는 시간에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목구멍에 욱 넣어야 했다.


대선 도전하는 김동연, 그의 마지막 반란은?
김 지사의 두 번째 '분노'는 차별에 대한 분노였다. 야간대학 3학년 1학기 때, 직장 선배 방에 있던 고시잡지를 보고 고시에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 뒤 낮에는 직장을, 저녁에는 야간대학을, 그리고 숙소에 돌아온 늦은 밤에는 고시 공부를 했다. 1인 3역이었다. 그렇게 해서 행정고시에 합격,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합격의 기쁨은 잠시였다. 자부심이 열등감으로 바뀌는 것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과에 들어가 인사하는데 중참 사무관 하나가 물었다. '학교는 어디 나왔나?' 대답을 하고 나가는데 뒤통수에 이런 말이 와 닿았다. '요새는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애들도 시험에 붙어 여기까지 오네.' 불에 덴 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시절 내 속에 있던 수많은 감정 중 하나만 뽑으라면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백조 무리에 끼인 오리 새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는 온통 명문대학 나온 사람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벽 앞에 서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분노를 안고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러한 분노는 일을 해내면서 풀어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극찬을 받은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가는 로드맵을 담은 비전 2030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청와대 금융정책비서관으로서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정책을 펼치던 것까지.
김 지사는 원동력이었던 분노를 바탕으로 파생된 이런 경험을 토대로 마지막 '반란', 정치를 선택했다. 국민의 삶을 제대로 바꿔보겠다는 '반란'이었다.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데 주저함이 없는 기득권, 진영 양극단으로 갈라진 정치, 역사상 가장 똑똑한데도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가 될 위기에 처한 청년들,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까지. 이대로는 안 된다. 새로운 반란이 필요하다. 'Buy Korea'가 아닌 'Bye Korea'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의 대한민국과의 '결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반드시 기득권 내려놓기와 연결되어야 한다. 승자독식 구조로 고착된 주요 권력기관의 기득권, 공직사회와 법조계의 공고한 '전관 카르텔' 기득권, 나아가 정치 기득권을 타파해야 한다."
그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김동연 지사는 지난 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김 지사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으로 출마한다"며 "이번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이 과거로 회귀할 것이냐, 미래로 나아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정권교체, 그 이상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출마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마지막 ''반란'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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