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범 한국방송(KBS) 사장 후보자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특별대담 당시 윤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사과 의향을 물어봤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기억이 잘못됐다"고 번복해 말 바꾸기 논란이 일었다.
야당은 박 후보자가 실제 녹화 당시 윤 대통령에게 사과 의향을 물었음에도 편집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날 KBS 내부 공정방송위원회를 통해 원본 확인을 요청하기로 했다.
박장범 "제 머릿속에는 그 답변이 질문 후 나온 걸로…"
박 후보자가 윤 대통령에게 '사과 의향'을 물었다는 내용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 첫날인 18일 오후 막바지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 나왔다.
박 의원은 박 후보자에게 "(녹화 방송된 내용 외에) 추가로 질문을 한다면 '김건희 여사께서 사과하실 생각이 있느냐' 직접 그런 것도 질문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라며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야당은 줄기차게 사과를 요구한다. 대통령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라고 당연히 물어봤고, 그 당시만 해도 대통령의 대답은 사과를 안 했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수준에서 계속해서 같은 답변이 나왔다"고 답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현 의원에 따르면, 박 후보자의 '사과 의향' 질문은 실제 방송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 대본에도 해당 내용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박 후보자에게 질문 여부를 확인하자, 박 후보자는 "제 기억으로는 여당 하나, 야당 하나 질문한 걸로 알고 있다(기억하고 있다). 야당 요구의 핵심은 대통령의 사과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과연 사과를 하냐 안 하느냐가 관심된 사안이었기 때문에"라며 "제 기억으로는 질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김 의원은 "2월 4일 날 녹화를 하고 2월 7일 날 방영이 됐다. 그러면 3일 동안 편집이 이루어졌는데 그 편집을 누가 했느냐?"라며 "이 부분이 삭제가 됐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왜 의심을 하냐면 통상 30년의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즉흥적으로 머릿속에 없던 것이 만들어져서 답변할 수는 없다"며 "그러면 이 말(사과 의향)을 했다고 보여지는데, 맞느냐"고 박 후보자에게 재차 확인했다.
박 후보자는 "제 기억이 잘못된 걸로"라며 "그런 질문을 현장에서 하지 않은 걸로"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김 의원은 "그럼, 여기서 없는 기억을 지금 복구해 낸 것인가", "여기서 조작한 것인가", "여기서 날조한 것인가"라고 추궁했고, 박 후보자는 "대통령이 재발방지를 약속했다는 그게 제 머릿속에 있어서 그 답변이 그 질문(사과 의향) 후 나온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금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재발방지라고 각색·윤색하고 '야당은 줄기차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 말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대통령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대통령을 위해서 무슨 말이라도 만들어내는 사람이 어떻게 공영방송의 사장이 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야당은 청문회 이튿날인 19일에도 박 후보자의 말 바꾸기를 지적하며 KBS 사장으로서 결격 사유라고 주장하는 한편, 원본 확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여당은 녹화본 열람을 반대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을 대신해 야당 간사를 맡은 신성범 의원은 "'취재 원본 한번 봅시다'(라며) 손을 댔는지 안 댔는지 보겠다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편성과 제작의 자율성에 완벽하게 위반된다"고 반박했다.
여야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자, 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KBS 공정위를 언급하며 "KBS 내부에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 의원은 "노사가 내부의 기능을 작동해 확인해 주면, 그래서 노사 모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믿겠다"며 "(직접 확인하는 걸) 포기하겠다"고 했다.
이에 최 위원장은 공정위 개최와 관련해 이날 참고인으로 나온 노태영 KBS 기자협회장과 박상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 허성권 KBS 노조위원장 등에게 의사를 물은 뒤 박민 현 사장에게 공정위 개최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KBS, 채상병 사망·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에도 尹 위한 '다큐' 만들려고 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특별대담이 기획 초기에는 다큐멘터리 형식이었다며, 취임 2주년 방송에 대한 접근 자체가 윤 대통령 '띄우기'였던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민주당 한민수 의원은 "저희가 알기로는 대담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제작했던 부서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부서였고, 최초의 기획도 대담이 아니라 '미니 다큐' 형식으로 제작하는 안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 의원은 "그러면 (프로그램 제작의) 접근 자체가 윤 대통령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주려고 한 것"이라며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이 있고,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받은 영상이 나왔는데도 KBS는 (대통령을 위한) 다큐멘터리 만들어주느냐. 우리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원은 또 박 후보자가 "해당 회담의 질문은 KBS 보도국의 각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 모든 취재 부서로부터 취합해서 이를 바탕으로 진행자인 본인이 제작진과 상의했다"는 서면 답변과 관련해 또다른 참고인인 노태영 협회장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노 협회장은 그러나 "당시 부서로부터 취합을 한 기억이 없다"며 "외부에서는 KBS 기자들이 논의를 해서 '조그마한 파우치'(라는 발언)를 제공한 게 아니냐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고 답해 박 후보자의 '질문 취합' 답변 진위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법원에서 박 후보자 임명제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 심리가,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진행 중이라며 윤 대통령에게 "사법부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박 후보자에 대한 임명은 보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KBS 야권 이사들(김찬태·류일형·이상요·정재권)은 '이진숙-김태규'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전된 KBS 이사들에 의해 박 후보자가 사장으로 임명제청된 것은 위법이라며, 효력중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첫 신문기일이 지난 14일 열렸으며, 재판부는 "19일 오후 6시까지 서면 입장을 제출하라"며 "종합해서 검토하고 결정 내리겠다"고 밝혔다.
"'파우치 박장범'답게 파우치로 시작해 파우치로 끝난 한심한 청문회"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박 후보자의 청문회를 "'파우치 박장범'이라는 표현답게 파우치로 시작해 파우치로 끝난 한심한 인사 청문회"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들은 박 후보자의 '파우치' 발언, 대담 질문 취합 주장, 근무 중 주식 거래 변명 등을 언급하며 "하나 하나가 거짓과 변명으로 점철된 청문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이러니 본인이 소속된 기자 구성원 495명이 박장범 당신은 KBS 사장이 될 자격이 없다 비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파우치 박장범'이 청문회에서 아무리 '신뢰성, 공정성, 중립성 강화하겠다'라고 떠든들 구성원들이 코웃음을 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또 "청문회 첫날 국민과 KBS 구성원들이 목도한 '파우치 박장범'의 민낯은 도저히 공영방송 사장의 자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로지 권력에 굴종해 사장 자리를 탐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첨꾼의 모습 뿐"이라며 "부끄러움이란 걸 안다면 '파우치 박장범'은 즉각 사퇴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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