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변하지만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하는 욕망이라는 적폐의 근저에는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 두 원소가 생각과 삶의 질을 결정하며, 여기에는 좋고 나쁨이나 정의와 불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유만이 있을 뿐이다"
영혼마저 물질로 보며, 소유하려는 인간의 극단적인 욕망을 그린 장편소설이 도서출판 '시방사유'에서 출간됐다.
송복남이 쓴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다. 이 소설은 부의 영원한 소유를 위해 영혼마저 농단하는 인간의 극단적인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란 제목은 지외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에 나오는 '심연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에서 빌려왔다. 소설에서 '그랑호텔'은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물질적 풍요를 상징한다. '투숙객들'은 이 체제에 동승한 사람들로 영혼을 영원불멸의 물질로 보며, 소유 또한 영원하다고 믿고 있다.
작가는 1906년 청계천의 영혼결혼식과 2008년 금융위기,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과 당시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을 소환하며, 21세기 서울 옥인동 그랑호텔로 이어지는 120년의 시공간을 무대 삼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설 속에 '그랑호텔'은 서촌에 있는 친일파가 지었다는 옛 벽수산장이다. 친일파와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우리 시대의 기득권 주류인 5670세대다.
이들은 현직 또는 은퇴자로 살며, 사회를 움직이는 주류로서, 조언자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엘리트라 불리는 전문직 종사자들과 고위 공무원, 부자 그리고 지식인들은 자기네끼리 서클을 이루고 우정과 동지애로 뭉쳐 더 많은 소유를 갈망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으로 사회가 유지되기를 희망하며, 학연·지연·혈연이라는 연좌제를 통해 계승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아가 자신들이 쌓은 물질적 부를 내세로 가져갔으면 하는 욕구도 강하다. 그 욕망의 성취를 위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이들이 바로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다.
자신들이 이룬 물질적 풍요를 내세로 가져가기를 꿈꾼다는 소설의 설정은 다분히 허구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팩트에 가깝게 느껴진다.
작가는 "우리의 욕망이 어떤 역사를 써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욕망에 대한 도덕성과 윤리를 '양심의 힘'으로 묻고 싶었다"며 "욕망으로부터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하자는 것이 이 소설의 궁극적 주제"라고 전한다.
그리고, 많은 MZ세대가 소설을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고민해야 하고, 무엇에 분노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저항해 바꿀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는 "나의 고민의 부조리에서 왔다. 삶은 어차피 부조리와 다퉈야 하는 고단함의 연속이고, 인간의 가장 큰 결핍은 언제나 사랑이 아닌가"라고 자문하며, 인간의 존재마저 물질화되는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의 대안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이 소설은 창간 50주년 창비 장편소설상 본심에 올랐던 작품으로 10년에 걸친 개작 끝에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로 독자와 만나게 됐다.
송복남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시사주간지와 월간지에서 오랫동안 기자 일을 했다. 시사월간 '피플'의 발행인 겸 편집장을 지냈다. '김민'이란 필명으로 2016년 '현대시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국도' 등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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