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동명동의 한 바에서 매년 특별한 밤이 열린다. 술과 음악이 흐르는 공간, 하지만 지난달 28일. 이날은 단순한 파티가 아니다. 무등육아원의 아이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연주하는 자리다. 이날 모인 수익금은 전액 아이들의 자립을 돕는 후원금으로 쓰인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은 론 하포드씨(Ron Harford). 15년 전 광주에 정착한 그는 조선대에서 영어와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교수이자, 바 로프트28(Loft28)의 공동 창업자다. 벌써 7년째 기부와 나눔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후원하고 있는 무등육아원은 1928년 정순목 목사와 지역민의 광주공제조합으로 시작해 벌써 4대째 대를 이어 운영해오고 있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정은강 원장은 삶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다가 아버지의 요청에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 원장은 "장애인이나 노인 시설이었으면 오지 않았겠지만 어린아이들을 위한 시설을 차마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론씨가 처음부터 정 원장과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계기는 뜻밖의 장소에서 찾아왔다.
그는 7년 전을 회상하며 "우리 외국인 축구팀은 매주 일요일 축구를 한다"며 "그런데 인원이 부족할 때마다 강(정은강 원장)이 아이들을 데려왔다. 처음엔 그냥 동네에서 데려온 아이들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이 데려온 아이들은 무등육아원의 청소년들이었다. 축구를 통해 운동도 하고, 외국인들과 어울리며 사회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론씨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타인과 운동하며 어울릴 기회도 많지 않다"면서 "그냥 함께 공을 차는 것뿐인데도,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을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토너먼트 참가를 위해 차를 함께 타고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에도 다양한 단체(유기견 보호, 여성 보호소 등)에 기부했지만, 이날 무등육아원을 알게 된 후 집중적으로 후원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피자를 사서 돌리는 작은 나눔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 바에서 기부 행사를 열면 어떨까?'

그렇게 7년 전, 당시 전남대 근처 로프트28에서 첫 번째 '나눔의 밤'이 열렸다. 그날 처음 무대에서 노래를 열창했던 초등학생 아이는 올해 대학 보컬과에 진학했고, 올해도 어김없이 무대에 섰다. 그렇게 나눔의 밤은 로프트28의 전통이 됐다.
론 씨는 10년 전 이 바를 직접 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자메이카 출신인 그가 광주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공간이 많지 않아 직접 만든 가게였다.
그는 "광주 외국인들에게 내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래서 '다락방(loft)'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28은 함께 창업한 친척의 부모님 생월을 따서 지었다"고 부연했다.
당시 전남대 외국인 학생들이 각종 파티를 여는 '핫플레이스'가 됐지만, 계약 만료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동명동으로 이전하게 됐다.
이 곳에서 매년 열리는 자선의 밤은 단순히 기부금을 모으는 자리가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 무대가 된다.
론씨는 "아이들도 직접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했다"며 "직접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로프트에서 무대와 음향 장비를 제공하고, 아이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하며 무대를 채운다. 한밤의 바가 아이들의 작은 콘서트장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그는 "아이들이 공연을 마치고 박수를 받을 때, 그 표정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며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에서 모인 기부금은 무등육아원의 운영과 아이들의 지원에 쓰인다. 공연을 한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론씨는 "기부금이 모이면, 로프트28 이름으로 그만큼을 더 보탭니다. 어떤 해에는 더 보태기도 해서 최소액을 100만 원 정도로 잡고 있어요. 올해는 200만 원을 넘겼어요. 하지만 금액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 이 행사를 이어가는 거죠."
그는 단발성 기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부 문화 자체가 자리 잡길 바란다. 하지만 외국인 사회도 기부에 적극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론씨는 "광주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도 기부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며 "사람들이 최소한 행사에 와서 '좋은 일 하네' 하고 기부라도 하고 갔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기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기부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고 커피 한 잔 값이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참여"라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인 사회도 보면 각자 그룹이 있고 친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린다"면서도 "나눔은 그런 경계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론씨는 포기하지 않고 올해부터 나눔의 밤 행사의 빈도를 더 늘릴 계획이다. 오는 4월에도 자선 행사가 이어진다.
기부를 이어가는 론씨는 벌써 한국 생활 15년 차. 이제는 그에게 광주는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닌 '집'이 되었다.
그는 "강의 때 학생들에게 묻곤 한다. '돈 걱정이 없다면,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라며 "저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지금 하는 일이 떠올랐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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