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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천사주의'라는 잘못된 매뉴얼…아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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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천사주의'라는 잘못된 매뉴얼…아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자유주의 교육론 비판] ⑤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아이를 망치는 '동심천사주의'

서이초의 교사가 돌아가신 후 모든 교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교사들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고통이 무엇인지 알았다. 해체된 교실, 무너진 교권 속에 살아가던 교사들은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 더는 죽을 수 없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교사 자살률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지난 6년간(2016~2021) 재직 중 자살로 사망한 교사는 76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사망자(687명)의 11%를 차지했다. 이것은 일반인 자살률 4.2%의 2배가 넘는다('2016∼2021년 재직 중 사망한 교사 현황 자료' - 교육부 국회제출자료).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는 시는 서이초 교사의 죽음 직후 쓰여졌다. 이 시는 서이초 교사의 죽음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 동심천사주의

김선

동심은 천사라는 믿음을 지켜야한다

파탄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교실을 지배하더라도

아이들은 본질적으로 꽃이다

장미 가시를 탓하지 말라

교사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부모마저 점령한 아이들에게도

교사는 무한히 인내하고 희생해야 한다

교사라면 최후의 순간까지 아이들이 천사라는 믿음을 저버리면 안된다

한 마리의 늑대를 위해 백 마리의 양을 희생한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모두 양들이다

아이들은 모두가 양이고

나는 늑대지기가 아니어야 한다

늑대들은 양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식대로 어울려 사는 것이다

폭력 아니고 장난이고

분노가 아니고 분노조절이 안된 것이다

무지는 죄가 아니다

시에서는 우리 사회를 질병처럼 장악하고 있는 교육계의 헛된 망상과 신화를 비판하고 있다.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큰 병은 바로 '동심천사주의'이다.

동심천사주의: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가르칠 줄 모르는 어른이 있을 뿐

자유주의 교육개혁론자들은 교육과정, 수업 방법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변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그 주장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아이들에게 공감하고 경청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된다.', '아이들의 문화를 비난하지 말고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의 모습을 비난하지 말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떤 시각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심천사주의'다 . '동심천사주의'는 모든 아이들은 특별하고, 완전하며, 그 안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역할이란 그저 아이들의 본래의 착한 마음이 드러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 역시 취임 초기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단지 가르칠 줄 모르는 어른이 있을 뿐이다" 라는 중국 동화작가의 말을 인용했다. 사고뭉치 불량 학생을 선도하는 데 성공한 한 고등학교의 사례를 칭찬하면서 한 말이다.

겉으로 센 척하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고, 못되게 행동하는 아이들도 사실 그 안에 선한 마음이 숨어 있으며 그걸 부모나 교사들이 끄집어 내주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이렇게 표현된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나쁜 양육이 있을 뿐' 또는 이렇게도 표현된다.

'모든 아이들은 특별하다.'

