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경북 의성군 산불 현장에 투입된 한 새내기 소방사의 말이다. 지난 22일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된 불길은 일주일 동안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경북 동부권을 휩쓸며 중대형 산불 11건으로 번졌다.
이날 오전 11시 26분, 성묘객의 실화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초속 10m를 넘는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산야를 집어삼켰다. 이후 불길은 경남 산청·하동, 전북 무주, 충북 옥천, 울산 울주까지 번지며 국가적 재난으로 확대됐다.

■ “살려야 한다” 몸 던진 소방대원들… 극한 속 사투
경북 지역에만 78대의 헬기가 배치되고, 진화대·공무원·소방·군·경찰 등 6,976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하지만 초속 20m에 달하는 돌풍 속에 헬기가 뜨기도 어려웠다.
강원도에서 지원을 나온 한 헬기는 화염과 맞서 싸우다 결국 추락, 조종사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화재 현장 곳곳에서 소방대원들의 처절한 사투가 이어졌다. 한 새내기 소방관은 “솔직히 두려웠다. 하지만 번개처럼 퍼지는 불길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베테랑 소방관과 신입 대원이 함께 몸을 던지며 불길을 막아섰다.

■ ‘천년 고찰’도 화마에… 고운사 전각 21동 소실
산불은 문화유산도 집어삼켰다. 25일 오후 4시쯤, 불길이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자락의 ‘천년 고찰’ 고운사로 번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30개 전각 중 21개 동이 소실됐다.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과 가운루도 전소됐다. 다행히도 대웅전은 사찰 관계자들과 소방대원들의 필사적인 방어 덕분에 지켜낼 수 있었다.

■ ‘기적의 생환’ 안동 만휴정… 방염포가 살렸다
한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안동 만휴정은 기적적으로 화마를 피해갔다. 국가유산청, 안동시, 소방당국, 경북북부문화유산돌봄센터 등 40여 명이 합동으로 방염포를 덮어 보호한 덕분이었다.
이 조치는 2005년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화재 이후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재난 방지 시설 구축 사업’의 최신 사례로 꼽힌다.
■ 일주일 만에 주불 진화… “완전한 진화까지 방심 금물”
산불은 28일 오후 5시경 일주일 만에 주불(主火) 진화가 완료됐다. 하지만 낙엽과 숲속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어 산림당국은 잔불 정리에 돌입했다.
산불진화헬기 일부는 각 시·군에 남겨져 재발화를 감시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경남 산청 등 산불이 잡히지 않은 지역으로 추가 투입됐다.

■ 30명 사망, 4만8천㏊ 소실… 피해 복구 ‘막대한 과제’
이번 산불은 30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75명의 인명 피해를 남겼다. 4만8천㏊의 산림이 소실됐으며, 주택 3천여 동이 전소됐다. 국가유산 피해 30건, 농업시설 피해 2천여 건 등 복구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정부는 경북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신속한 피해 복구 및 이재민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다시는 이런 재난 없도록”… 재난 대응 체계 강화 필요
이번 화재를 통해 야간 진화 시스템, 헬기 대형화, 대피 표준매뉴얼 개선 등 산불 대응 시스템의 전면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소방대원은 “산불 대응 인력과 장비가 더 보강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재난을 막기 어렵다”며 재난 대응 체계의 대대적인 보완을 촉구했다.
경북을 휩쓴 화마는 잦아들었지만, 남겨진 상흔은 깊다. 불길과 싸운 영웅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 그리고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까지… 이번 산불이 남긴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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