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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커피이야기] ④커피 향미 지도, 커핑으로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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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커피이야기] ④커피 향미 지도, 커핑으로 그리다

향, 산미, 바디, 후미… 커피의 언어를 읽는 방법

▲커핑은 커피 향미를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 프레시안(문상윤)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커피가 어떤 향미를 지니는지 무엇이 좋은 커피인지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테이스팅을 통해 품종과 산지를 구별하듯 커피에도 그런 감각 훈련이 존재하는데 바로 커핑(cupping)이다.

커핑은 커피 향미를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다.

원두의 향, 맛, 바디감, 산미, 후미(애프터테이스트) 등을 기준으로 분석하는 이 과정은 원두를 선택하는 로스터, 품질을 감별하는 수입업체, 그리고 카페에서 메뉴를 개발하는 바리스타 모두에게 중요한 기본기이자 실무 능력이다.

하지만 커핑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기본적인 도구와 절차만 지키면 누구나 집에서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감각 훈련이다.

오히려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알고 싶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훨씬 유익한 경험일 수 있다.

커핑을 집에서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단순하다. 먼저 평가할 원두를 준비하는데 종류가 다를수록 비교가 쉽다.

▲ 커핑에 사용되는 컵은 열 보존이 잘 되는 도자기 재질이나 내열 유리 재질이 좋다. ⓒ프레시안(문상윤)

각 원두를 약 9g씩 준비하고,굵은 소금 정도 입자로 분쇄한 후 각각 컵에 담는다.

컵은 열 보존이 잘 되는 도자기 재질이나 내열 유리 재질이 좋다. 디지털 저울과 타이머, 깨끗한 스푼도 필수다. 커피를 우려낼 뜨거운 물은 약 93~96°C가 적당하다.

분쇄된 원두를 컵에 담은 뒤 물을 붓고 4분간 우린다. 이때 형성된 크러스트(crust, 원두 찌꺼기 층)를 스푼으로 깨면서 향기를 맡고 거품과 찌꺼기를 걷어낸 후 커피가 식으면 스푼으로 떠서 입 안에 빠르게 흡입하며 맛을 본다.

이처럼 공기를 섞으며 마시는 방식은 커피의 맛과 향을 입 전체로 확산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커핑 평가 시 고려할 요소가 몇가지가 있는데 향기(Fragrance/Aroma)는 커핑의 출발점이다.

커피의 향은 원두를 갈았을 때 맡아보는 건식 향기(fragrance)와 물을 부은 후 풍겨 나오는 습식 향기(aroma)로 나눌 수 있다.

향은 로스팅 정도나 품종, 산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파나마 게이샤 품종의 경우는 자스민이나 레몬 껍질 같은 향이 과테말라는 초콜릿 향이나 너티한 향이 도드라진다. 이 향의 세기와 복합성, 지속력을 메모해두면 향미 해석에 도움이 된다.

맛(Flavor)은 커피를 마셨을 때 느껴지는 종합적인 향미 인상이다. 이는 단순히 단맛, 신맛, 쓴맛의 구분을 넘어서 커피가 입안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커피는 첫맛이 시트러스처럼 상큼하다가 중반에 단맛이 올라오고 끝으로 고소하거나 화한 후미가 남기도 한다. 맛을 평가할 때는 그 흐름과 전개, 복합성, 깔끔함이 핵심이다.

산미(Acidity)는 커피의 생동감을 말한다. 신맛이라고 표현하면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커피의 산미는 좋은 품질의 지표 중 하나다.

신선한 과일 같은 산미는 커피를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너무 자극적이면 과도하게 떫거나 쓰게 느껴질 수 있고 부족하면 밋밋하게 느껴진다. 좋은 산미는 명확하고 깨끗하며 다른 맛들과 조화를 이룬다.

바디(Body)는 커피의 무게감과 질감을 평가한다. 물처럼 가볍고 투명한 커피가 있는가 하면 입안을 감싸는 크리미하고 밀도 높은 커피도 있다.

바디는 품종과 가공 방식, 로스팅, 그리고 입자의 크기 등에 따라 결정된다. 실크 같은 부드러운 바디인지 묵직하고 오일리한 느낌인지 메모하며 평가한다.

후미(Aftertaste)는 커피를 삼킨 후 입안에 남는 맛의 여운이다. 좋은 커피는 삼킨 뒤에도 깨끗한 단맛이나 은은한 산미가 길게 이어진다.

반면 텁텁하거나 떫은 맛이 오래 남는다면 품질이 낮거나 로스팅 또는 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 후미는 지속 시간과 인상 모두 중요하다.

균형감(Balance)은 각각의 요소가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는지를 본다. 향은 좋은데 산미가 너무 강하거나 단맛은 좋지만 바디가 약한 경우에는 균형감이 떨어진다. 반대로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때 커피는 ‘밸런스가 좋다’고 평가받는다.

클린컵(Clean Cup)은 커피 맛에서 불쾌한 이취가 없는지를 보는 항목이다. 쿰쿰한 맛, 과발효된 맛, 약 냄새 등은 클린컵 점수를 낮춘다. 깔끔한 느낌의 커피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스위트니스(Sweetness)는 단맛의 유무보다 그 감각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지를 평가한다. 캐러멜이나 설탕 같은 단맛이 아닌 사과나 배 같은 과일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단맛의 느낌이다.

이러한 항목을 체크하며 커핑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향미를 선호하는지 품질 좋은 커피의 기준은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체득하게 된다.

커핑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커피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취향 훈련의 과정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스페셜티 커피는 수많은 향미 노트와 함께 출시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내 취향인지 어떤 맛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그저 포장된 마케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커핑을 할 때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2~3가지 원두를 준비하고 컵과 저울, 뜨거운 물만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과정 속에서 향과 맛을 적극적으로 인식하려는 의식적인 감각이다.

커핑은 ‘아, 이 커피는 왜 이렇게 상큼하지?’, ‘이건 묵직하네?’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커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커피는 더 이상 카페에서만 즐기는 음료가 아니다. 수많은 소비자들이 직접 원두를 고르고 추출 도구를 선택하며 자신의 기준으로 커피를 평가하는 시대다. 그 시작이 바로 커핑이다.

향미를 구분하고 언어로 기록하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가는 커핑의 경험은 단순한 테이스팅을 넘어선다.

집에서 시작하는 커핑은 커피가 주는 감각의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흥미롭고 아름다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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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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