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 학자들은 문헌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야사 연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김종간 전 김해시장(향토사학자)이 13일 김해문화원(원장 김우락) 주최한 '김해를 通하다' 김해역사문화 학술회에서 이같이 주창했다.
김 전 시장은 "내 고향 김해와 가야를 알고 싶어도 그것을 제대로 알려 줄 책조차 나와 있지 않았던 것.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책속의 길이 아니라 실존하는 길, 이미 기능을 잃어 사라져가는 옛길들을 일일이 밟으며 고향을 배우고 역사를 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985년 가야문화운동을 제창했다. 가야(加耶)를 가락(駕洛)을 시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이듬해 <가야의 얼을 찾아서>를 발간해 '가야문화연구회'를 창립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즉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김해 대성동고분군을 세상에 알렸다는 것이다.
김 전 시장은 "김해는 물의 도시였다"며 "김해라는 이름에도 땅과 물이 함께하고 있다. 그 이름이 생기기 전 아득한 옛날부터 이 땅 선주민들의 삶은 물을 빼고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 전 시장은 "지금은 부산이 되었지만 대저읍·가락면·명지면 등이 섬이었고 구도심의 부원동에서 불암동에 이르는 국도 앞까지 물이 넘실거렸다"고 밝혔다.
김 전 시장은 "학자들은 지금도 가야사의 문헌과 사료가 부족하다고들 한다"고 하면서 "가락국의 국사를 기록한 <가락국기>를 전재한 <삼국유사>는 믿기 어렵다고 하면서, 일본이 후대에 날조한 <일본서기>나 중국의 <삼국지>를 곧잘 인용하는 '친일사관' 내지 '사대주의사관'을 자주 접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시장은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김해시 봉황대유적의 패총(조개더미)에서도 중요한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면서 "패총은 연안에서 채취한 조개류에서 살을 발라낸 후 버린 껍질이 쌓여 이룬 일종의 쓰레기장이다"고 밝혔다.
김종간 전 시장은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장유동 유하패총·용산패총·주촌면의 유하·용덕·농소패총·부원동패총·풍유동 패총·칠산동패총·대동면 괴정패총·진영읍 본산리패총·부산 가락동의 북정패총·상덕리패총·녹산동 범방패총 등 광범위하고 대규모로 형성된 조개더미들은 강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김해 선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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