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 입국장에서 생후 15일된 한국 여권을 가진 영아가 발견됐다. 아이를 동반한 여성은 미국 여권을 가진 아시아계 여성. 입국 심사 직원이 이 여성에게 부모나 보호자를 묻자 이 여성은 한국에서 태어난 이 아이를 자신이 입양해서 키우기 위해 데려왔다고 답했다.
<국민을 버리는 나라 : 한 편의 르포와 그에 얽힌 역사> (이경은 지음, 글항아리 펴냄). 지난 2012년 봄, 한국과 미국이 발칵 뒤집혔던 SK(가명) 불법 입양 사건을 담당했던 보건복지부 아동복지과장 출신인 저자가 10여년 만에 이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이미 첫째 딸을 몇년전 한국의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했던 이 여성(루셀, 가명)은 45세 이상은 입양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를 통해 소개를 받아 SK를 입양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 한국 로펌에 있는 미국 변호사를 통해 자문을 구했고, 루셀은 이 일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시카고 공항 입국심사대에 서기 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왜? 한국에서 출국할 땐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으니까.
왜? 한국은 그 당시에만 해도 매년 1000명이 넘는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냈으니까.
왜? 루셀 본인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이었으니까!
이런 충격적인 사실은 SK를 다시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지난한 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
루셀은 법정에서 "당신의 행동이 아이가 태어난 가정과 그 나라에서 자라날 기회를 너무 성급하게 제거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압니다. SK에게 저와 미국에서 살아갈 삶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을요. 제 삶이 그 증거입니다. 저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그간 누려왔던 삶의 기회는 없었을 겁니다. 제 딸 세라도 한국에서 입양했습니다. 제가 입양 보내졌던 그 기관을 통해서입니다. 한국은 그렇게 수십년간 변함없이 자기 나라 아이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게 그 나라의 정책이었습니다. 한국은 SK와 같이 소중한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꼭 지켜야만 합니다."
당시 아동복지과장이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으로 일했고, 국제법을 공부한 저자가 아니었다면 SK는 아마 루셀의 주장대로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살았을 지도 모른다. SK를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한 미국 내 재판과 관련해 외교부, 법무부와 상의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외교부 담당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는 불법행위에 연루된 국민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국민을 버리는 나라'라는 과격한 제목은 SK의 불법 입양 사건에 대한 르포를 읽다보면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외로 내보낸 아동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지난 70년간 20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된다. 해외입양은 지금도 중단되지 않았다.
저자는 한국의 해외입양을 연구하는 국제법 연구자가 됐다. "법제는 공기"와 같기 때문에 우리는 "국민을 버리는" 한국의 해외입양법제 문제를 절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억력이 아니라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이 현 해외입양 시스템을 만든 국가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 책임 규명, 피해자 보상, 입양인들의 알권리 보장과 같은 '바로잡기' 등 지난 70년간 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할 일은 너무 많다.
"입양인들 뿐아니라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과 앞으로 살 사람들을 위해 한국은 회복되어야 한다. 아이를 버리는 나라, 아이를 파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오는 사람을 지키는 나라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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