이것을 학교 현장에 적용해 보자면,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그 아이에게 맞는 특별한 교육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 된다. 이런 일반적인 믿음은 너무도 강력해서 모든 교사에게 바이블처럼, 기계적 매뉴얼처럼 들어와 있다. 모든 아이는 특별하고, 그 마음속에 무한한 동심과 착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은 아무리 나쁜 짓을 일삼는 아이라도 그 아이의 착한 마음을 믿고 그 아이에게 맞는 특별한 교육법을 찾을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과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동심천사주의를 강요한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사상을 이어 받아, 소파 방정환은 '동심여선(童心如仙)' 풀이하면 '천사동심주의'라는 사상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일제 식민지 치하 조선의 어린이들은 타락한 기성세대와 달리 민족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동량이 되어 줄 거라는 독립운동가 방정환의 신념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런데 현 시대 한국 사회에도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거나 '모든 아이는 우주만큼 특별하다'는 식의 어린이 칭송이 창궐한다. 이와 같은 '동심천사주의'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크게 두 가지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만족감과 행복감 등을 중시한 미국의 긍정심리학, 정책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으로 볼 수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대유행 중인 긍정심리학은 아이들의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봐라, 이미 저지른 잘못보다 앞으로 잘할 가능성을 격려하라고 제안한다. 동심천사주의의 내용적 바탕이 되는 긍정심리학이 '동심 천사'의 학생관을 형성했다고 했을 때,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교사가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나쁜 아이는 없다고 보는 좋은 교사의 원형을 교사들에게 강요했다.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교육은 서비스'라는 인식이 오늘날까지 퍼져있고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을의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사들은 학생들이 아무리 나쁜 잘못을 저질러도 아이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으며 끊임없이 장점을 찾아 격려하면 변화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사상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교사들은 교권 침해나 반성없는 가해 행동에 대해 사춘기니까, 가정에서 보호를 못 받았으니까, 분노조절이 힘든 아이니까, 사랑 받아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단지 순간 자존심이 상해서 또는 욱해서라며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습으로 '동심천사주의' 교육관을 실천했다. 그래서 학생이 횡포에 가까운 갑질을 해도 무한히 참아주고 견뎌내며 얼러주고 칭찬해주며 기분 안 상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렇게하면 내 앞에서는 그나마 말을 듣는 것 같으니까 조심조심 넘어가는 것이다. 결국 '동심천사주의'는 무책임한 갑의 횡포를 을이 무한히 인내해야 하는 불공정 계약이자 족쇄처럼 작용하고 있다.

나쁜 아이는 있다

우리는 이 말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정말 나쁜 아이는 없는가?

엄밀히 말하면 나쁜 전략을 쓰는 아이들이 있다. 나쁜 전략을 자꾸 쓰게 되면 나쁜 습관이 되고 나쁜 습관을 갖게 되면 나쁜 성격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에는 나쁜 아이가 있다. 폭력적인 아이, 이기적인 아이, 야비한 아이도 있고, 남의 고통에 관심 없는 무신경한 아이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정말 악마같이 다른 아이를 짓밟아 고통을 선사하고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뻔뻔스러운 아이도 있다.

그리고 착한 아이도 있다. 이 역시 착한 전략을 써서 인정을 받게 되면 착한 행동이 몸에 습(習)이 되고 결국 착한 성격이 점차 자라 사람의 정체성을 이룬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정의롭고, 용감하며, 세심하고, 이타적이다. 어떤 아이들은 보석처럼 빛나서 그 아이의 정의감, 솔선수범의 태도가 다른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아이도 있다.

결국 아이들은 다양하다. 이것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 같은 것이다. 나쁜 아이가 있다는 것은 부모도 알고 교사도 안다. 일례로 자기 아이가 도무지 통제가 안되어 부모가 스스로 아이를 우범소년으로 경찰에 신고해 보호시설로 보낸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왜 우리 아이만 학교에서 나쁘게 보느냐, 우리 아이는 특별한 아이'라며 학교를 뒤집어 놓던 사람들이었다.

인격이 파괴되고 도덕성이 미발달한 아이들이 있다

부산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은 잔인한 폭행을 SNS에 전시하고도 반성이 없었다.

장애학생을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몰아넣고 때리고, 영상으로 촬영한 아이들이 있었다. 평소에 어떤 문제도 없던 어린 아이들이었다. 같이 놀던 애가 부탁했다는 이유로 밤의 거리에서 처음보는 아이를 무차별로 폭행하고도 아무런 감정이 없던 여학생도 있었다. 무서워서 돈을 건네던 약한 아이에게 왜 준다던 돈을 안주냐며 위협하던 가해 학생은 자기가 갈취한게 아니라며 우겼다.

