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국이 직면한 국내외 문제 해소를 불가능하게 한 정치적 위기 해소로 봤다.
계엄으로 인한 극우의 표층화가 곧바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지만 곧 치러질 대선으로 보수층 관심사가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법원 습격 등 폭력 행위 분출로 충격을 받은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 표현을 꺼리며 표현의 자유가 훼손된 것 또한 지적됐다.
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이날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판결로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경제국(한국)의 성장이 둔화하는 시점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관계 구축 노력을 어둡게 했던 정치적 위기가 마무리됐다"고 평가했다. 통신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수십 년 만에 국가 최악의 정치 위기를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미 CNN 방송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 의제로 수십 년 간의 외교 정책을 뒤집고 세계 무역 체계를 해체하는 우려스런 상황에서 세계 주요 경제국이자 미국의 핵심 동맹의 지도자가 부재했던 장기간의 위기가 마무리됐다"고 평가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리프 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국제학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판결로 불확실성의 주요 원천이 제거됐다"며 차기 정부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 중국의 외교적 압박, 트럼프 정부의 무역 관세를 포함해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한국 정부의 시급한 우선 순위는 성장을 강화하고 미국이 부과한 관세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한국 정부가 직면한 위험이 크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를 표적으로 삼고 있고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짚었다.
신문은 "지도부 공백은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해 한국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라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가 임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의 차기 지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원활히 하는 동시에 중국의 경제 협력 강화 제의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일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 국가에도 무거운 관세를 부과한 가운데 영미권 외신은 지난 주말 있었던 한·중·일 경제장관 회담을 상기시키며 한국과 일본이 미국이 견제하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더 가까운 관계를 맺을지 주목하고 있다.
관련해 <워싱턴포스트>(WP)는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게 된다면 이러한 변화가 더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문은 민주당이 "안보를 위해 의존하는 미국과 가장 큰 교역 상대방인 중국과의 사이에서 보다 '균형 잡힌' 접근"을 선호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시점에서 이러한 접근 방식이 "새로운 탄력"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외신은 계엄령으로 인해 극우 세력이 표면으로 튀어 나왔고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이들이 즉시 가라앉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우열 연세대 정치학 교수가 최근 시위에서 전투적 모습을 보이는 극우 집단이 등장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운동 구성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백 교수는 신문에 "탄핵이 인정되더라도 이번에 등장한 소위 극우 단체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BBC 방송도 "한국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며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12월3일이 한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우려했다. 방송은 "근거 없는 음모론" 탓에 선거가 조작됐다고 믿는 이들이 늘며 "선거 체계에 대한 신뢰"가 위협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윤 전 대통령이 "전통적으로 극우가 주도한" 북한이 정치적 반대파에 침투했다는 "근거 없는 음모"를 퍼뜨리는 방식으로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공포를 이용하며 "극우 극단주의"를 부추겼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법원 습격 등 폭력적·극단적 행위까지 목도하며 정치적 의사 표현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우려도 인다. BBC는 이날 한국 전역의 직장인들이 업무를 멈추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억눌린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직장인은 방송에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됐을 때 몇몇 사람들이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지만 "정치적 분열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사람들은 최근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걸 주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직장인은 "그게 우리 모두가 책상 앞에서 판결을 보면서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FT) 일부 분석가들이 우파의 분노는 제한적일 수 있으며 관심은 빠르게 우파의 새 지도자가 누가 될 것인가로 옮겨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고 짚었다.
BBC는 헌법재판소 판결 뒤 약 30분이 지난 이날 점심시간 무렵엔 직장인들의 대화 주제가 차기 대선으로 옮겨 갔다고 전했다. 방송과 인터뷰한 직장인은 "이제 모두의 유일한 관심사는 선거가 언제 치러지고 누가 후보가 될 것인가 뿐"이라며 "아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도 지난해 12월 계엄령을 떠올리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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