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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쓰는 민간인 학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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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쓰는 민간인 학살'에 부쳐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시로 쓰는 민간인 학살'에 부쳐

씻김굿*

제해 보살 제해 보살이로구나 나무여 어허 어허 어히-

어허허허허로구나 단야 어허허어로구나 나무 나무여 아미타불

넋이로다 넋이로다 넋인 줄 몰랐더니 오늘 보니 신이로구나

저 넋이 뉘 넋인가 가련하다 인생 죽음

넋일랑은 모셨으니 왕생극락을 가옵소서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가 누 넋인고

동학아비 넋이로구나 우금치에 질척이는

우리아비 핏물이구나 한울님이 백성이다는

만고강산 죽창이구나 죽창속에 봄이구나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는 누 넋인고

만주벌판 치달리다 일본놈들 총칼 박힌

우리아비 속살이구나 생가슴속 생피구나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는 누 넋인고

빨치산네 넋이로구나 지리산에 너즐어진

우리아비 깃발이구나 삼사백날 아우성이구나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는 누 넋인고

우리아비 발길이구나 금남로에 펄펄 살은

난자당한 오월이구나 복받치는 설움이구나

에라에라 넋이로구나

넋일랑은 모셔다가 넋상에 모셔놓고

혼일랑은 모셔다가 혼판에 모셔놓고

시첼랑은 모셔다가 화개화판에 모셔놓세

가자서라 가자서라 넋 맞으러 가자서라

금일날에 이 망자는 이승길을 마다하고 저승길이 웬말이냐

천년만년 넋풀이를 우리들이 하자서라

죽창들고 하자서라 총칼들고 하자서라

맺힌 한을 풀 때까지 우리네들 주먹속에

천추한으로 불타솝사 가자서라 가자서라

우리아비 넋풀이를 이제라도 하자서라

천근이야 천근이야 민중세상 밝아오는

천근이로구나

가자서라 가자서라 씻기영산 가자서라

가자서라 가자서라 반야용선 가자서라

원한이야 원한이야 천상천하 원한이야

망자같이 서를소냐 아비같이 서를소냐

가는 자취 남겼다고 오는 흔적 보일소냐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북망산천 돌아가서 사토로 집을 짓고

송죽으로 울을 삼아 두견이 벗이 되어

노래한들 무엇하랴 춤을 춘들 무엇하랴

죽은 후에 만반진수 살은 한을 어찌풀리

가자서라 가자서라 쑥물로 씻어내고

맑은 물로 목욕하고 향물로 씻어내어

씻김천도 가자서라 왕생극락 가자서라

천근이야 천근이야 민중세상 다가와서

우리아비 한을 풀어 극락세상 천근이야

왕생극락 천근이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나리소사

이 고는 무슨 고인고

불쌍하신 동학항쟁 아비고는

불쌍하신 빨치산항쟁 아비고는

불쌍하신 오월항쟁 아비고는

원한졌다 원한고 신원졌다 신원고

매긴 고를 풀러 가세 설설이 풀립소사

불쌍하신 망자씨가 어느고에가 맺히셨오

저승고에가 맺히셨오 산신고에가 맺히셨오

저승고에 맺히시고 산신고에 맺히시면

가실극락 못가시고 집 안으로 감돌아서

자손에 근심을 연답니다

원한고에가 맺히시고 해원고에가 맺히시면

가실생왕을 못 가시고 집 안으로 감돌아서

자손에 우환을 연답니다

천고만고 맺힌 고를 금일금시로 풀으시고

가사에 근심걱정 우환잡작 희살여물

일체소멸 시키시고 새왕극락으로 가옵소사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풀리소사

작별이야 작별이야 조상불러 작별이야

동지불러 작별이야 일가친척 작별이야

부모형제 작별이야 동네방네 작별이요

민중세상 다왔다고 왕생극락 가신다며

작별이로구나

작별이야 작별이야

시굿

휘-

이 나라를 어찌할꼬

귀신이 많다

죽어 죽지 못한 원혼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내게 와 속삭인다

내 눈 좀 감겨줘

내 흘린 핏자국 좀 닦아줘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던 길

오늘은 또 물에 빠져 죽은 채상병이

내 앞을 가로막더니

씻어줘

달래줘

내 영혼을 마구 두드린다

내 오늘도 시굿 한번 해야겄다

젊은 친구가 졸지에 죽었으니

굿 하지 않고

어찌 눈을 감을쏘냐

넋이로세 넋이로세

수중고혼 넋이로세

넋인줄을 몰랐더니

오늘보니 넋이로세

불쌍한 망자씨 이 시굿 받어 잡수시고 십왕극락 가옵소사

천고에 맺히고 만고에 맺힌 한은 우리에게 맡기고

환생극락 가옵소사 새왕극락으로 가옵소사 휘-

*씻김굿: 오봉옥 장편서사시집 《붉은산 검은피》의 서시3 「넋이야넋이로다」 전문

▲ 씻김굿 넋건지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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