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에서 부안에 이르는 해안선을 메운 새만금의 방조제 내수면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대표하는 것이 만경강과 동진강이다.
두 강은 서부 평야지대를 관통해 호남평야의 젖줄이 되었고 온갖 물산이 유통되며 정치와 경제 등 각 분야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해 왔다. 이 두 강은 새만금에서 합수되어 새만금호를 만들었다.
소통이 산물인 새만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불통과 고통'의 현장으로 전락해 있다. 정치권은 새만금 종합개발사업 기본계획이 발표된 1989년 11월 이후 아전인수식 해석을 통해 새만금을 주물러 왔다.
필요할 때엔 약간의 개발예산을 얹어주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가차 없이 국비를 삭감하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왔다. 오죽하면 2010년대에 "새만금이 죽어야 전북이 살 수 있다"는 자기비애적 발언이 전북자치 도민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을까?
혼돈의 새만금은 2023년 8월 새만금 잼버리대회 파행 이후 30여년 소사(小史)의 최대 시련기를 맞는다.
잼버리 파행 이후 국민의힘이 '전북 책임론'을 강하게 몰아붙이며 '예산을 빼먹는 꿍꿍이 있는 지역'으로 치부했고 급기야 정부가 같은 해 8월말에 각 부처에서 올린 새만금 예산의 무려 78%를 대거 칼질하는 전무후무한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곧이어 새만금 국제공항을 포함한 3대 SOC 사업에 대해서는 '적정성' 재평가에 나서는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마무리한 사업을 다시 적정성 평가에 나선 일은 초유의 일이어서 전북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는 사태로 번졌다.
지난해 말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삭감된 새만금 예산이 3000억원 가량 되돌아났고, 올해 7월에는 적정성 재검토에서도 '적정' 판정이 나 오해를 불식했지만 '위기의 시대, 새만금'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
지난 30여년의 '새만금 위기'가 내부 개발과 이를 위한 예산 확보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라면 향후 위기는 개발원칙과 방향을 놓고 갈등과 마찰을 예고하고 있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강대강 대치 국면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고 이 와중에 새만금 등 지역 현안이 정치의 늪에 빠질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분열과 좌절을 극복하고 지역민의 삶과 희망에 물을 줘야 할 정치권이 되레 새만금의 절망과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걱정인 셈이다.
5선의 조배숙 국민의힘 전북자치도당위원장은 "전북은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인구는 줄어들고 경제지표는 최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새만금사업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통탄했다.
조배숙 위원장은 "결국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전북의 정치지형이 '일당독주' 체제에서 벗어나 여당과 야당이 공존하며 치열한 경쟁 속에 협치를 이어나가야 한다"며 "새도 양 날개로 날아야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위원장의 걱정 외에 정부와 시민환경단체 간 갈등 고조도 예상된다.
전북지역 내 환경시민단체들은 새만금 내부 토지의 추가 매립을 전면 중단하고 현재 매립해 놓은 땅의 단계적 완성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매립한 땅의 개발 완성도를 높이고 나머지는 원형지 그대로 놓고 자연친화적인 개발에 나서자는 말이다.
이는 새만금 매립의 확대를 통해 산단을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새만금개발청의 방침과 정면충돌하는 것이어서 새만금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고조되는 국면이다.
새만금 매립지 안정성 문제를 확인하고 대책이 필요하다며 매립지 축소와 기존 매립지 완성도 높이기를 주장해온 오창환 전북대 교수(새만금도민회의 공동의장)는 "매립지의 경제성과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새만금 지역의 심각한 환경파괴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는 수십년 동안 새만금사업의 결정적 실패를 유발해 전북도민들을 크게 좌절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오창환 교수는 "새만금 개발 방향과 원칙을 놓고 이제 각계각층에서 진솔한 대화를 할 때"라며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서로 의견을 내놓고 대안을 찾지 않으면 갈등의 터널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발전과 현안추진을 위해 정치권이 협치를 하고 정부와 환경단체 등이 진솔한 대화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대위기의 시대, 새만금'은 '희망고문'의 오명 아래 과거의 위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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