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국 정착을 위해 노력하다 올해 취업해 안정적 체류자격을 획득한 '미등록 이주아동' 출신 청년 노동자 고(故) 강태완 씨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주민에게 너무나 폐쇄적인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단체들에 따르면, 강 씨는 지난 8일 전북 김제에 있는 특장차 제조업체 HR E&I에서 일하던 중 10톤 건설기계 장비와 굴착기 사이에 끼어 32살의 나이에 숨졌다.
몽골 국적인 강 씨는 5살이던 1997년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입국했다. 단속에 걸리면 언제든 강제출국될 수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이었던 강 씨에게 어머니는 '한국에서 살려면 화나는 일이 있어도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고교 졸업 뒤 이삿짐센터, 공장 등에서 일했던 강 씨는 2021년 7월 '자진출국 미등록 이주민에게 재입국 기회를 주겠다'는 법무부 정책에 따라 낯선 몽골로 떠났다. 강 씨가 출국한 뒤 법무부는 국내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주아동에게도 2025년 3월 말까지 체류자격을 주기로 했다.
2022년 3월 단기체류 비자를 받고 한국에 돌아온 강 씨는 같은 해 6월 대학에 입학해 유학(D-2) 비자를 받았다. 대학 졸업 뒤 강 씨는 HR E&I에 연구원으로 취직해 지난 6월 마침내 거주(F-2) 체류자격을 받았지만, 일을 시작한지 4개월여 만에 산재사고로 숨졌다.
강 씨가 전북 김제에서 일자리를 구한 것은 인구소멸지역에서 5년 간 일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을 주는 비자정책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13일 입장문을 내고 강 씨의 산재사망에 대해 "이주민에게 너무나 폐쇄적인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이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한국은 그에게 더 큰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며 "한국이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 조금 더 열려 있었다면, 청년이 된 강태완님에게 조금 더 많은 길을 열어주었다면, 한국이 산재 문제에 조금 더 단호한 나라였다면…"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산재사망 후속 조치와 관련해 "사측 대표는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유가족에게 약속했지만, 공개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내놓지는 않았다"며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조속하고 엄정한 수사로 죽음의 경위를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채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라며 "미등록 이주아동이 2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꽉 닫힌 한국 사회에서 '유령'으로 평생을 살다가 성인이 되어 외국으로 쫓겨나거나 국가가 '배려'해준 단 하나의 경로만 밟는 일이 2만여 명에게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주인권단체 '이주민센터 친구'도 전날 페이스북에 "11월 4일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대책이 지속되길 바라며 열린 국회 토론회. 이날 인터뷰 영상이 상영됐는데 여기에 나온 강태완님. 희망을 이야기하는 얼굴이 정말 밝고 환해서 보는 사람도 웃음이 나왔다"며 "그랬던 강태완님이 11월 8일 일하던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했다"고 썼다.
이어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마음이 무너진다"며 "국적과 체류자격으로 구분하지 않는 그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라겠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강 씨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연을 맺었던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도 12일 부고글에서 "태완은 저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존재였다.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다. 제가 죽으면 저를 추억하면서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었다"며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 갔다. 허망하다, 비통하다, 참담하다라는 말로는 제 심정을 다 표현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하지만 태완이 남기고 간 숙제가 있기 때문에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산재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경찰과 노동부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고만 합니다. 이후 산재사고 수습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완이 당한 사고가 당한 사고가 철저히 조사되고,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받고,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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