교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아이들을 본다. 요즘 아이들의 성격상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는 자기애와 마키아벨리즘이다. '나만 아니면 돼',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해' 라는 자기애적인 생각은 도덕성의 발달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 어떤 아이들은 작은 것도 참지 못하고 무차별 폭력과 잔인한 보복을 일삼는 '마키아벨리즘'으로 나아가고, 더욱 심각한 애들은 폭력, 착취, 거짓말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로 전락한다.

안타깝게도 학교 현장에는 양심이 파괴되고 도덕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다. 그 중 지능이 낮아서 상황을 이해를 못하는 아이도 있고 양상은 다양하다.

아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그러면 모든 아이는 우주만큼 특별한가? 그렇다기 보다 모든 아이들은 평범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악마같이 구는 아이도 착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고, 천사 같은 아이에게도 못된 구석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작은 일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하며 학폭, 교권침해를 일삼던 아이가 정작 자기 친구가 무기력증에 빠져 학교 그만 두려 하니 매일 등교할 때 친구를 챙기며 잔소리 하는 것을 보았다. 반면 공부 잘하고, 운동 잘 하고, 책임감, 정의감에 예의 바르고, 교권침해 학생들을 넌지시 제어하던, 모든 교사가 입에 마르게 칭송하던 그 학생은 정작 그 반에 약한 아이가 놀림받고, 따돌림 당할 때는 못 본 척 하거나 동참하거나 하는 걸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은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매우 다양하고 다만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

즉, 모든 아이들은 평범하다. 단지 교육 속에서 그 아이의 특별한 재능이 피어나는 것이다.

아이들이 발달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비고츠키는 근접발달영역이라 했다. 근접발달 영역, 즉 아이들의 잠재력은 반드시 아이들보다 더 나은 존재, 뛰어난 동료나 특히 어른, 즉 교사에 의해 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기계적으로 매뉴얼처럼 작동하고 있는 동심천사주의

그러나 동심천사주의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교사들의 매뉴얼처럼,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협박, 갈취를 당한 피해자가 학교에 신고를 했다. 여러 학교가 얽힌 일이고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서인지 정식 학폭 신고는 안 하고, 한 자리에 모여 사과 및 재발방지만 받고 싶다 하여 해당 학교의 교사, 부모, 학생들이 모두 모여 앉았다. 그런데 정작 협박, 갈취를 주도한 가해 남학생은 건들거리며 제가 어제부터 가출 상태라 돌려줄 돈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학생부장은 '동심천사주의'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 같아서는 그 돈 내가 내 주고 싶다' , '우리 아이들 알고 보면 다 착한데, 공부 때문에, 그리고 집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 같다', '우리 아이들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한다.

아이들을 타락시키는 동심천사주의

왜 어떤 아이들은 양심, 도덕성이 타락하고 마음이 굳어 버렸을까. 그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마다 '동심천사주의'라는 이 시대의 잘못된 매뉴얼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부모와 교사 모두에게 말이다. 중학교 정도만 되어도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많은 잘못들을 누적해서 저질렀지만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올라온 아이들이 정말 많다. 지독히도 말 안 듣는 아이 때문에 집에 연락을 하면, 부모가 '지금 우리 아이를 나쁘게 보는 거냐?' '네가 뭔데 우리 아이를 기분 나쁘게 하느냐?' 하고 나온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아이는 잘못된 게 아니라 특별한 아이다' 하는 매뉴얼이 작동하면, 동일한 매뉴얼이 교사들에게도 작동하므로 교사들은 부모들의 반발에 재반박을 하지 못한다.

'맞습니다. 그 아이가 나쁜 아이는 아니죠. 기분 나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우리가 그 아이를 위해서 교육을 하는 거지, 벌을 주려는 게 아니에요.'

