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소백산의 기운을 고스란히 품은 고장입니다. 그곳에는 한국유학의 발원지이자 정신문화의 뿌리인 소수서원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수서원은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을 모태로 합니다. 이후 조선 중종은 퇴계 이황의 건의를 받아들여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이름을 직접 하사했습니다. ‘소수’란 끊어진 학문을 계승해 다시 닦는다는 뜻으로, 이곳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선비정신을 되살리는 상징적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학자수 소나무 숲, 선비정신을 품다
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즈넉한 소나무 숲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은 바람에도 쉽게 굽히지 않는 선비의 절개와 기품을 닮았습니다. 이 소나무들은 단순한 조경이 아닙니다.
선비들이 사는 동안 닦아야 했던 올곧은 정신과 자기 절제의 자세를 대변하는 ‘학자수(學者樹)’입니다. 마치 백세를 넘긴 노학자들이 묵묵히 후학들의 길을 지켜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죽계천 물소리, 마음을 씻다
숲을 지나면 죽계천이 유유히 흐릅니다. 서원을 감싸 흐르는 이 맑은 물줄기는 소백산에서 흘러 소수서원 전체를 정결하게 씻어주듯 휘감고 돕니다. 쉼 없이 흐르는 그 소리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혼란한 현실 속에서 조용한 성찰의 시간으로 이끕니다.
죽계천 언덕 위에는 퇴계 이황이 직접 세운 ‘취한대(翠寒臺)’라는 정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퇴계는 이곳의 맑고 고요한 풍경 속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草有一般意(초유일반의 ) 溪含不盡聲(계함부진성) 遊人如未信(유인여미신) 瀟灑一虛亭(소쇄일허정)
“초목은 그 나름의 이치를 지니고, 죽계는 끝없이 흘러 소리를 다 머금지 못하네.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정자는 텅비어 맑고 고요하게 우뚝 서 있네.”
이 시는 자연의 이치와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담담히 성찰하며, 진정한 깨달음은 눈에 보이는 형상 너머에 있음을 일깨웁니다. 그렇게 퇴계는 죽계 물가에 ‘경(敬)’이라는 한 글자를 새겨, 이 정결한 공간은 단지 자연을 감상하는 공간만이 아닌 내면 수양의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남겼습니다.
‘경(敬)’자 바위, 유학의 핵심을 말하다
죽계 투박한 바위에 새겨진 ‘경(敬)’자는 유교철학에서 우주와 인간을 하나로 연결하는 최고의 가치로 단순한 예절을 넘어, 자기 수양의 출발점이자 삶의 태도를 다잡는 원리입니다.

‘경’은 주일무적(主一無適), 즉 하나에 집중해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도록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마음이 방만함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은 현재라는 시간에 집중하고, 만나는 사람에게 진실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산만한 정신을 모아 삶의 중심을 다시 잡고, 흩어진 자신을 한데 모아 몰입할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참된 존재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면의 평화를 회복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때, 우리의 삶도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수서원에서 다시 배우는 삶의 길
소수서원은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정신의 공간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고 있는가?” “바로 지금(now), 여기(here)에 나의 삶을 몰입(flow)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는지를 스스로 묻게 만듭니다.
봄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소수서원의 경자바위 앞에서 잊었던 내면의 참나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경(敬)’ 한 글자로 수천 년 유학의 가르침을 응축한 퇴계의 가르침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찰나의 순간에도 소홀함 없이 임하고, 마음의 순수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