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는 사람들이 살 곳이 아니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지구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가자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는 말은 팔레스타인들의 삶을 지원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take over)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점령, 미국의 제국주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가자지구에 15개월 동안 쏟아진 이스라엘의 폭격과 집단학살로 망가진 팔레스타인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발언은 중동 평화안에서 제안했던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설립 방안으로 제시된 두 국가 해법과 배치된다. 그는 전쟁 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네타냐후 총리에게 폭격으로 집과 학교, 병원, 거리를 파괴한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이스라엘의 입맛에도 맞고 미국에도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국제법 상 집단학살에 해당하는 강제이주 공개 선언
트럼프는 '가자 점령'과 '강제 이주' 발언으로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령해 자본을 투여해 건물을 짓고 상품을 팔 수 있는 방식으로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할 황금시장을 만들고픈 욕망을 드러냈다. 부동산 재벌답게 네타냐후를 만나기 전에도 "난 그들이, 좋고 새로우며 아름다운 부지(piece of land)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가자지구 주민의 이주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발언들은 작년 트럼프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가자지구의 해안가 부동산이 매우 가치 있는 자산이 될 거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국제법이든 팔레스타인의 삶이든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이기에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과 분노에 떨게 한다.
트럼프의 강제 이주 발상은 국제인권법에서 규정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에 해당한다, 제네바협약 제49조에는 "피보호자들을 점령지역으로부터 점령국의 영역 또는 피점령 여부를 불문하고 타국의 영역으로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강제 이송 또는 추방하는 것은 그 이유의 여하를 불문하고 금지된다"고 명시돼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규정의 집단살해죄에도 강제이주가 명시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국제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반하는 발언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선언하니 유엔 사무총장도 한마디를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트럼프의 발언 다음 날인 5일 <팔레스타인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행사 위원회> 개막 연설에서 "어떤 형태의 인종청소도 방지하는 게 필수적"이라며 트럼프의 발언을 지적했다.
트럼프식 제국주의와 극우정치
트럼프가 속한 미국 공화당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혹자는 이런 강제 이주와 미국의 가자지구 점령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고 이후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발언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망언이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국제법이나 팔레스타인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이기에 사람들은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문제적이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 이주하겠다는 발상과 발언은 매우 제국주의적이고 반인도적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은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이 완전한 휴전협정을 이행할지 예단하기 어려운 시국에 트럼프의 발언은 이스라엘의 정착식민주의를 강화하고 불법 점령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부추긴다. 그는 네탸나후와의 회담 하루 전날 미 의회에 이스라엘에 합산 10억 달러 상당의 폭탄과 불도저 판매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는 휴전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 인종혐오와 폭력을 확산시킬 수 있다. 라스무센이 <후기자본주의의 파시즘>에서 언급했듯이, 인종차별적 치안유지는 미국 정착민 식민제국주의 핵심 원칙이다. 실제 그는 자국의 실정법이나 국제법에 아랑곳하지 않는 행정명령을 내기도 하고, 지지자들에게 국회의사당 공격을 선동하기도 했다.
극우 정치는 SNS를 이용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선동을 하며, 기존 인권 기준을 파괴해왔다. 후기자본주의의 파시즘은 트럼프 같은 정치인만이 아니라 문화, 일상생활, 온라인의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극우세력들은 자신들의 궤변을 힘을 통해 관철시키려고 폭력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극우정치는 신자유주의의 파산, 자본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모순의 결과다. 혼란과 파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려는 것이 파시즘이다. 트럼프는 자국(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주민혐오와 성소수자혐오, 여성 혐오를 서슴치 않아 왔다.
신자유주의는 정치를 시민들의 삶이 아니라 기업의 사업확장을 위한 관료통치로 전락시켰다. 그렇게 신자유주의가 비워버린 정치를 대중혐오문화가 대체하고 있다. 극우정치인들이 혐오를 부추기고 폭력을 선동한다. 2020년 당시 누가 트럼프의 부정선거 선동을 듣고 극우집단이 몰려가 연방의회의사당에 난입해 파괴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비상식적 주장이지만 현실화됐다.
한국에서도 평화시인 대한민국에 누가 위헌적인 비상계엄령을 현직 대통령이 내리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음모론이라고 여겼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과 포고령을 선포했다.
트럼프의 팔레스타인 강제이주 발언은 마치 15세기부터 시작된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을 인종청소하고 강제이주시킨 역사와 닮아있다. 1492년 유럽 제국주의의 일원인 스페인의 배를 타고 온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선언한 후에 그곳에 유럽인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원주민을 집단학살했던 제국주의의 역사를 반복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이전의 미국이 제국주의가 아니었다는 말은 아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며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지원한 대통령이다. 브라운대학교의 전쟁비용 프로젝트 분석에 따르면, 가자지구 학살 1년간 미국이 무기 판매, 군사 자금 조달, 긴급 지출, 무기 이전 등으로 군사 지원한 액수는 179억 달러(약 24조3700억)가 넘는다. 휴전 직전인 작년 11월엔 이스라엘에 6억 8천만 달러(약 9천484억 원) 상당의 무기 판매를 결정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때도 유엔인권이사회나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 휴전 결의안 등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관련 안건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하거나 기권을 했다.
미국이 군대를 동원해 주민들을 통째로 강제이주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트럼프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의 지상군 투입의 실패 경험은 모두가 알고 있다.그러나 '해안휴양도시'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공모할지, 인종청소를 어떤 방식으로 재개할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하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향한 지속적인 팔레스타인 연대가 필요
그러하기에 팔레스타인해방을 향한 우리의 연대를 멈출 수 없다. 지금도 232개 시민사회가 모인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은 격주로 이스라엘 대사관 근처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 검문소가 개방된 1월 27일 2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가자로 귀향하는 행렬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들은 집도 가게도 병원도 무너졌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돌아가는 그들의 마음에 새긴 회환을 감히 헤아리지 못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폭력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인간 존엄의 힘을 느낀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15개월 동안 폭탄과 미사일을 쏟아부었지만, 존엄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전 세계 시민들이 팔레스타인의 존엄을 짓밟도록 놔두지 않았다.
트럼프의 저 터무니없는 인종청소 계획이 화가 나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2차 대전의 폐허 위에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던 것처럼, 가자지구 집단학살의 폐허 위에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선언할 날이 멀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그만큼 팔레스타인의 해방에 대한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윤 석열 퇴진광장에서 휘날리는 팔레스타인깃발이 그 희망의 증거라 믿어본다.
나아가 트럼프의 헛소리를 잠재우도록 우리가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 지원을 하면 좋겠다. 미국 자본이 건설할 호화휴양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모금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음식을 사먹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본의 이윤을 챙기는 건설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지원이 필요하다. 마침 2월 말까지 팔레스타인에 직접 지원하는 기금모금이 진행 중이다. 시민들의 연대로 가자지구에 남은 불발탄을 제거하고 집을 지을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그렇게 저항과 연대의 희망을 함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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