이제 교사들의 훈육은 사라지고, 교사들은 부모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게 된다. 전세는 역전된다. 왜냐하면 잘못하다가 오히려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침해로 고소나 민원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격이 두려워진 교사들은 물러선다. 교사들은 오히려 그 아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교사들을 죽이는 동심천사주의

생활지도도 실패하고, 부모와의 상담도 실패한 교사들이 선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 아이의 마음 깊은 곳 묻혀 있는 특별함, 무한한 덕, 지고 지순한 심성이 피어나길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 기분은 어떠니? '

'오늘 기분이 안 좋으면 교실에 들어가지 말고 선생님하고 있을까? '

'기분이 안 좋으면 집에 가도 돼.'

'오늘 왜 그런 실수를 했니, 너 나쁜 애가 아니잖아.'

교사는 그 아이가 나쁜 아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기계적인 가면을 쓰고 그 아이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한다. 혹은 내가 불쌍해서라도 오늘은 사고를 덜 치겠지, 언젠가 내 정성을 알아주겠지 라는 실낱 같은 믿음으로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학생의 태도에 비위를 맞추며 하인 같은 신세로 살아간다. 왜 교사들이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가? 이 시대의 교사들은 자기 자신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나의 부질없는 노력이 언젠가 결실을 맺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믿음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러다 결국 교사의 마음도 굳는다. 겉으로는 거짓 웃음을 띈 채, 부모와 아이들을 악마로 바라본다. 반면 어떤 교사들은 아이들이 천사라는 그 믿음을 지키다가 결국 잘못된 것은 나라는 죄책감,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동심천사주의가 교사들을 타락시키고, 죽이고 있다.

교사를 살리는 해법, 동심천사주의에서 벗어나자

교사들의 잇따른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천사라는 믿음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당연히 아이들은 천사가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미화할 필요도 악마화 할 필요도 없이 단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을 심층 면접해야 하며,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루소든, 방정환의 아동관이든, 긍정심리학이든, 부모와 교사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오은영이든 그 본질이 무엇인지 살펴 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지 어떤 이론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거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교사들이 무턱대고 그 말을 따라가야 할 이유가 없다.

동심천사주의는 교사를 죽이고, 아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교사와 교실 속 약한 학생을 자신의 감정쓰레기통 쯤으로 여기는 학생들에게 착한 마음이 깨어나길 믿고 무한히 인내하라는 것은 그 아이를 망나니로 키우자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교육을 망치고 교실을 해체시키고 있는 질병 '동심천사주의'에서 벗어나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교사들은 무한한 자기 소모를 멈추고, 내가 동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라는 자괴감과 내가 인권침해 교사가 아닐까 하는 의혹,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지 아이들이라서 착한 것이 아니다. 도덕과 예의, 규범이 안정감있게 자리 잡혀 있었을 때 아이들은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쁜 아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조절하지 않는 그 전략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악이 선이 되기도 하는 시대,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은 학생중심도, 교사중심도, 매개중심도 아닌 세 가지 축이 모두 중심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달한다. 오직 한 가지의 중심으로 교육을 바라볼 때 그 교육은 절름발이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교육노동자로서의 교사들의 권리를 중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 시대 교사 노동의 핵심은 감정노동이다. 교사들의 극심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소모, 무기력, 우울 그리고 교사들의 죽음에 무엇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선과 악의 가치가 혼재된 시대이다. 악이 선으로 포장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가 해체되고, 사회규범이 약해지고 자신의 욕망대로,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 인권이 되는 시대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모든 벌이 아이들에게 수치심을 주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벌을 주지 말라는 우리나라 교육학자들의 극단적인 자유주의 역시 강하게 비판한다. 애초에 긍정심리학의 원산지인 미국조차 교육벌이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강력한 걸 보면 교육벌이 훈육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교칙,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법제화 하여 무너진 훈육부터 되살려야 한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 나쁘게 보지 마라 하는 학부모들의 속마음은 자기 자녀가 손해보기 싫다는 욕망 때문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익과 손해가 아닌 선과 악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그 욕망을 조절하도록 규범을 강화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예의를 키워내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평화적 공화주의 교육이라 부를 수 있다.

▲교실(자료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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