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태국 방콕 수완나품공항에서 무안국제공항으로 돌아오던 제주항공 운행 항공기가 동체착륙 중 활주로 끝에 세워진 콘크리트 벽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그로 인해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고, 항공기 동체는 꼬리 부분만 남기고 완파됐다.
"유언해야 하나", '택배 챙겨줄래' 등 희생자들이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에서 사고 현장에 널브러진 기내 가방과 태국여행 기념품까지. 이후 전해진 소식은 참사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 안타까움이 자원봉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 등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 무조건 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이틀째인 30일. 사고 수습과 관련한 정부당국의 브리핑이 이뤄지는 무안공항은 유족들의 생활공간이 됐다. 공항에 들어서면 먼저 1, 2층 대합실을 가득 메운 노란 쉘터가 보인다. 쉘터 앞에는 가족의 시신 수습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유족들의 신발이 놓여 있다. 평소 여행객들이 비행기를 기다리며 머무는 벤치도 유족들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공항을 가득 메운 1000명이 넘는 유족이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편의점 한 곳과 식당 두 곳, 카페 한 곳 뿐이다. 공항 밖으로 나가도 상점이나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무안공항에 각종 구호물품과 식량을 들고 달려온 봉사단이 채우고 있다.
식사를 만드는 곳 중 하나는 광주남구자원봉사센터다. 점심조, 저녁조로 나뉜 봉사자들이 유족이 먹을 400인분의 식사를 만든다. 밥과 국은 공항 인근에 세워둔 식당차에서 직접 만들고, 반찬인 해물동그랑땡, 제육볶음 등은 봉사자들이 센터 조리시설에서 만들어 들고 온다.
테이블을 차리고 라면과 음료, 빵, 커피 등 먹을 것은 물론 치솔세트 등 생필품을 올려놓고 유족에게 나눠주는 단체들도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바르게살기운동전남협의회, 전라남도자원봉사센터,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등이다.
자원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참사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뭐라도 할 일이 있을까 해 무안공항을 찾았다며, 유족들이 원하는 시신 수습 등 사후 대처가 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남구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자 최보인 씨(50)는 이번 참사가 "남일 같지 않았다"며 "가족이 놀러간 경우도 많았고, 저희가 광주에서 왔으니까 가까운 친척과 (피해자가) 연결된 분들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 "혹시라도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 해 왔다. 식사하기가 힘든 곳이라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례귀농귀촌회장으로 전라남도자원봉사센터 긴급 봉사단 활동을 하고 있는 문필자 씨(65)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해 무조건 왔다. 다른 이유가 없었다"며 "노란 쉘터가 가득한 공항에서 아프게 걸어가시는 분들을 볼 때 너무 안타까웠다. 유족들이 원하시는 바가 다 이뤄지시길 바란다"고 했다.
오길석 바르게살기운동전남협의회 부회장(62)은 "수해 현장 같은 곳은 자원봉사자들이 가면 복구되는 기미가 있었는데 이런 끔찍한 참사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는 치유가 안 된다"며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는 방법이 일단은 시신 수습뿐이라 빨리 이뤄졌으면 한다. 회사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향소 찾은 시민들 "고생만 하며 살다 외국 여행 한 번 가셨다는데…"
무안공항에서 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무안종합스포츠파크(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도 참사를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분향소 입구에서 하얀 장갑과 근조 리본을 받아 든 뒤 희생자 위패가 안치된 분향소에 흰 국화를 헌화하고 묵념했다. 분향소를 나서는 시민 중에는 눈물을 훔치는 이가 많았다. 이들 역시 참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빠른 사태 수습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전남 함평에서 온 홍종순 씨(67)는 "바쁘게 고생만 하며 살다 외국 여행 한 번 가셨다는데 돌아가신 분들, 가족이 한꺼번에 돌아가신 분들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도 있었다"며 "멀지 않은 곳에 사니 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을 마치고 온 구성민 씨(30)는 "제가 사는 무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오게 됐다"며 "우리도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라 남일 같지가 않았다"고 했다.
두 딸, 배우자와 함께 온 박주연 씨(56)는 "무안 사람으로서 무안에 이런 일이 있어 너무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이라며 "아무쪼록 조속히 사건의 결과가 나와서 희생자들의 넋을 빨리 기릴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퇴근시간을 넘어 밤이 깊어가는 데도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9만여 명이 살고 있는 무안군에는 전남도청과 스포츠파크 두 곳에 분향소가 설치됐는데, 설치 첫날인 이날 스포츠파크 분향소에만 오후 9시 기준 2100여 명이 조문했다. 오는 31일에는 유족이 머무는 무안공항에도 분향소가 설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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