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또 한 번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사건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분노한 군중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른 '1.19 법원 폭동'이다. 국가기관을 공격하는 무도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등장했을까. 한국사회는 이 극단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란의 밤'에서 '폭동의 밤'까지 불과 한 달 반 사이 일어난 헌정사 초유의 사건들에 대한 사회학자 세 명의 견해를 들어봤다.
첫 번째 인터뷰에 응한 미디어사회학자인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군인이 국회에 침입해 유리창을 때려부수는 모습"이 생중계되고, 그 뒤 "윤석열 일당"이 이를 옹호하고 나선 것이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 "신호"를 줬다고 진단했다.
대통령과 같은 중요한 공인이 그런 신호를 줌으로써 "아슬아슬하게 묶여 있던 고삐"가 풀려버리고, "폭력과 광기"가 나타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박 사회비평가는 이번 폭동을 세대나 젠더 특성만으로 해석하려 드는 관점에 우려를 표했다. 세대론으로 볼 때 2030은 상대적으로 동질성이 떨어지는 데다 2030 남성에서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극우화된 2030 남성 일부가 온라인에서 과대대표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사회비평가는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 역시 이번 사태의 한 배경이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폭동이라는 극단적 행동의 원인을 짚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여러 측면에서 보다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자유주의 세력의 위선에 대한 불만, 가난에 대한 불만, 가난에 의해 멸시받는다는 불만, 미래가 없다는 불만" 등이 쌓여가는 세계적인 동시에 한국적인 흐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 사회비평가는 향후 대응 방안과 관련해서는 더는 "절대악을 상정하는 선악 이분법"이나 "합리적 이성을 통한 계몽"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 같다며 "공감이나 돌보는 마음" 같은 좋은 감정을 어떻게 하면 "이성으로 나아가는 길"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래는 1.19 사태 발생 이틀 뒤인 지난 21일 전화로 진행한 박 사회비평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윤석열과 그 일당이 신호를 줬다"
프레시안 : 지난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불만을 품은 군중이 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는 일이 일어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박권일 : 그 사람들의 심리를 넘겨짚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본인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구현되지 못했다고 느낀 것 같다. 법원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고,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부정선거 음모론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고, 이재명 대표는 구속하지 않으면서 윤석열은 유치장에 넣고 하는 등 본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불만이 폭발하면서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나 싶다.
폭력이 갑자기 돌출했다기보다는 일종의 전조증상도 있었던 것 같다. 기존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 사이에서도 욕설이나 위협, 협박 같은 것이 있었고, 기사화도 많이 됐다.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군대가 국회에 침입해 유리창을 때려 부수는 모습이 생중계됐는 점이다. 그런 폭력적 행위가 날 것으로 보여진 것이 일종의 트리거(trigger)처럼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윤석열과 그 일당이 시그널(signal)을 줬다. 물론 '법원에 쳐들어가라. 때려 부숴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부추긴 사람들이 분명히 윤석열 일당이고, 국민의힘에 있는 몇몇 의원, 예를 들면 윤상현 의원 같은 사람도 폭력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현행범으로 체포된 90명 중 20~30대가 절반이고, 기록된 영상에 비춰보면 남성이 다수로 보인다. 2030 남성의 여론이 표출됐다고 볼 수 있을까.
박권일 : 세대론으로 보면, 2030 세대가 상대적으로 동질성이 떨어진다. 생애주기상 경험 차이가 큰 시기이기 때문이다. 경험이 다르면 생각도 행동도 달라진다. 특히 2030 남성이 2030 여성에 비해 비해 상대적으로 동질성이 떨어진다.
이런 특징은 있다. 전에는 2030 세대를 보통 진보적인 세대라고 이야기했는데 최근에는 좀 다르다. 전세계적으로도 2030 여성과 2030 남성 사이에 이념적 차이가 많이 나타난다. 한국이 좀 특별하게 극단화돼 나타나는 것 같기는 하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2030 남성 전체가 극우화되고 2030 여성 전체가 좌경화, 진보화됐다기보다는 극우화된 남성 일부가 온라인에서 과대대표되는 면이 있다. 과거 일베에서 열심히 활동했다거나, 세월호 폭식 투쟁에 참가했다거나 하는 극단화된 집단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반페미니즘이나 메갈 손가락 음모론을 주도하는 소수의 청년 남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2030 남성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비율로는 10~20% 정도라고 본다. 2030 남성 전체가 다 그렇다기 보다 그 중에 극단화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활동하다 오프라인에 모여 자기들끼리 뭔가 담론을 나누고 행동하고 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썼던 것 아닌가 싶다.
"가난·멸시·자유주의 세력의 위선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다"
프레시안 : 법원 폭동의 배경에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가 기능한 면도 있을까?
박권일 : 일정 정도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반향실 효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 정보 여과) 현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본인이 원하는 정보만 계속 보고 반대되는 증거나 정보를 보지 않는 방식으로 확증편향을 강화하다 보면 자기가 하는 생각이 진리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이다 보면, 확증편향은 더 강화된다.
