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늘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익숙하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멈추는 순간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소백산 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부석사는 불안과 욕망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는 비움의 공간이다.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한국 화엄사상의 본산이자, 고려 목조건축의 정수인 무량수전과 배흘림기둥을 간직한 살아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부석(浮石; 공중에 뜬 바위)’이라는 이름처럼, 한계단 한계단 걸음을 재촉해 무량수전에 이르면, 눈앞에 펼쳐진 산자락에는 운무가 자욱하다. 마치 속세를 벗어나 부처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마저 든다.
안양루,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시인의 외침
무량수전 앞마당에는 소박한 누각 안양루가 있다. 이 누각에는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의 시가 걸려 있다. 그는 과거 시험에 급제한 뒤, 자신이 풍자한 글의 대상이 홍경래의 난 당시 성을 지키지 않고 항복했던 자신의 조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때부터 김병연은 스스로를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여기며 삿갓을 쓰고 이름을 버린 채 유랑걸식으로 명산대천을 떠돌았다.

김삿갓은 부평초처럼 흔들리는 세상과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노래하며, 그 안에서 유영하는 인간의 덧없음을 담담히 직시한다. 그는 삶의 무상함을 체념이나 분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각의 길을 택했다.
안양루에 올라 백두대간의 장엄한 능선을 바라보면, 우리 역시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삶의 본질에서 멀어진 건 아닌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무량수전, 침묵으로 건네는 메시지
안양루를 지나면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백미로 손꼽히는 무량수전(無量壽殿) 배흘림기둥을 만날 수 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배흘림기둥과, 그 안에 조용히 앉아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부석사의 정신적 중심이자 정토신앙의 상징이다.

중첩존재론과 양미론(兩未論)의 창시자 권추호 박사는 부석사의 가람 배치와 아미타불의 동향(東向) 배치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아미타불 앞에 예를 올리는 순간, 예배자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서방의 극락, 곧 소백산 비로봉의 비로자나불(법신불)과 연화봉의 연화세계에 닿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치는 일즉다(一卽多)를 설법한 화엄사상의 정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정토사상(극락왕생의 기복사상)과 화엄사상('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연기적 세계관)이 하나로 어우러진 통합적 사유의 공간임을 상징한다.
많은 이들이 보이는 것에만 의지할 때, 부석사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 고요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묻게 된다.
무량수전 앞에 서면, 말 없이 건네는 이 속삭임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위로다.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멈춰 설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본래의 자성(自性)을 비추어 볼 수 있고, 그것은 세상으로 나아갈 힘이 된다.
부석사 풍경소리, 마음을 씻다
부석사는 여행지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거울 같은 공간이다.
여행 자체가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그 한순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여백을 갖게 된다.
오늘도 바람은 나뭇잎을 스치고, 딸랑이는 풍경소리에 시간이 멈춘 듯, 온 산이 정적으로 메아리친다.
인생도 가끔은 그렇게 멈추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시작은, 어쩌면 ‘지금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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