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주모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4차 변론기일까지 진행된 가운데,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헌재의 공정성에 대해 잇달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탄핵심판 결과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혹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주진우 의원은 설날인 29일 SNS에 쓴 글에서 "헌재 구성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이 공정하다고 믿지 않는 순간 헌법재판소는 바로 존재가치를 잃는다"며 "재판관 9인 체제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마은혁 대신 여야 합의 후보를 새로 임명해야 맞다"고 주장했다.
작년 11월 추경호 원내대표 시절 국민의힘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합의한 결과를 이제 와서 원점 재논의하자는 얘기다. 주 의원은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은 여당이 1명, 야당이 1명, 여야 합의로 1명을 추천해 왔다", "민주당이 정계선·마은혁 2명을 일방 추천한 것부터 헌법체계를 깨뜨린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주 의원은 "헌재가 '마은혁 셀프 임명'을 결정할 경우 벌어질 끔찍한 일들"이라며 "문재인·김명수·이재명이 지명한 재판관이 총 6명이 된다. 6명의 재판관은 대통령 탄핵을 3월 전에 서둘러 인용하려 할 것이고(중략), 그 과정에서 6명의 절대 우위를 내세워 대통령의 절차적 방어권은 철저히 무시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이 글에서 "탄핵·위헌 등 헌재의 주요 결정은 6명 찬성이면 인용된다. 6명만 뭉쳐 다녀도 못할 일이 없다. 앞으로 여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 대통령, 국회 몫 재판관 6명은 같은 편이 돼버린다. 나아가 대법원장마저 ‘김명수식 코드인사’를 할 경우 9명 전원이 특정 정치성향을 띨 수 있다. 민주당의 위헌적인 폭주가 헌재를 초법적 기관으로 오염시키지 않을까?"라고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맥상 차기 대선 이후 민주당이 여당이 된 상황을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주 의원은 전날도 "헌법재판관의 편향성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문형배 재판관은 이재명·정성호 의원과 가깝고, 우리법연구회 중 가장 왼쪽에 있다는 커밍아웃을 했다"거나 "이미선 재판관의 친동생 이상희 변호사는 (민변의)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다. 명절에 만나거나 대화를 통해 예단이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계선 재판관 남편이 국회 탄핵소추대리인단 김이수 변호사(전 헌법재판관)가 이사장으로 있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근무 중이라는 이유로 정 재판관이 사건을 회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앞서 헌재는 윤 대통령 측이 같은 이유로 정 재판관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을 당시 정 재판관 본인을 제외한 재판관 7인 만장일치로 이를 기각한 바 있다. 주 의원 등이 문제 삼은 6인뿐만이 아니라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을 포함한 만장일치 결정이었다.
헌재는 기각 결정문에서 "신청인이 문제삼는 것은 재판관과 본안사건 청구인의 관계가 아닌, 재판관 배우자와 청구인 대리인 중 1인의 관계"라며 "(이 역시) 친족관계 등이 아니고 재단법인 이사장과 재단법인 소속 근로자 내지 구성원의 관계에 불과한 바,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또 헌재는 "신청인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판관 임명 절차를 문제삼거나 재판관이 법원 내 특정 연구모임 출신이고 신청인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같은 연구모임 출신이라는 것을 기피신청의 이유로 들고 있으나 이 역시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정 재판관에 대한 결정이기는 하나, 주 의원이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에 대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주 의원은 그럼에도 28일 글에서 "문형배·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은 이 정도면 본인 스스로 사건을 회피해야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딱 한번 재판하고, 한 달 만에 결정한다. 헌정 사상 초유의 초고속 결정이다. 답을 이미 정했다는 뜻"이라며 "마은혁 재판관까지 임명된다면, 법원 내 극소수만 회원인 우리법·인권법연구회 출신이 문형배·이미선·정계선·마은혁 등 4명이 된다. 헌재가 특정성향 연구회 소속이 4명이나 됐던 적은 없다. 마은혁까지 임명된다면 탄핵 재판을 더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까지 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도 같은날 SNS에 올린 글에서 문 재판관이 "UN군을 모독"했다고 주장하며 이념 문제를 제기했다. 박 의원은 문 재판관이 부산 유엔공원 방문 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17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출신 병사를 비롯한 16개국 출신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좋은 전쟁이란 낭만적 생각에 불과하다'는 인류의 보편적 깨달음을 몰랐을까?"라고 쓴 대목을 문제삼았다.
문 재판관의 글은 유엔군의 숭고한 참전 의지를 기리고 통일전쟁을 표방한 한국전을 일으킨 북한을 비판한 취지로 보이는데, 박 의원은 이 글에서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이 '유엔군 참전용사'를 뜻한다고 해석하며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모독을 사과하라", "헌재 재판관에서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특히 '17세 병사를 비롯한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을까'라는 비탄을 표현한 대목에 대해 "참전용사들이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왔는지 정말로 모르는 것인가?", "가만 있었으면 평화롭게 공산화돼 있을텐데 왜 왔냐고 비난하는 것인가?"라는 풀이를 내놓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문 재판관의 이 글은 북한이 주장하는 소위 '북침론'과 궤를 같이한다"며 "우리가 통일을 위해 북침을 하고 그것을 돕기 위해 유엔군이 참전했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박 의원은 또 문 재판관이 "묘역을 떠나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는 '평화'였다"고 쓴 대목을 문제삼아 "북한이 남침을 했는데 평화를 위해 아무런 저항도 반격도 하지말고 바로 항복함으로써 평화를 지켰어야 한다고 믿는가?"라고 하기도 했다. 평화에 대한 희구란 곧 전쟁을 먼저 일으킨 북한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과 박 의원의 해석은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같은 공세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중반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나왔다. 헌재는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작년 12월 14일부터 설날 현재까지 변론준비기일을 2회, 변론기일을 4회 열었다. 추후 변론기일은 2월 4·6·11·13일 등 4차례가 더 지정돼 있다.
앞서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은 총 7차 변론기일까지 진행된 후 선고가 이뤄졌고,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17차까지 변론이 진행됐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 자체의 구조가 복잡하고 관련 증인·증거가 많아 변론기일이 많았던 사정이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앞서 '헌재 때리기'를 시도해 왔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1.19 서부지법 폭동사태 이틀 후인 지난 21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재판관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과거 연수원 시절 동기로서 노동법학회를 함께 하며 호형호제하는 매우 가까운 사이"라며 "이재명 대표 절친이라면 탄핵심판을 다룰 자격이 과연 있겠나",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으면 탄핵심판의 공정성이 확보될 수 없다"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6일에도 나경원·박대출 의원 등과 함께 헌재를 항의방문하고는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해 지극히 편향적이고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진행을 한다"며 "헌재가 얼마나 편파적 운영을 하는지, 대통령 탄핵소추가 되니까 (이를) 다른 사건에 우선해 심리하겠다고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하기도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26일 마은혁 후보자 임명 관련 권한쟁의심판을 앞두고 낸 입장문에서 "헌재 흠집내기가 도를 넘고 있다"며 "사법의 최후 보루인 법원과 헌재를 흔드는 방식, 이념적 잣대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우 의장은 "헌정질서를 복구해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며 "각자의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와 선이 있다. 헌재를 흔들고, 헌법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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