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자치도 남원시가 옛 남원역사(驛舍)와 플랫폼, 철로 등을 철거하기로 한 가운데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제의 만행 현장은 보존돼야 한다’며 철거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현재의 복원은 남원시가 주장하는 통일신라시대의 ‘격자형 성곽’과는 다르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축성 복원이 아닌,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현대를 아우르는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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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는 최근 ‘만인공원’ 조성부지에 포함된 남원읍성과 북문 복원예정지 등의 매장유물 발굴조사를 위해 옛 남원역사와 플랫폼, 철로 등을 철거할 방침이다.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남원읍성과 북문 복원 시 시가지로부터의 접근성과 시야를 가로막는 요인을 제거해야 하는 점도 고려됐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수년째 이곳 주변 문화재 시·발굴조사 과정에서 북쪽 성벽의 해자와 양마장, 격자형 도로체계를 확인할 수 있는 도로 유구, 건물지, 토기 등이 발견된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유물들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것들로 학계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현지 조사 결과, ‘만인공원’ 조성을 위해서는 △남원읍성 역사의 골격인 격자형태의 축을 고려해야 하고 △발굴조사·역사적 중요 유적의 요소를 고려한 정비 및 동선계획 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남원시는 이 같은 의견을 받아들여 역사 주변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 외에 역사 지하부도 정밀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역사 구조물과 플렛폼, 철로 등을 철거할 예정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남원성을 ‘격자형 성곽’이라는 개념 하나로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조선시대의 성을 복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즉, ‘격자형 성곽’은 바둑판 형식의 당나라 도시계획형 성곽으로,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뒤 당나라 군인들이 점령할 당시 처음 쌓았던 ‘유인궤성’이 시초라고 했다. 통일신라 초기 685년(신문왕5) 남원소경이 설치되면서 남원성이 축조됐다는 기록이 있다고도 소개했다.
이들은 "현재의 남원성은 1477년 성종 8년 축성을 시작해 성종 23년 완성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며 "따라서 현재의 남원성은 조선 성종때 축성된 것으로, 성 북문과 북쪽 성벽에 대한 복원은 통일신라시대 격자형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조선시대의 형태만이 아닌 조선시대와 일제감정기, 현대를 아우르도록 복원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또 본래 남원성은 정유재란 당시 전투의 격전지로 선조들의 피가 스민 곳인데, 일제는 (보복 차원에서)남원성 전투의 흔적을 없앤 뒤, 1931년 남원역과 플랫폼 등을 세워 ‘역사 지우기’를 시도했다고 강조했다.
회원들은 "만인정신을 짓밟은 참혹한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남원역과 플랫폼, 철로 등은 남원성 전투의 유물이자 유적이다"며 "이곳 구조물을 철거하는 것은 일제의 만행을 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역사를 특정 시대에 한정시키면 역사성이 끊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남원시는 옛 역사가 충분한 역사성을 가진 만큼 기록화를 통해 만인공원에 녹여낼 계획이고, 철로도 발굴조사 완료 후 일부 재설치해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공원 시설로 조성할 방침이다.
한편 옛 남원역사는 조선총독부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남원읍성 북문과 북 성벽을 헐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격자형 도로체계와 어긋나도록 45도 정도 사선으로 건축됐다는 게 그동안의 평가였다.
이후 1933년 전라선 철도개통과 함께 6․25전쟁으로 소실된 이후 2차례의 신축을 통해 1986년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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