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안을 두고 맞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에 담긴 자동조정장치는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악화하는 연금삭감안이며, 세대별 차등 보험료도 급조한 안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연금개혁의 주요과제는 재정 안정이라며 정부 탓을 멈추고 국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18일 국민연금공단 등을 대상으로 한 복지위 국감에서 김태현 연금공단 이사장에게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연금 수급액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보다 늘 작게 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김 이사장은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자동조정장치는 물가, 가입자 수, 기대수명 등을 연금급여에 연동시키는 제도다.
이 의원은 "결국 자동조정장치는 자동삭감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연금공단 추계 자료를 보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을 때 연금 수급 예상액이 비율로는 16.3%, 금액으로는 4900~5900만 원 가량 삭감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노인빈곤율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악인 40.4%인데, (정부가)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세대별 차등 보험료에 대해서도 "해외 사례가 없다. (연금공단에도) 관련 연구 자료가 없다고 답변 받았다"며 "정부가 추계한 총보험료 자료를 보면, 1975년생, 1985년생, 1995년생은 뒷세대보다 연금 보험료를 더 내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자동조정장치는 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세대별 차등 보험료의 역전 현상에 대해서는 "세대별 차등 보험료 인상 시기는 세대별 생애 총소득을…(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전진숙 의원은 자동조정장치와 세대별 차등 보험료에 대한 국민 설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련 문항이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됐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지난 8월 정부가 진행한 연금개혁안 설문지의 "초안은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급여가 축소 지급된다'고 말하고 있다"며 "최종안에서는 '연금액 조정'으로 표현이 완화됐다. 결과적으로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동의 비율이 (반대 비율보다) 2배 이상 높았다"고 말했다.
같은 설문의 세대별 차등 보험료 문항에 대해서도 그는 "초안에 없던 '젊은 세대가 많은 보험료를 내고 적은 연금을 받는다'는 전제 조건을 (최종안에) 추가하고 2, 30대의 보험료를 천천히 올린다는 식으로 명분을 만들어주니 세대별 차등 보험료에 동의하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문 문항을 바꾼 주체가 누구인지 캐물었다.
김 이사장은 "제가 알기로는 최대한 객관적으로…(문항을 만들었다)"며 "복지부와 아마 협의를 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디와 협의했는지는 지금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여당은 국민연금 재정안정의 필요성과 국회 논의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은 "국민연금 개혁을 빨리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대로 두면 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며 "연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우리 미래 청년세대에게 안정적인 연금이 지급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추 의원은 재정 안정 측면에서 "정부안도 미흡하다고 본다. 개혁의지가 강하지 못하다"며 "당초에 우리가 (소득대체율) 40%로 가기로 했으면 그 방안으로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이걸 거꾸로 돌려 여떻게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겠나"라면서도 "그렇지만 정부가 왜 입장이 없냐는 문제제기가 많아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안'을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때는 정부안 자체가 없었다"고 전 정부를 비판한 뒤 "정부가 고심해 안을 냈으니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국회에서 빨리 여야 간에 연금개혁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개혁도 하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여야가 함께 고민할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재정안정이 중요하다는 추 의원의 주장에 "맞다"고 호응했다. 연금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험료를 내야 될 미래 세대가 흔쾌히 보험료를 부담할 수 있는 안이 돼야 된다"고 밝혔다.
한편, 야당은 이날 국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계를 위해 이뤄진 삼성물산 불법합병 사건과 관련 국민연금공단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대방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빠진 일을 소재로도 대정부 공세를 폈다.
해당 소송과 관련 이수진 의원은 "손배 청구 대상에 이재용 회장에게 외압을 행사한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본부장은 포함됐다. 그런데 이 회장에게 뇌물을 받고 외압행사를 지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구 대상에서 빠졌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시켰나? 김건희 여사가 시켰나?"라고 물었다.
김 이사장은 "아니다"라며 "저희가 법무법인과 여러 판결문을 갖고 소송 대응하며 실익을 따졌다. 그동안의 판결만으로는 (박 전 대통령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만큼 충분한 직접적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것이 법무법인의 입장"이라고 답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 박주민 복지위원장은 "법무법인 의견서를 속히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이사장은 "의견서가 있는지 한 번 알아보겠다"며 "있으면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연금공단으로부터 법무법인 의견서를 제출받은 뒤 박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86억 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을 '통치행위에 준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의견을 줬다"며 "뇌물을 받는 게 통치행위에 고도의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이상한 의견서"라며 "왜 이런 내용을 받아들여 박 전 대통령을 (손배소송) 피고에서 빼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무법인과 다시 논의하고 그 결과를 (복지위) 전체에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이사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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