이 현상은 2030 남성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유튜브에 중독된 노년층이 더 심할 것 같다. 윤석열 내란 세력도 마찬가지고…. 2030 남성은 상대적으로 정보화에 익숙하고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도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 데 대해서는 필터 버블 현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더 총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인터넷의 특성이나 세대나 젠더 등 일부 측면만으로 이번 폭동을 봐서는 안 된다. 예컨대 2030 남성이 극단화된 폭력을 보인 데에 남성성의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극우세력의 전면화, 상수화'라고 표현하는, 세계적인 극우화의 흐름 속에서 볼 수도 있다. 그 면에서 한국이 나쁜 쪽으로도 최첨단의 사회다. 이런 흐름까지 고려해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
프레시안 : 세계적인 극우화 현상에 대해 불평등 심화와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해석이 많다. 이번 폭동에 그런 요인이 작용한 면은 없을까?
박권일 : 그런 면도 있겠지만, 이번 폭동과 관련해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많은 학자가 극우 정치의 세계적 확산이 분배에서의 불만, 인정에서의 불만, 이런 양쪽의 불만에서 일어난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나는 '가난'해지면서, 또 '멸시'당하면서 생기는 어떤 울분으로 표현했다. 그런 두 가지 차원의 배제와 차별이 불만으로 쌓이고 있다.
정치는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자유주의 정치세력, 미국 민주당이나 한국 더불어민주당 같은 세력이 겉으로는 불평등 해소를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악화하고 있다. 그들의 위선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조국 사태가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조국이라는 사람이 트위터에서는 진보적이고 옳은 이야기를 다 했는데, 실제 자녀교육과 관련해서는 편법과 불법을 저질렀음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런 일을 보면서 진보 진영을 향한 증오와 반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실 자유주의 세력이지만, 일단 이들을 좌파나 진보라고 부르니까.
자유주의 세력의 위선에 대한 불만, 가난에 대한 불만, 가난에 의해 멸시받는다는 불만, 미래가 없다는 불만, 이런 것들이 겹쳐서 점점 폭력성이 강해지고 있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일거에 정리할 수 있는 독재자를 요청하는 식으로 표현되거나 더 극단적으로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리셋하고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식의 열망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극우 발흥과 관련해 한국적 특성이 있을까?
박권일 : 완전히 다른 한국만의 특징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미국과 비슷한 것 같다. 제3의 대안세력이 없는 양당제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극단적 행동의 근거가 된다. '네가 더 잘못했잖아'라는 핑계, 상대의 잘못이 유일한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진영논리화된 정치가 심하다. 미국도 이를 두고 '부족주의 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한데 한국은 한술 더 뜨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토대가 사라진 느낌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갖고 있던 사회적으로 이 정도는 지켜야 되지 않냐는 합의, 그게 법적으로는 헌법이라는 규범으로 표현되는데, 헌법 자체를 대통령이 완전히 깨부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대통령이 그런 걸 보여주니 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래도 되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통령 같은 중요한 공인이 얼마나 중요한 시그널을 주는 사람인데…. 아슬아슬하게 묶여 있던 고삐가 내란을 통해 풀린 느낌이다. 겨우 묶인 고삐가 풀리면서 폭력과 광기도 나타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계몽 이후의 시대, 좋은 감정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지 고민"
프레시안 : 이같은 극단의 상황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권일 : 바꾸기 힘드니까 전세계가 난리일 거다. 트럼프가 취임하는 걸 보니까 진짜 진짜 끔찍하고, 이게 나라가, 지구가 어떻게 될지 정말 걱정이 앞섰다. 나야 잘 살았으니까 그렇다 치는데, 나보다 어린 세대,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 정말 앞이 깜깜한 지경이다. 계속해서 극우적 에너지를 면밀히 주시하고 분석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른바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기존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절대악을 놓고 우리는 선이니까 저들과 싸워 이겨야 된다는 선악 이분법적인 싸움의 방식, 아니면 저들을 합리적 이성을 통해 설득하고 계몽해야 한다는 방식 같은 것들이 유효하지 않아졌다.
나는 오늘날을 '계몽 이후의 시대'라고 말하곤 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계몽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라는 이야기를 많은 사상가가 해왔다. 슬라보예 지젝은 '냉소적 주체'를 이야기하고, 라클라우 무페는 '좌파적 포퓰리즘'을 이야기하며 좌파도 포퓰리즘에 관심을 갖고 대중 동원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이 점점 더 탈진실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반지성주의화되고, 더는 지식을 희구하지 않게 됐다. 합리성으로 서로를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우리가 서로 어떤 방식으로 설득하고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또 전략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프레시안 : 어떤 식의 새로운 소통과 설득이 가능할까.
박권일 : 최근에는 감정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있다(☞관련논문 : <이모티브 뉴스(Emotive News) : 저널리즘의 오래된 미래>). 어떻게 하면 감정을 이성으로 나아가는 길, 혹은 이성적 설득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좋은 감정, 능동적인 감정이라고 이야기하는, 공감이나 돌보는 마음 같은 감정으로 타인을 설득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과거처럼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을 통해 사회적 지향을 내세우는 것은 힘들어진 것 같다.
옳고 그름을 통해 사람을 설득하기보다 아픈 사람들이 서로 돌보는 모습, 이를 통해 공감을 확산하는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응원봉을 들고 탄핵을 이야기하던 젊은 여성들이 남태령에서 생전 처음 보는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에 합류해 같이 이야기를 나눈 것이 중요한 경험라고 생각한다.
그런 방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고, 이어지고, 네트워킹(networking)하는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혐오나 극우나 탈진실 현상을 방어할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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